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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릴레이②] '랩 장인' 피타입의 클래스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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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힙합 릴레이②] '랩 장인' 피타입의 클래스는 영원하다

    힙합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래퍼들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하지만 '악마의 편집'이 판을 치는 프로그램에서만 이들을 보기에는 뭔가 아쉽다. 그래서 준비했다. 래퍼들과 직접 만나 근황과 생각을 들어보는 '힙합 릴레이' 인터뷰. 두 번째 주인공은 MC스나이퍼가 지목한 피타입이다. [편집자 주]

    피타입(사진=브랜뉴뮤직 제공)

     

    피타입(P-Type·본명 강진필)은 한국 힙합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세대 래퍼로 일단 경력이 화려하다. 1990년대 말부터 PC통신 흑인음악 동호회에서 음악 활동을 하며 무대에 올랐고, 다수의 래퍼들과 협업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왔다. 한동안 힙합계를 떠나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살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4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으며 꾸준히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래퍼다.

    무엇보다 '한국말 라임'의 선구자로 지대한 발자취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부분 1차원적 수준의 말장난에 머물러 있을 때 마치 '장인'처럼 꾸준한 노력과 연구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라임을 구사했으니. 그의 라임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1집 '헤비 베이스(Heavy Bass, 2004년)'는 지금도 힙합신을 넘어 한국 대중음악사에 빼놓을 수 없는 명반으로 손꼽힌다.

    여러모로 힙합신에서 가치가 있는 래퍼다. 그가 긴 공백기 이후 발매한 3집 '랩(Rap, 2013년)'에 참여한 화려한 아티스트진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도끼, 빈지노, 팔로알토, 허클베리 피, MC메타, 션이슬로우 등을 한 앨범에 불러 모을 수 있는 래퍼는 많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설'로 찬양받던 피타입은 최근 '한물간 래퍼'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올해 방송된 Mnet '쇼미더머니4'의 영향. 그는 잘못된 시스템을 저격하겠다며 참가자로 나섰다가 치명적 가사 실수를 저지르며 2차 오디션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처럼, 여전히 피타입을 지지하는 이들은 많다. 후배 래퍼들 역시 그를 리스펙트(존경)한다. 여전히 그의 음악이 희소가치가 있음을 의미하는 입증하는 부분이다. 피타입 스스로도 다시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다.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브랜뉴뮤직을 찾아 피타입과 만났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한 해를 보낸 그에게 근황과 최근 힙합신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Q. 반갑다. 근황부터 전해달라.
    "한창 신곡작업으로 정신이 없었다. 공연 시즌과 겹치다 보니 생각보다 준비가 늦어졌다. 묵히고 있다가 엎어버리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니 벌써 4개월 정도가 지나갔다. 올 한해 많은 일들이 있었다. 4집 앨범도 냈고, 방송에도 나갔으니까. 가을 쯤이 되어서야 숨을 좀 돌리는 느낌이다."

    Q. MC스나이퍼가 당신을 지목했다. 친밀한 사이인가.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만나면 즐겁게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다. 한 마디로 '상남자' 같은 친구지. 사실 MC스나이퍼는 나보다 한 살 많은데, 그냥 친구를 먹기로 했다. MC스나이퍼가 빠른 년생들과 친구로 지내다보니 족보가 꼬였는데, 나중에 '한 번 친구면 끝까지 친구'라고 하더라. 그때 '완전 사나인데?' 싶어서 친구를 맺었지."

    Q. "새로운 방식의 라이밍을 시도한 선각자 같은 사람", "글에 뚝심과 뿌리가 있다. 아이러니하게 그 안에 두려움도 있다"는 MC스나이퍼의 표현에 대해선.
    "두려움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주관적 해석으로 받아들이면 음악안에서 느껴지는 강박이 아닐까 싶다. 강박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한다는 게 맞다면 정확한 표현이다. 모든 아티스트가 완벽함을 좇지만, 난 유독 내 안의 틀 안에서 매만지는 걸 좋아한다. '라이밍'이라는 부분이 도드라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덕분에 구축한 아성들도 있지만, 앞으로 깨나가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Q. 피타입하면 '우리 말 랩의 장인', ''라임 몬스터'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듣기 좋고, 명예로운 이야기다. 다만, 이제 그만 따라 붙어야 할 수식어 같기도 하다. 너무 그쪽에만 포커싱을 맞추니까 사람들이 다른 부분을 안 본다. 하하."

    Q. 피타입의 랩은 어떤 부분에서 남달랐던 걸까.
    "음운적인 접근, 국어학적 접근을 좀 했다. 굳이 따지자면, 음운학적 접근이 도드라져 보였을 거다. 음수율, 초성, 중성 등을 강박적으로 많이 매만지려고 했으니까. 그런게 스스로 재밌었다. 말 맞추기, 소리 맞추기가 마치 퍼즐 게임 같았지. 다른 소리를 찾아주는 가사나 랩이 가능해질 때 쾌감을 느끼기도 했고. 물론 나 혼자 구축한 건 아니다. 초창기엔 버벌진트와도 함께 음악하면서 노력을 했었고."

