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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 자매들 "학교도 직장도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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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세월호 희생자 자매들 "학교도 직장도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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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베 어묵발언, 악의적 댓글로 인한 화… 풀 곳 없어.

     

    - 유가족인 것 아는 것 같아 사람 만나기 두려워
    - 희생자 형제자매들, 만남 가진 뒤 성명서 발표
    - 진상규명 못하는 시행령은 폐지해야
    - 어린 희생자 동생들, 전문가 상담 받아들이지 못해
    - 아이들 뿐 아니라 형제자매 대다수 심리치료 제대로 안 돼
    - 언론, 유족들에 대한 악의적 보도 멈춰야
    - 미디어와 가까운 젊은 세대 유가족들, 상처 많이 받아
    - 유가족들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희망 될 것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5년 4월 15일 (수)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남서현, 최윤아

    ◇ 정관용> 내일이 세월호 1주기입니다. 그동안 많은 유가족 분들 저희가 만나 뵀죠. 오늘은 좀 젊은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두 언니를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먼저 남서현 씨?

    ◆ 남서현> 네.

    ◇ 정관용> 어서 오십시오.

    ◇ 정관용> 최윤아 씨?

    ◆ 최윤아> 안녕하세요?

    ◇ 정관용> 두 분 잘 아시죠?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그전에는 몰랐죠?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남서현 씨는 여동생, 남동생?

    ◆ 남서현> 여동생이요.

    ◇ 정관용> 이름은?

    ◆ 남서현> 남지현.

    ◇ 정관용> 지현이 언니, 남서현. 윤아 씨는?

    ◆ 최윤아> 최윤민 언니요.

    ◇ 정관용> 둘 다 여동생, 그렇죠?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같은 2학년?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같은 반이었어요, 아니면...

    ◆ 남서현, 최윤아> 아니오, 옆반이요.

    ◇ 정관용> 옆반. 남서현 씨, 최윤아 씨 둘 다 20대?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지금 직업은?

    ◆ 남서현, 최윤아> 무직.

    ◇ 정관용> 무직?

    ◆ 남서현, 최윤아> 네, 무직입니다.

    ◇ 정관용> 학업졸업하고, 이제 무직?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취업 준비중?

    ◆ 남서현> 아니요, 취업하기 싫어서 너무 바빠서... 세월호 일만 해도 그리고 어딘가에 집중을 잘 못해요. 그런 세상 것들에 집중할 여력이 없어요, 지금 마음속에.

    ◆ 최윤아> 저는 애초에 취직 활동하고 일을 하고 재직 중이었는데 이것 터지고 도저히 회사를 다닐 수가 없어서 그만 둔 케이스예요.

    ◇ 정관용> 언제 그만두었어요, 그러면?

    ◆ 최윤아> 작년 12월까지만 그만두고 1월부터는 안 나갔어요.

    ◇ 정관용> 일을 못하겠어요?

    ◆ 최윤아> 이게 일이 금방 끝나는 게 아니라 부모님들이 자꾸 국회에 있었는데 갑자기 경찰이 충돌돼서 부모님들이 다치셨다, 이런 뉴스가 뜨고 도보행진한다, 이런 뉴스가 계속 뜰 때마다 부모님은 지금 다치실지도 모르는데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이런 생각 때문에 회사에 앉아 있기가 너무 힘들고 제 심적으로도 너무 힘든데 사회생활이라는 게 제 기분이 우울하다고 해서 그걸 다 표출할 수가 없잖아요, 다른 사람들한테. 그걸 다 참으면서 직장 스트레스도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저히 못 참겠어서 그냥 그만 두고 잠깐만 쉬면서 차라리 죄책감이 드니까 윤민이를 위해서 이 일을 좀 하겠다 하고 그만두었어요.

    ◇ 정관용> 남서현 씨는 아예 구직 활동 할 생각도 없고? 대학을 언제 졸업했어요?

    ◆ 남서현> 제가 원래는 여름에 졸업하는 거였는데.

    ◇ 정관용> 작년 여름에?

    ◆ 남서현> 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논문을 쓸 그런 것도 없었고 그냥 아무런 그런 게 없어서 졸업 유예하고 이번에 겨우 졸업했죠.

    ◇ 정관용> 앞으로도 그러니까 다른 직장을 구할 생각도 없고?

    ◆ 남서현> 네, 없어요. 그게 제가 어딜 가면 사람들이 제가 유가족인 것을 다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 정관용> 몰라요.

    ◆ 남서현> 그런 기분이 자꾸 들고 두렵고 그리고 세상 사람들 만나는 것도 두렵고 다 내가 유가족인 것을 말하면 알까봐 두렵고 그런 것들이 다 두려운 게 좀 많은 것 같아요.

    ◇ 정관용> 왜요, 알면 왜 두려워요?

    ◆ 남서현> 제가 좀 울보인데 이렇게 사람들 만났을 때 제가 밝히지 않았다면 세월호 유가족인 것을, 세월호 이야기를 할 때 내가 거기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이런 것들도 무섭고. 그리고 제가 사회에 나가서 어떤 활동을 한다고 해도 이 세월호 참사에 아직까지 아무런 진상이 규명이 안 됐고 계속 부모님들 활동하고 계신데 제가 그걸... 집중을 못할 것 같아요.

    ◇ 정관용>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없더라? 실제로 바쁘죠, 또?

    ◆ 남서현, 최윤아> 네.

    ◆ 남서현> 1주기 되니까 더 바빠지는 것 같아요.

