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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평범한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다"



책/학술

    "악은 평범한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간] '도덕적 불감증'…석학 바우만·돈스키스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란"

    영화 '검은 사제들'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1. 지그문트 바우만

    "괴물들로부터 우리는 꽤 잘 보호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괴물들이 저지를 수 있고 또 언제든 저지를지 모를 사악한 행위들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을 지닌 채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정신병자들과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들을 찾아내는 심리학자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그들이 어디서 번식하고 모일 가능성이 큰지를 알려주는 사회학자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그들을 가두고 격리하도록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들이 있으며, 그들이 거기에 머물도록 감시하는 경찰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착하고 평범하며 호감이 가는 미국의 처녀 총각들은 괴물도 아니었고 변태도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이라크 최대의 정치범 수용소)의 수감자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영원히 알지 못했거나 추측, 억측, 상상, 공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계산대에서 미소 짓고 있는 처녀가 해외 근무 시절에 그가 감시한 수감자들을 괴롭히고 희롱하며 고문하고 욕보일 목적으로 점점 더 영리하고 기발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사악하고 도착적인 수법들을 고안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우리 중의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고향에 사는 이웃들은 그들이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던 그 매력적인 처녀 총각들이 아부 그라이브 고문실의 스냅사진에 찍힌 괴물들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오늘날까지도 믿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동일인이다."

    #2. 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이 악마는 비인격체 또는 보잘것없는 존재로 위축될 운명에 처한 인간에게서 그의 기억을 빼앗을 수 있다. 기억을 잃은 사람들은 자신과 주위 세계에 대해 어떤 비판적인 물음도 던질 수 없게 된다. 그들은 개성과 교제의 힘을 잃음으로써 기본적인 도덕적 감수성과 정치적 감수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른 인간에 대한 감수성을 잃게 된다. 근대의 가장 파괴적인 형태들 안에 안전하게 숨어 있는 이 악마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장소, 집, 기억, 소속에 대한 감각을 빼앗는다. (중략) 역사는 민주주의 정치가든 권위주의 정치가든 정치가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역사는 어떤 정치적 신조나 그것에 봉사하는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는 우리 존재의 상징적 설계이자 우리가 매일 행하는 도덕적 선택이다. 인간의 사생활과 마찬가지로 역사를 연구하고 비판적으로 물을 수 있는 우리의 권리는 자유의 한 초석이다. 이런 의미에서 루뱅 가톨릭 대학의 역사학 교수 미셸 뒤물랭이 역사가와 재판관의 역할과 기능을 모두 떠맡으려는 정치가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은 전적으로 옳다. "역사가들이 그들의 일을 하도록 놔두어라." 유동적 근대의 이런 곤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너무 많은 기억은 우리의 유머 감각뿐 아니라 우리 자신까지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기억을 포기할 수 없다."

    세계적인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과 레오니다스 돈스키스가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회복하기 위한 성찰의 여정에 나섰다. 그 노력은 대담집 '도덕적 불감증'(지은이 지그문트 바우만 외·펴낸곳 책읽는수요일)에 오롯이 담겼다.

    바우만은 오늘의 세계를 "기존 삶의 모든 견고한 기준들이 녹아 사라지고, 불안이라는 공통의 감성만이 표류하는 '유동적 세계'"로 해석하고 있다. 돈스키스는 온갖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형태의 폭력적인 정치에 반대하며 인권과 시민권의 옹호자로 활동하고 있다. 두 석학은 우리 안의 평범한 악, 모든 것이 TV쇼·기업을 닮아버린 정치와 대학의 위기, 네트워크라는 가상의 연대에 날카로운 매스를 들이댄다.

    #3. 바우만

    "우리는 고백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공개적인 자기노출이 사회적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얻기 쉬운, 아마도 가장 강력하고 유일하게 진실로 능숙한 증거가 되어버렸다. 수백만 명의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그들의 정체성, 친분 관계, 생각과 느낌, 활동 등이 지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다른 방법으론 접근 불가능한 측면들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기록한다. 소셜 웹사이트들은 자발적인, 우리가 손수 만드는 형태의 감시가 벌어지는 전장이며 염탐과 탐지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수 기관들을 양과 경비 측면 모두에서 훨씬 능가한다. 이것은 모든 독재자와 그들의 첩보기관에게 하늘에서 떨어진 돈과도 같은 정말로 뜻밖의 선물이며, 나아가 원치 않는 자들과 자격 없는 자들이 - 즉 부적절하게 행동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모든 자들이 - 우리의 고매하고 자기선택적인 민주주의 회사에 실수로 받아들여지거나 몰래 기어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민주사회의 수많은 '바놉티콘(추방 감시 또는 선택적 감시) 제도에 대한 훌륭한 보완물이다."

