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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지진에 함께 무너진 네팔노동자들의 코리안드림

    • 2015-05-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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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듯한 생활 견뎌가며 네팔에 집 장만했건만…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네팔문화원에 마련된 분향소 (사진=김광일 수습기자)

     

    "집만 장만하면 가족들이 안전할 줄 알았는데…"

    지난 2009년 한국에 와 설탕공장과 도금업체 등에서 일했다는 네팔인 모호라(28) 씨는 모국의 대지진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그의 가족들은 무사했지만, 카트만두 인근 다딩 마을에 그가 장만했던 집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져버렸다.

    "먹고 싶은 것 참고, 입고 싶은 옷 안 사고" 빠듯한 생활비만 남긴 채 매달 100만 원씩 네팔의 가족들에게 보내, 6년만에 마련한 첫 보금자리였다.

    그는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만든 집이 갑자기 다 날아가버렸다"고 말하고, "마을 전체에 건물 한 채 남아있지 않다 한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더 큰 피해는 면해 천만다행이라는 모호라 씨는 가족들의 안전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전화 연결이 잘 되지 않아 여태껏 가족들과 세번밖에 통화를 못했어요. 네팔로 돌아가는 친구들에게 '우리 가족과 마을 사진을 꼭 찍어와달라'고 부탁하고 있어요."

    카트만두로부터 동쪽으로 44㎞ 떨어진 멜람치 인근 바우네 빠띠버잔 시장 마을이 지진으로 인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카트만두=CBS노컷뉴스 장성주 특파원)

     

    서울시청 인근의 인도음식점에서 일하는 커드카(30) 씨도 마찬가지.

    8년간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4년 전 카트만두 인근 빔둥가 마을에 집을 지을 수 있었지만 이번 사태로 폭삭 무너져내렸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난 뒤 오전엔 네팔대사관 식당, 낮엔 음식점, 그리고 밤에는 다시 대사관을 오가며 땀흘린 결과물이 허망하게 사라진 것이다.

    그는 "아직 1000만 원의 대출금이 남았는데 허탈하다"면서 "다시 새집을 마련하려면 10년은 더 걸리지 않겠냐"고 씁쓸해했다.

    주한 네팔문화원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인은 2만 9,000여 명.

    이들 가운데 이번 대지진으로 가족을 잃거나 피해를 입은 상당수가 곧장 귀국길에 올랐지만, 모호라씨나 커드카씨처럼 한국을 떠날 수 없는 이들도 많다.

    가족들이 무사한 경우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휴가를 쓰기가 쉽지 않은 데다, 네팔에 한 번 다녀오는 비용을 차라리 송금해주는 편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국에 머물면서는 슬픔을 드러내놓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지난 29일 낮 종로구 원남동의 낡은 건물 3층에 자리잡은 네팔문화원을 찾았을 때도 한쪽 벽에 설치된 분향소 앞에 모여앉은 네팔인은 네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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