    Q. 라임 말고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춰주길 원하나.
    "다양한 표현력이다. 일상적인 모습을 해상도 높게 묘사하는 것. 예를들면, 술자리에서 할 법한 말들? 소주 냄새나고 담배 연기 자욱한 분위기에 고추가루를 확 뿌린 얼큰한 가사를 쓰려고 하거든. 물론 내가 가진 라이밍을 당연히 녹여내야지. 피타입의 연장선에서 문장력과 표현력을 담으려 한다."

    Q. 피타입 음악은 전반적으로 무겁고 어둡다. 성격 때문인가.
    "그렇진 않다. 평소에는 유쾌함을 지향한다. 노래가 어두운 이유는 멋지게 꾸며내는 것 보다 깊이 있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지금 내 상태를 표현해내는게 내 스타일이다. 물론 '꿈의 해석' '소나기' 처럼 픽션으로 만든 곡도 있다. 그런데 상상으로 빠지면 항상 몽환적이나 우울해지더라."

    Q. 철학과를 나온게 영향을 미치는 걸까.
    "조금은 있을 거다. 꼭 철학과에서만 쓰는 현학적 용어를 쓰는 건 아닌데, 철학과 냄새가 나는 어려운 용어들을 자주 쓰는 편이니까."

    Q. 사랑 노래가 거의 없는 점도 흥미롭다.
    "주로 이별 혹은 이별 후, 그리움 등 네거티브한 곡들이 많지. 사랑 고백이나 세레나데 같은 건 오그라들어서 잘 못한다. 유일하게 했던 게 2집 '해피 피플' 정도다. 그 당시에는 그정도로 사랑했던 분이 있었으니까 했던 건데, 결론적으로 그 분과는 헤어졌다. 있지도 않은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걸 잘 못하기도 한다."

     

    Q. '쇼미더머니' 이야기를 안 할수가 없는데.
    "사실 그 질문은 그만 받았으면 좋겠다. 하하. 솔직히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다. 그래도 약이 된 경험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크게 발목을 잡혔다고 생각하면 지는 거니까. 정신승리라도 해야지. 물론, 현실에서 승리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물론, 일어났던 일을 아닌 걸로 스스로 속이고 싶지는 않다. 잊으려고만 하면 큰 일 날 것 같다. 내가 준비가 미흡했던 건지 불운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가기로 한 건 나의 결정이었고 감당을 못한 것도 내 실수 인 거 니까. 영광의 상처라도 남기려면 패배를 직면하고, 극복할 것을 잘 찾아내야 할 것 같다. 대신 차분하고 냉정하게."

    Q. 프로그램의 반전을 위해 일부러 떨어진 줄 알았다.
    "하하. 아니다. 짜고 치는 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있었다면 멱살을 잡아서라도 합격하는 걸로 몰아갔겠지. 사실 탈락 후 3~40분간 촬영이 중단됐었다. 제작진도 많이 놀랐나보다. 누가봐도 의외의 결과였으니까."

    Q. 심사위원이 아닌 참가자로 나갔던 이유는.
    "무혈입성 했다면 감사했겠지만, 그 나름의 고통도 있었을 거다. 사실 심사위원으로 나가는 건 그냥 이득만 취하려는 것 같아서 싫었다. 내 손으로 직접 도전장을 던지는 게 내 타입이다. 기득권으로 남기는 싫었다."

    Q. 평소에도 가사 실수를 자주 하나.
    "사실 무대 위에서 래퍼들의 가사 실수는 빈번한 편이다. 플로를 잘 못 타거나 호흡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난 중요한 무대에서도 실수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심리적 압박감이 컸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어느 순간부터 '넌 피타입이야' 라는 걸 의식했던 것 같다. 자신감이 부담감으로 작용한 것 같기도 하고."

    Q. '쇼미더머니'란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은.
    "방송국이 하는 일이니까 당연히 시청률과 상업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슈몰이가 필요할 거다.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부분이다. 다만, 석연치 않은 건 그 여파가 자생적인 힙합신까지 밀려왔다는 거다. '쇼미더머니' 전과 후 공연 시장은 완전히 바뀌었다. 일례로 대학축제는 '쇼미더머니' 판이 됐지. 대한민국 문화소비가 미디어 지향적이니 CJ E&M, 엠넷만의 잘 못은 아닐테고.

    '노블리스 오블리제', CJ가 '쇼미더머니'로 벌어들인 수익의 100분의 1만이라도 언더 힙합신에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은 공연을 여는 데 쓴다던지, 방송에 나오지 않은 래퍼를 조명하는데 쓴다면 좋을 텐데. 지금은 오직 버는 쪽에만 집중하고 있어 아쉽다.