    #4. 돈스키스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와 관심이 무엇인지 뚜렷이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정당은 장기적으로 볼 때 막연한 탈근대적 분파주의의 색채를 띠기 쉬운 정치화된 기업이나 반(半)종교적 집단에 의해 대체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인간적 유대와 공동의 헌신은 정당보다 준종교 집단에서 훨씬 강력하며, 경제적 이익의 추구는 업계의 새로운 지부로서 조직된 준정당들에서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어느 경우이든 구식 정당들은, 즉 통합된 영토나 정치와 문화의 근대적 결합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권력의 고전적 논리에 늘 의존하는 정당들은 승산이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공적 소통의 효과적인 형태를 찾기보다는 진정으로 민주주의 대의제와 정당성의 확립이 현재 정치의 중요한 문제인 듯하다. 나아가 우리의 근대적인 정치적 감수성이 우리의 윤리적이고 실존적인 관심과 잘 조화되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와 관련해서도 똑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 "다른 사람을 알고자 한다면 그를 관찰의 장, 데이터로 변모시키지 말라"

    도덕적 불감증ㅣ지그문트 바우만 외ㅣ책읽는수요일

     

    선정적이고 무가치한 정보들로 가득찬 사회에서 주목 받는 사람들은 오직 유명인사와 미디어 스타들뿐이다. 두 석학은 우리가 자신의 활동·언어·생각 없이 안전하게 이를 모방하면서 말하거나 행한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문제에 귀기울일 시간 없이 '황급한 삶'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곤경에 대한 감수성을 상실할지 모르는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5. 바우만

    "불안에 대한 책임을 엉뚱한 원인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지 않다. 이것은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면서도 유권자들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려 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일이 너무나도 자주 일어난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정치인들은 그들이 맞서 싸울 능력도 의지도 없을 뿐더러 정복할 수 있으리라는 현실적인 희망도 갖고 있지 않은 - 일자리의 불안정성, 노동시장의 유연성, 실업의 위협, 가계비가 더 빡빡해질 것이라는 전망, 감당 못할 수준의 부채, 새삼스럽게 밀려오는 노후 대비에 대한 걱정, 인간적 유대와 협력 관계의 전반적인 빈약함 같은 - 불확실성의 진정한 원인들을 인정하기보다는 - 그들이 이주와 망명에 관한 정책을 더 엄격히 적용하자거나 달갑지 않은 외국인들을 국외로 추방하자고 주장할 때처럼 - 유권자들의 고통을 정치인들이 맞서 싸울 수 있는 원인 탓으로 돌리고 그것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를 자연스럽게 더 선호한다."

    #6. 돈스키스

    무의미와 무감각에 맞선 투쟁,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사회적 인정을 확장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맞선 투쟁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음모론에 대한 믿음이나 묵직한 단어들의 남발 같은 투쟁의 보충 형태들을 낳는다. 적어도 음모론은 누군가 당신을 없애려 한다는, 그래도 누군가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당신의 예감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하느님밖에 모르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홀로코스트, 집단 학살, 인류에 대한 범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같은 끔찍한 인간적 경험들을 가리키는 주요 용어를 점점 더 마음대로, 무책임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런 용어들은 현대적 디자인의 인테리어에 맞게 조정된 고가구와도 같다. 한때 삶과 문화의 활력 넘치는 형태였던 것이 생명을 잃은 장식으로 변모한다."

    다른 사람을 알려 애쓰는 것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을 알고자 한다면, 당신은 그를 관찰의 장, 데이터, 어떤 학설의 도구로 변모시킴으로써가 아니라 오직 공감과 사랑을 통해서만 이를 원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7. 바우만

    "우리의 상호의존은 이미 세계적인 반면에, 집합행위를 위한 그리고 우리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들은 아직도 지방적이고 확장, 침해, 제한 등에 대해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상호의존의 범위와 그것에 봉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제도들의 능력 범위 사이의 간격은 이미 어머어마하며 여전히 하루가 다르게 더욱 더 넒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나는 이 간격을 메우고 거기에 다리를 놓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고차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21세기의 거주자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첫째 임무이다. 이 도전에 적절히 맞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비록 덜 중대하지만 이것에서 비롯하고 또 이것과 분리될 수 없는 다른 도전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적절하게,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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