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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대법관 수를 조금만 늘려도 상고사건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양승태 대법원장의 역점사업인 상고법원 설립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김석우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검사는 지난 3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상고심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자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김 부장검사는 법무부 산하 전임 검찰제도개선기획단장으로 법무부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대법관 소수의 증원만으로도 1인당 사건 처리 부담량은 현저히 감소한다"며 굳이 상고법원을 도입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취지로 대법원의 상고법원 설립안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검찰제도개선기획단은 14명의 대법관 중 재판에 관여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과 전원합의체 재판에만 관여하는 대법원장을 제외하고 총 12명이 상고사건 처리를 한다고 봤다.
업무감소량(상고사건수/기존 대법관수 - 상고사건수/증가한 대법관수)을 원래 업무부담량(상고사건수/기존대법관수)으로 나눠 100%를 곱하면 업무감소비율(%)이 나오는 공식에 대입했다.
그랬더니 대법관 3명을 증원하면 업무부담량의 20%가 감소하며, 6명이 증원되면 대법관의 업무부담량이 3분의 1까지 줄었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김 부장검사는 또 "헌법재판소가 헌법 제107조 제2항에 의거해 대법원에 최종 심사권이 있다고 내린 판단에도 위배된다"며 "상고법원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고, 그 아래 심급을 달리한 법률로 설치하게 한 헌법 규정 취지에 위배된다"고도 지적했다.
40년 전에 비해 대법원 상고 접수 사건 수가 7047건에서 3만 6156건으로 5배 가량 늘었는데도 대법관 수는 오히려 16명에서 13명으로 3명이 줄어든 구조적 문제도 언급됐다.
이런 가운데 종전까지 공식 언급을 자제하던 법무부의 대응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법무부나 검찰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상고법원 반대" 입장을 내비치는 데 부담을 느껴온 것이 사실이다. 사법부 수장이 나서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상고법원 설립안을 일개 부처와 외청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 명의로 지난해 12월 발의된 상고법원 설립안 논의가 점차 국회에서 구체화되고, 대법원이 상고법원을 의식한 듯한 판결을 내린 뒤 점차 태도는 달라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16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상고심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선거법 위반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은 채 파기환송해 '박근혜 정권 눈치보기' 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실제 지난달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참석한 법무부 김주현 차관은 상고법원 설립안에 대해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며 넌지시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김 차관은 "정부 전체 내 의견을 수렴해 제기되는 문제점들이 법안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충분한 절차와 기간을 갖는데, 이 법안(상고법안) 관련해서는 정부 내 의견수렴한 적이 전혀 없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정자치부나 기획재정부 등 조직 개편과 관련한 부서들과의 논의가 일절 없이 의원 입법으로 상고법원 논의가 이어지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 법무부의 속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상고법원 반대 입장을 밝히던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은 "차관이 변명이 아니라 광분하면서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무부 내부적으로는 대법원이 판사 출신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허성욱 교수에게 연구용역을 줘 "상고법원 설치로 향후 10년간 경제성장 효과가 최대 70조원대"라는 결과를 도출한 점 역시 문제로 거론된다.
반면 대법원은 대법관 수를 늘리는 정도로는 대법관들의 업무부담이 여전히 크고, 의원입법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의견 수렴을 굳이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장관급인 대법관을 여러명으로 늘리는 것이 비용 문제도 있고, 전원합의체에서 중요 판결을 결정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고 항변한다.
따라서 수십년을 끌어온 상고법원 논의에 마침표를 찍으려면, 길게는 6~7년까지 걸릴 수 있는 정부입법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칼을 빼든 김에 의원입법으로 상고법원 설립을 이뤄내야 한다는 입장이다.{RELNEWS:right}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같은 달까지 상고사건은 3만 7562건에서 4만 2000건으로 약 12% 늘었는데, 이처럼 많은 사건 수를 해결하려면 상고법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법원 김선일 공보관은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본질적으로 문제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20명, 30명으로 늘리면 대법원에서 이상적인 토론이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법무부 검찰제도개선기획단에서 밝힌 '대법관 3명 증원 시 20% 업무부담량 감소' 결과와 관련해서는 "미봉책일 뿐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허 교수에게 연구용역을 준 부분에 대해서는 "국내 경제적 효과를 연구하는 학계 권위자로서는 허 교수가 유일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