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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비비안 마이어'의 발견, 한국사회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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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비안 마이어

     

    베일에 감춰진 미국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1926-2009)가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나 당대 유명 사진가들과 명성을 나란히 하고 있다.

    비비안 마이어는 보모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틈 날 때마다 사진기를 들고 거리로 나가 사진을 찍었지만, 생전에 전시회를 열기는커녕 자신의 사진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매일매일 찍은 사진들이 쌓이고 쌓이자 창고를 빌려 보관했다.

    20여 년 동안 해온 보모 일자리를 잃은 뒤로는 가난과 병으로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다. 늙고 지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수십만 장에 달하는 사진뿐이었다. 전 재산이랄 수 있는 네거티브필름과 슬라이드필름, 그리고 프린트는 이를 보관하던 창고의 임대료를 내지 못해 압류 당하고 만다. 결국 시카고의 한 벼룩시장에 경매물로 넘겨지게 되는데 그때가 2007년, 그녀의 나이 81살이었다.

    부동산중개업자이자 거리사진가였던 존 말루푸는 벼룩시장에 나온 비비안 마이어의 15만장에 달하는 필름과 다량의 프린트를 우연히 보게 됐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사진을 살펴보고 나서 380달러에 구입했다. 그때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낯선 사진가의 작품이었지만 인물 설정과 표정, 구도 등이 독창적이고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그는 블로그를 개설해 그녀의 사진을 올린 뒤 대중들의 의견을 물었고, 2009년에는 사진 소셜 네트워크 '플리커(Flickr)'에 그녀의 사진을 올려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네티즌들은 그녀의 거리사진에 열광했고 전 세계에 마니아들이 생겨났다. 언론들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보모 출신인 한 여인이 생을 바쳐 찍은 사진의 가치를 인정해 비중 있게 기사화 했다.

    경매로 넘어간 자신의 사진이 세인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할 무렵인 2009년, 그녀는 정작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사망했다. 그녀는 죽었지만 그녀가 남긴 사진은 미국, 영국 등 해외에 전시되면서 대중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당대 유명한 사진가 반열에 올라섰다. 조용하고 불우했던 생전의 그녀와 달리, 사후의 그녀는 사진들과 함께 화려하게 환생한 것이다.

    태풍 찬홈의 영향권 안에 있던 지난 일요일,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성곡미술관은 성황이었다. 그녀가 뉴욕과 시카고의 거리를 활보하며 찍은 행인들의 표정과 옷차림, 액세서리 등에서 소외계층의 우울하고 혼란스런 모습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거리나 공원, 지하철, 공공장소와 같은 연출되지 않은 실제상황 속에 놓인 사람들을 과감하게 밀착해 촬영한 사진에 눈길이 쏠렸다. 8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관람하려는 관객들도 줄을 이었다.

    전시장을 돌아 나오면서 문득 그들 사회가 부러웠다. 이름도 모르던 보모의 숨겨진 사진을 발견해 유명 사진가 반열에 올려놓은 과정이 놀랍기만 했다. 물론 예리한 안목을 지닌 부동산중개업자 존 말루푸의 판단과 치밀하고도 열정적인 역할이 있었다. 그녀가 찍은 사진의 예술적 가치를 확신한 그는 SNS를 통해 적극 알렸고, 비밀스럽고 고독했던 삶과 보모로 일하면서도 쉬지 않고 거리사진을 찍었던 그녀의 이중의 삶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해 흥행시켰다. 그 결과 그녀는 현재 가장 화제가 되는 사진가로 명성을 더하고 있다.

    비비안 마이어의 ‘발견’이 한국사회였다면 가능했을까. 문화 권력과 패거리 문화, 학연과 인맥으로 둘러싸인 숨 막히는 구조에서 과연 독학으로 사진을 배운 무명의 거리사진가를 평가하고 인정하는 냉정함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일개 부동산중개업자가 벼룩시장에서 찾아내 백방으로 알린 사진의 진가를 공감할 수 있는 관용도 기대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진의 예술성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나다 할지라도 한국의 문화풍토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어느 한 개인이 한 분야의 일에 온 영혼과 인생을 바쳐서 평생 이루어 낸 성과물을 열린 눈으로 바라보고 응원해주고 평가하려는 노력 이전에 학벌과 수상 경력, 스승이 누구인지를 먼저 따지는 풍토 때문에 한국사회에서는 진주처럼 숨어있는 보물을 찾아내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비비안 마이어를 부활시킨 사회가 부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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