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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뉴스] 김종인은 왜 생일 축하 난을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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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일반

    [Why뉴스] 김종인은 왜 생일 축하 난을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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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김종인 더불어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생일날 보낸 '황금강'이라는 난초 때문에 정치권이 시끌했다. 청와대는 난을 거절했다가 논란이 일자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대통령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고 난을 받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그렇지만 현기환 수석이 '월권'을 했다느니 '덤터기'를 썼다느니 논란이 이어지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은 '협량의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왜 생일 축하 난을 선물로 보냈을까? 라는 주제로 '난초의 정치학'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난초를 보낸 게 문제였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일 박근혜 대통령의 64세 생일을 맞아 보낸 축하난. (사진=김수영 기자)

     

    = 그 건 아니다. 생일을 축하해서 난을 보내는 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지 않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비서실장인 박수현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생일이라는 소리를 듣고 설명절을 앞두고 작은 훈훈함이라고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더니 김 위원장이 "아주 좋은 생각이다. 직접 다녀오라"고 지시해 이뤄진 것이었다고 한다.

    난을 들고가면 청와대가 이를 받으면서 꽉막힌 정국의 돌파구라도 마련하려는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닌가 여겨진다.

    ▶ 정치권에서는 생일에 난 화분을 보내는 게 관행인가?

    = 그렇다. 요즘은 정치권 뿐만아니라 재계나 일반 회사 등에서도 생일이나 특별한 기념일 등에는 난을 선물로 보내는 것이 일반화됐다. 꽃다발이나 꽃바구니 등을 보내기도 하지만 난을 선물로 보내는 것이 대세라고 한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난을 선물 하기 시작한 건 정확한 유래가 없다. 고려시대부터 난을 재배하기 시작했다니까 그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짐작을 할 따름이다.

    정치권에서 난을 선물로 보낸 지나간 역사를 찾아보니 1960년대에도 축하 화분을 보내긴 했는데 난을 보냈다는 기록은 찾기 어려웠다. 보내더라도 특별한 경우나 그랬던 모양이다.

    1956년 보도에 "민주당 조병옥 박사가 이승만 대통령의 81세 생일을 맞아 축하화분을 보냈다"는 보도가 있다.

    1960년대 보도를 찾아보니 "1968년 9월 30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회 생일에는 유진오 신민당 총재가 '소철화분'을 청와대에 보내 생일 축하했다. 유 총재 생일에는 박 대통령이 밀감나무 화분을 보냈다" 는 보도가 있다.

    놀라운 보도도 있었는데 "1969년 9월 30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52회 생일에 정일권 국무총리의 간곡한 건의에 따라 전국무위원과 대법원판사들로부터 간단한 하례를 받았다. 유진오 신민당 총제는 집에서 가꾸던 카나리아 야자 화분 1개를 보내 생일을 축하했다. (1969년9월 30일 경향신문 보도)"고 했다. 대통령의 생일에 전 국무위원과 대법관들이 축하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1969년 11월 21일 정일권 국무총리의 52회 생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탁상시계와 '극락초화분'을 보내 생일을 축하했다"는 보도도 있다.

    60년대에는 난초 화분이 아니라 여러가지 나무화분들이 선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 70년대는 난초를 보냈나?

    = 1970년대에는 그냥 '축하화분'으로만 나온다. 그 화분이 난초인지 아닌지는 확인이 안 됐다.

    1972년 1월 7일 "김종필 국무총리 45세 생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보낸 축하화분만 받고 다른 선물이나 화분은 돌려보냈다"는 보도가 있고, 1975년 1월 7일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자택으로 청와대 의전관을 보내 축하화분을 전달했다", 1979년 6월 11일 "이철승 신민당 전 대표의 57회 생일에 박정희 대통령과 최규하 총리, 국회의장 등이 축하화분을 보냈다"는 보도도 있다.

    70년대 기자생활을 한 옛 선배들에게 확인을 해보니 "70년대에는 난초 화분이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난초 화분'이라는 보도는 신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한 80년대에 등장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1983년 1월 18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52회 생일에 김종철 국민당 총재가 난초 화분을 보내 축하했다"는 보도가 있고, "1985년 9월 6일 전두환 대통령이 이민우 신민당 총재의 자택에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을 보내 축화화분을 전달했다"는 보도가 있다.