    그렇다고 '쇼미더머니'가 흥하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생각이다. 만약 '쇼미더머니'가 없어진다면 좋을까? 아마 그렇진 않을 거다."

    Q. 방송에서 지적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런 부분인가.
    "'선악과' 이야기를 그래서 했던 거다. '욕을 덜 먹으려면 이런 건 좀 해야지'라고 지적하고 싶었다. 비단 엠넷 뿐 아니라 '쇼미더머니'에 모인 수천 명의 광경도 웃겼다. 힙합을 잡(job)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싫었지. 힙합이 라이프 스타일이 아닌 하나의 비지니스 상품이 된 느낌도 들었고."

     

    Q. 그렇다면, 피타입은 어떻게 힙합을 시작했나.
    "아버지가 뮤지션이셔서 어릴 적부터 눈만 돌리면 음악 콘텐츠가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땐 백댄서가 댄스가수가 되는 지름길이었다. 내 친구들도 그런 부류였는데, 미국 음악을 접하기 용이한 내가 DJ역할을 맡았었다. 아버지가 옷은 안 사주셔도 CD는 잘 사주셨거든. (웃음). 그러다 랩을 따라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따라해보기 시작했지.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대학교 때부터다. PC통신으로 버벌진트, 휘성 같은 친구들을 만나 같이 음악하다보니 어느 순간 랩이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이 됐다."

    Q. 활동명을 '피타입'으로 지은 이유는.
    "고등학교 때 동네 CD점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최초의 힙합 음반이 스눕독의 '도기 스타일(Doggy style)'이었다. 앨범 안에 강아지 캐릭터가 있는데, 이름이 씨-스타일(C-STYLE)이었다. 중간에 하이픈(-)이 있는게 참 멋져 보였다. '진필'이라는 이름에서 P를 따와서 피타입(P-TYPE)이라고 지었지."

    Q. 힙합 레이블 브랜뉴뮤직에서 음악하고 있다. 어떤가.
    "좋은 점도 있고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 일단 좋은 환경을 제시해준다. 회사가 규모도 있고, 시스템이 잘 갖춰있지. 반면, 내가 내킨다고 무조건 할 수 없는 부분들도 생겨나더라. 그런 부분들이 음악할 때 제약 아닌 제약으로 다가올 때도 있고. 모든 월급쟁이 들이 그렇듯이 나도 그런 고민을 한다."

    Q. 최근엔 외부 가수들과 협업도 늘었다. 대표적으로 거미, 박진영 등과 작업했는데.
    "지연이(거미의 본명)는 엠보트 시절 회사 동료였다. 이번엔 7~8년 만에 연락된 거다. 난 항상 마음 속에 우리나라 여성 보컬 중 원탑이 거미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 그럼 정인이나 알리한테 실례가 되려나? 아무튼 톱3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동안 함께 작업을 해보지 못했다. 이번에 도와달라고 연락이 와서 흔쾌히 수락했다."

    박진영 씨는 채널을 돌리다 '쇼미더머니'에서 내가 탈락하는 장면을 보고 '심쿵'을 느꼈다더라. 자주 꾸는 꿈 중 하나가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하는 꿈이라던데, 내 모습을 보고 감정이입이 됐나보다. 본인이 'K팝스타'에 나가서 나처럼 떨어졌으면 어땠을까 하고 가사를 쓰셨다던데,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

    Q. 후배들에게 레전드로 불리는데. 피타입은 어떤 실제로 선배인가.
    "날 무서워하는 후배들이 꽤 있다. 얼굴만 보고 멀리서 인사만 하는 친구들이 있지. 내 과거 모습 때문일 거다. 그 시절 나를 기억하는 동생들은 어려워하고 '꼰대'라고 하지만, 지금은 격 없이 하는 스타일이다. 요즘 친해진 동생들은 날 만만히 보고 장난도 많이 건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한해도 그렇고. 마이노스는 엄청 개긴다. (웃음)"

    Q. 피타입에게도 '형님'들이 있나.
    "물론이지 하하. 대표적으로 가리온, 션이슬로우 정도?"

    Q. 피타입이 생각하는 힙합다운 힙합은.
    "자신의 삶을 담아내는 것. 본인이 마이너리티가 아닌데 억지로 마이너인 척 해서도 안되고, 본인이 누리고 있지 못한 상태임에도 메이저리리티인 척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현실을 해상도 높게 표현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 또 어떻게, 왜, 뭐 때문에 사는지 풀어낼 수 있는게 힙합이라는 생각이다. 힙합이라고 해서 약자만을 위해서도 안 되고, 성공담으로 도배되있어도 안되고. 사람의 삶의 형태가 다양하듯이.

    미국 슬럼만큼, 우리나라 일반 대중의 삶도 비참하지 않나. 그냥 '다 잊고 오늘밤 놀자!' 하면 본질을 까먹은 거다. 다 잊고 놀자고? 좋다. 그런데 왜 잊자는 건지. 뭐가 아프니까 잊자는 건지 그 이야기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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