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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야쿠자 '총격·습격' 난무…공포에 휩싸인 열도

공개채용까지 했던 야쿠자…조직원 감소에 분열까지

지난 27일 총성과 함께 탄흔이 발견된 사이타마(埼玉) 현 야시오(八潮) 시 '고베야마구치구미'의 한 간부 집 (사진=아사히 신문 캡처)

 

일본 거대 야쿠자 조직들간의 힘싸움으로 인해 일본 전역이 공포에 떨고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1일 오사카부(大阪) 도요나카(豊中)시에 위치한 '고베야마구치구미(神戶山口組)' 야쿠자 사무실을 향해 차량이 돌진해 담장 일부가 부서졌다.

또 지난 27일에는 사이타마(埼玉) 현 야시오(八潮) 시의 주택가에서 여러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일본 야쿠자 조직인 '고베야마구치구미'의 간부(67) 집 담벼락에서 여러 개의 탄흔을 발견했다.

같은날 새벽 총성이 울린 곳과 불과 2km가량 떨어진 도쿄(東京) 아다치(足立) 구에서 '고베야마구치구미' 소속 조직원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 여러 명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으며, 가나가와(神奈川) 현에서는 '야마구치구미(山口組)' 건물에 정체 불명의 트럭이 돌진하는 등 사건·사고가 연이어 일어났다.

일본 경찰은 이날 벌어진 3개의 사건이 지난해 8월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와 이 조직에서 독립한 '고베야마구치구미' 두 조직들의 수도권 내 세력 다툼이 격화돼 일어난 것으로 보고 조사를 펼치고 있다.

◇ 일본 최대 야쿠자, 내부 분열로 연일 '시끌'

'야마구치구미' 1915년 야마구치 하루키치(山口春吉)가 고베 항 노동자 50여 명과 함께 결성됐다.

한때 공개채용도 서슴치 않고 조직원을 18만 4100명까지 늘린 '야마구치구미'는 경제·사회 곳곳에 사업을 확장시키며 일본 경제를 뒤흔들 만한 조직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영원할것 같았던 '야마구치구미'의 분열은 6대 두목인 시노다 겐이치(篠田建市·74)가 상납금을 지나치게 늘리고 나고야(名古屋)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자신의 파벌만 지나치게 챙긴 것이 발단이 됐다. 이에 불만을 품은 고베(神戶)의 야마켄(山健) 등 13개 파벌이 지난해 8월 말 독립을 선언하고 '고베야마구치구미'를 결성했다.

분열 이후 두 조직은 일본 적역에서 크고 작은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나고야의 번화가에선 야마구치파 핵심 간부가 '고베야마구치구미' 소속 15명에게 야구 배트로 습격을 당했다. 같은 달 나가노(長野) 현에서는 고베야마구치구미로 옮기자고 주장하던 '야마구치구미' 조직원이 간부의 총에 살해됐다.

◇ 100조원 매출 '야쿠자', 조직원 매년 감소

 

일본 경제 침체와 내부 분열로 인해 힘을 점차 잃어간 '야마구치구미'는 조직원 수가 2005년 이후 계속 감소해 작년 말 기준 1만 41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보다 9300명 감소한 수치이다.

조직원 감소의 가장 큰 이유는 일부 조직원이 탈퇴하고 작년 8월 '고베야마구치구미'라는 폭력 단체를 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베야마구치구미'는 기존 조직에서 분리돼 새로 결성됐지만 조직원 6100명 규모로 단숨에 조직규모 3위에 올라섰다. 두 번째로 큰 조직은 '스미요시카이'(住吉會)로 작년 말 기준 조직원 7300명을 보유하고있다.

경제 침체 외에 일본 정부가 1992년 '폭력단대책법'을 만들어 단속에 나선 것도 야쿠자의 세력을 약화시키는데 한몫했다. 정부는 조직원이 5명 이상 모이기만 해도 체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으며, 지방자치단체들도 야쿠자와 거래를 금지하는 조례를 만들어 야쿠자 근절에 힘을 보탰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맞이했던 일본 야쿠자는 한때 연매출 100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국방 예산 2.5년에 준하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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