    70대 후반이나 80대에 접어든 선배기자들의 기억에 의하면 80년대 중반이후 난 화분이 활발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1990년대에는 난초 화분에 대한 보도도 많고 실제로 언론사에도 이 때부터 난 화분이 선물로 많이 사용됐다.

    1994년 1월 7일 김대중 전 민주당 대표 69회 생일에 "김영삼 대통령과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이기택 민주당 대표 민자당 김윤환 의원이 난화분 선물"이라는 보도가 보이고, 1996년 1월 23일 김영삼 대통령 68회 생일에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김종필 자민련 총재, 황낙주 국회의장, 윤관 대법원장 등이 난 화분을 보냈다"는 보도가 있다.

    한국 난문화협회 관계자는 "난은 1980년대까지는 가격이 비싸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1990년대 대만 등지에서 보세란이 대량수입되고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대중화 되었다"고 회고한다.

    ▶ 난 화분을 선물로 보내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 크게 세가지 정도를 이유로 꼽는다.

    첫 번째는 난의 꽃말이 '지조와 절개'다. 과거 선비들이 난을 치면서 자기 수양을 했고 또난이 고등식물이다. 그래서 그런 의미를 담아서 선물을 한다고 한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두 번째는 그윽한 향기를 꼽는다. 동양란의 향기는 코를 가까이 대고 킁킁대면서 맡아서는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육신의 성삼문은 자신의 작품에서 난초의 뛰어난 향기를 찬양하고 있는데 "그 향기의 가치를 다른 열 가지 종류의 꽃향기에 상당한다"고 했을 정도다.

    세 번째는 화분에 심기 적당한 크기로 누구에게나 선물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분재나 나무화분을 보내기도 하지만 관리가 어렵거나 부피가 큰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난은 우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주역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을 같이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二人同心 基利斷金 同心之言 基臭如蘭)" 구절에서 '금란(金蘭)'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금란지교(金蘭之交)' 라는 말이 있고 또 '지란지교(芝蘭之交)'라는 말이 우정을 일컫는 대표적인 칭호로 사용돼왔다.

    ▶ 일반적인 의미 외에 정치권에서의 의미도 있나?

    = 그렇다. 난이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꽃집이나 배달서비스가 체계화 되어 있어서 전국 어디에서나 배달이 가능한 구조다. 그렇지만 2000년대 이전에는 그렇지가 못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난을 배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심부름을 가야하는데 그게 서로를 연결하는 메신저가 되기도 한다. 난을 보내면서 어떤 문구를 적어서 보내느냐도 고민의 대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1997년 5월 20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대선후보겸 총재로 당선이 됐다. 그러자 김영삼 대통령이 정무수석을 보내 '축하 난'과 당선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YS와 DJ는 1987년 후보단일화 실패와 1992년 대선에서의 맞대결 이후 불편한 관계였지만 난 화분을 보내면서 화해를 시도한 것이다. 그후 축하전화까지 했다. DJ도 불편한 YS와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생일 축하 난을 보냈다는 보도들이 많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친 김홍조옹의 '구순(九旬)' 잔치에 김대중 대통령이 '학수강녕(鶴壽康寧)'이라고 쓴 난화분을 보내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육사동기로 12.12사태와 5.17 쿠데타 동지로 대통령직까지 이어 받지만 여소야대국면에서 백담사로 사실상 유배를 보내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그렇지만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마치고 내려온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난을 선물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뒤 1994년 1월 18일 전두환 전 대통령 생일에 샴페인과 난 화분을 선물로 보냈다. 1994년 8월 23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회 생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도 난을 보냈다. 관계가 서먹하지만 그래도 난을 보내면서 소통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전 보도를 검색한 것이니까 실제로는 1993년에도 난을 선물로 보냈을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도 난을 선물로 보내지 않았나?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후 난을 선물로 보냈다.

    2013년 4월 11일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68회 생일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이 이정현 정무수석을 국회로 보내, 난 화분을 전달했다. 당시 이 수석은 문 위원장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생일을) 챙기라고 했다"며 난을 전달했다.

    2014년 9월18일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63세 생일을 맞아 '생일 축하 난(蘭) 화분'을 보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2015년 2월 2일 박근혜 대통령의 63번째 생일(2일)을 맞아 축하 난(蘭)을 보내고 축하메시지도 전달했고 올해도 박 대통령의 64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난과 설날선물로 한과세트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중국 측에서 대신 전달해줄 것을 부탁한 박 대통령 얼굴이 새겨진 도자기도 보냈다.

