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유급 근로시간이 아니다. 일반 공무원들도 역시 점심시간은 하루 8시간을 기본으로 하는 근무시간에서 빠진다.
그러나 국공립과 사립학교 교사들의 점심시간만은 유독 근무시간으로 인정받고 있다. 급식지도를 하라는 게 이유인데 실제 학교현장에서는 급식지도 여부와 관계없이 교사들이면 누구나 일괄적으로 점심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급식지도를 하라는 이런 취지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일선학교에서 점심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생각하는 교사는 그리 많지 않은 모습이다.[BestNocut_R]
◈ 교사 없는 급식시간, ''밥 전쟁터''서울 구로구 K중학교. 교실에서 급식을 하고 있는 이 학교는 점심 식사 때마다 배식 순번 등으로 한바탕 소란을 겪는다.
이 학교 3학년 윤 모(15)양은 "밥 먹을 때마다 새치기 하는 친구들도 있고 반찬을 많이 가져가서 뒷사람이 못 먹는 등 질서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선생님이 나서서 급식지도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있다"고 불평했다. 송모(15)양 역시 "밥을 먹으려면 전쟁을 치러야 한다"며 "이런 무질서가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전체 급식을 하는 영등포구의 H고등학교나 서초구의 B중학교도 사정은 비슷했다. 다만 초등학교의 경우 대부분의 담임교사들은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혼란스런 점심시간에 급식지도를 하라는 취지로 교사들의 점심시간은 유급 근무시간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게 시교육청의 설명이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의 경우 실제 교실에서 급식을 하는 학교나 식당에서 전체 급식을 하는 학교 할 것 없이 점심시간에 식사지도를 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심지어 "일부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개인 용무를 보러 몇 시간씩 학교를 떠나는 사례가 많아 특별 복무 감사를 하고 있다"고 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그러나 이런 특별 복무 감사 역시 전반적인 근무 태도를 확인하는 것이지 교사들이 점심시간에 식사 지도를 제대로 하는지 여부만을 감사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교사들 점심시간=근무시간, 언제부터?교사들의 이런 ''특혜(?)''는 지난 1985년부터 시작됐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한 관계자는 "당시까지만 해도 섬지역으로 출퇴근하는 교사가 많았던 터라 이들의 편의를 위해 점심시간까지 근무 시간에 포함시킨 것"이라며 "지금은 초중고 교사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아이들의 배식 지도나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순회 지도가 모두 점심 지도에 포함 된다"고 설명했다.
2007년 9월 기준으로 전국의 초중고교 교사 수는 약 40만명으로 초등학교 16만7천여 명, 중학교 10만8천여 명, 고등학교 12만여 명 등이다.
이 가운데 담임을 맡지 않은 교사의 수도 24만여 명에 이른다. 결국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 16만여명이 모두 급식지도를 잘 한다고 하더라도 ''급식지도''를 명분으로 만들어진 점심시간 유급제가 나머지 24만여 명의 비담임 교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점심 시간이 근무 시간에 포함되다 보니 초과 근무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시간도 일반 공무원에 비해 1시간 더 길어진다.
예를 들어 일반 공무원들이 업무를 오후 6시에 마친다면 1시간이 지난 7시부터 초과근무 시간으로 인정돼 수당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교사들은 점심시간이 근무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일반 공무원보다 한 시간 앞당겨진 오후 6시부터 초과근무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결국 일반 공무원과 교육공무원이 아침 9시에 시작해 밤 10시까지 똑같이 근무했을 경우 일반 공무원은 초과근무 수당 4시간 분을 받지만 교사들은 한시간 더많은 5시간을 초과근무수당으로 받는다는 얘기다.
▶학부모단체 "급식지도는 부모에 떠넘긴다"이에 대해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들의 모임 고진광 대표는 "교사들이 점심시간을 근무 시간으로 인정 받고 있다면 법정근무시간답게 점심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이어 "초등학교에서 급식 시간마다 엄마들을 동원해 학부모들이 얼마나 힘들어했느냐"며 "요즘은 또 세금으로 급식도우미까지 동원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일은 다른 사람이 하고 교사는 돈만 받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전교조 관계자는 "만약 점심시간에 아이들에게 사고라고 생기면 모두 교사 책임이 아닌가. 교사들은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며 점심시간이 근무 시간에 포함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