    ▶ 박 대통령이 난을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거냐?

    = 그건 미스터리다.

    일단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의 책임으로 일단락이 됐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 (사진=윤창원 기자)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현기환 정무수석이 '여야가 처리에 합의한 법안들조차 처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축하 난을 주고받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사양했다"며 "박 대통령은 이 사실을 몰랐으며 참모진 오찬 중 보고받고 현 수석을 크게 질책했다"고 공식 해명했다.

    ▶ 현기환 정무수석의 독단적인 판단이었다는 말인데? 그게 사실이냐?

    = 이 말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를 보면 박 대통령의 의중인지 아니면 정무수석이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판단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몇가지 사례를 보자, 지난해 11월8일부터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부친상이 있었다. 박 대통령은 끝내 근조 화환을 보내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는 "당사자가 사양할 경우 화환을 보낸 관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지난해 5월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는 딸을 결혼시키며 "화환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박 대통령은 축하화환을 보냈다

    2015년 1월 22일 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대통령 弔花에 대한 믿기 힘든 얘기"라는 제목의 기명칼럼을 게재했다.

    양 주간은 "고위 공직을 지낸 분이 상(喪)을 당했는데 그 상가에 당연히 있을 법한 대통령 조화가 없었다고 한다. 대통령과의 관계도 특별한 사람이었다. 청와대가 모르는 줄 알고 몇 사람이 청와대에 알렸다. 금방 올 것 같았던 조화는 늦어도 너무 늦게 왔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사정을 알아보았다. "조화를 보내려면 대통령 허락을 받아야 하는 모양"이라는 게 그들의 결론이었다.

    이 말이 믿기지 않았는데 얼마 후에 비슷한 얘기를 또 듣게 됐다. 상을 당한 다른 사람에게 관련 분야 청와대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수석은 "대통령님 조화를 보내겠다"고 했다. 조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궁금했던 상주(喪主)가 나중에 수석에게 물었더니 "조화는 수석 결정 사항이 아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양 주간은 "조화 보내는 것도 대통령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게 사실이라면 다른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만기친람'을 꼬집은 것인데 제1야당 대표의 생일 축하란을 정무수석이 독단으로 거절할 수 있을까?

    더불어 민주당 비대위원장 비서실의 담당자와 청와대 정무수석실 실무자가 통화를 한 게 9시 7분이었고 9시 54분쯤 전화가 왔다니까 50여분 정도는 틈이 있었다. 이 시간에 정무수석이 비서실장이나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는지 아니면 대통령의 최측근인 문고리 3인방과 논의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원장 (사진=윤창원 기자)

     

    ▶ 그렇다면 김종인 비대위원장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받지 않았을 수 있다는 거냐?

    = 정치권이나 언론에서의 평가는 대체로 현기환 정무수석이 덤터기를 썼다는 것이다.

    사실 청와대의 발표대로 현기환 정무수석이 단독으로 거절한 게 맞다면 대통령은 현 수석을 경질해야 한다. 제1야당 대표의 난을 독단적으로 판단해 거부할 만큼 오만한 정무수석이라면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누가 되지 않겠나?

    그렇지만 대통령의 뜻이라면 소통의 문제로 이어진다. '만기친람', '불통'의 이미지가 굳어질 것이다.

    앞에서 DJ와 YS의 사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 언급을 했듯이 '축하 난'은 단순히 축하의 의미뿐만아니라 메신저다. 그러니 메신저를 거절한 것이 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64세 생일을 맞아 보낸 축하난 (사진=청와대 제공/김수영 기자)

     

    박 대통령의 표현대로 정말 법안 통과가 시급해서 목이 탈 정도면 축하 난을 받고 그걸 계기로 고맙다고 전화를 해서 법안통과를 설득하거나 아니면 난을 들고온 박수현 비서실장에게 메시지를 전달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RELNEWS:right}일각에서는 '배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박 대통령이 난을 거절했다가 번복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들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2일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더불어 민주당에 입당한 날이기도 하다. 이미 이런 정보를 알고있었을 청와대로서는 흔쾌히 축하 난을 받을 분위기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김종인 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가 지금은 야당의 선대위원장과 비대위원장을 겸하고 있고 그기에 생일날 조응천 전 비서관을 영입하면서 '축하 난'을 보내는 걸 곱지 않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축하 난'을 거절했다가 논란이 되니까 이를 다시 받는 모습은 '협량의 정치'라는 비판을 떠나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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