    ◆ 최윤아> 맞아요.

    ◇ 정관용> 특히 요즘?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이렇게 보통 세월호 유가족 그러면 저희 방송에서도 많은 분들을 모셨습니다만 대부분 아버지, 어머니예요. 그런데 이렇게 자매들, 형제들이 있다는 것 우리는 알고 있지만 미처 못 만났습니다, 솔직히. 그런데 그런 분들끼리 모여서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 이름의 기자회견도 최근에 하셨더라고요. 그런 형제자매들끼리 또 따로 모여요?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따로 만나고?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그분들께 이렇게 따로 모이고 만나게 된 또 기자회견까지 하게 된 것은 어떤 사연인지?

    ◆ 남서현> 처음에 저희 형제자매가 전원은 아니고 160여 명 정도 되는데 전원은 아니고 일부가 카톡방이 있어요. 서로 메신저가 있어서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그렇게 하는데 이번에 4월 27일에 시행령 입법예고 되면서 부모님들이 청운동에 나가셨고 저희가 그 현장에 있었는데 이게 진짜 이전과 너무 다르더라고요. 과잉진압이라던가 이런 것들이.

    ◇ 정관용> 경찰의 자세가?

    ◆ 남서현> 네. 그리고 저희가 시행령을 딱 처음 봤을 때 든 느낌은 ‘아, 이게 벼랑 끝이구나. 이게 통과되면 진상규명 못하겠다’라는 느낌을 저희 형제자매도 받았어요. 그래서 저희끼리 만나서 이거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 우리도 뭐라도 하자. 지금 1년 동안 우리가 아무 것도 안 했는데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됐다. 우리도 더 이상 그만 있지 말자라고 처음에 성명서를 냈어요, 이 시행령 즉각 폐지하라라는.

    ◇ 정관용> 형제자매 이름으로?

    ◆ 남서현> 네, 그게 먼저 됐고 그것을 기반으로 형제자매 기자회견이 이뤄진 거예요.

    ◇ 정관용> 시행령을 보니까 이건 안 되겠다 싶어요?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그리고 방금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라고 그러셨는데 아무 것도 안 한 것 아니잖아요?

    ◆ 남서현, 최윤아> 그러니까 어떤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는...

    ◇ 정관용> 형제자매 이름만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셨다?

    ◆ 남서현, 최윤아> 네,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 남서현> 전면에 나선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 최윤아> 솔직히 말하면 부모님들과 계속 국회에서 계속 농성도 하고 광화문이고 청운동이고 도보고 형제자매들이 참여를 계속하기는 했어요. 하긴 했는데 공식적으로 형제자매 이름을 걸고 앞으로 나서게 된 게 처음이라서 그렇게 표현한 거예요.

    ◇ 정관용> 팽목항까지 도보로 왔다갔다하기도 했잖아요, 많은 분들이? 혹시 두 분은 거기는 같이 못하셨어요?

    ◆ 남서현> 아니요, 그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고 반별로 돌아가면서 구역을 맡아서 했거든요. 그때그때 참여하고 그런 식으로...

    ◆ 최윤아> 먼저 오시는 부모님들 옆에서.

    ◆ 남서현> 네.

    ◇ 정관용> 벌써 1년이 흘렀는데 참 몸도 고되고 마음도 고된 그런 한 해였네요, 그렇죠?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뭐 기억나는 거 너무나 많겠지만 뭐가 제일, 1년이라니까 여쭤보는 거예요.

    ◆ 최윤아> 그거... 그 사진? 저는 현장에 없고 회사다닐 때라서 사진이 한 장이 제일 기억이 나는데 대통령님이 부모님들이 살려달라고 국회 출석하셔서 살려달라고 피켓을 들고 막 소리치신 적 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랬는데 되게 레드카펫을 사뿐히 밟고서 지나가시더라고요, 대통령님이. 외면하시면서, 누가 봐도 보시기 싫다는 듯이 이렇게 외면하고 걸으셔서 아, 이제 더 이상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실 생각이 없구나. 딱 그때 제일 크게 확 느꼈었던 것 같아요, 그 사진이랑 영상보면서. 그때...

    ◇ 정관용> 또 기억에 남는 거로는?

    ◆ 남서현> 사실 제가 사고 이후에 1년이 지났는데 제 체감상 지금이 한 5월쯤 된 것 같거든요. 그 이후에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사실 기억이 안 나요. 그 순간순간 너무나 큰 사건들, 부모님들이 삭발도 하시고 도보행진도 하시고 너무나 큰 사건들이 중간중간에 있었는데 저는 어제 일어난 일 같거든요, 항상. 그래서 하루하루가 그냥 버티듯 사는 그런 것 같아요.

    ◇ 정관용> 세월 시간의 흐름조차 잊어버렸다?

    ◆ 남서현> 네.

    ◇ 정관용> 형제가 어떻게 돼요?

    ◆ 최윤아> 저는 우리 둘 다 세 자매인데.

    ◇ 정관용> 딸만 셋?

    ◆ 최윤아> 세 자매인데 막내들이 그렇게 된 거예요.

    ◇ 정관용> 아... 그러면 위에 언니가 또 있어요, 아니면 가운데가 있어요?

    ◆ 최윤아> 저는 가운데 있는 거고.

    ◆ 남서현> 저는 둘째예요, 위에 언니가 하나 더 있는 거요.

    ◇ 정관용> 그러면 지금 언니나 아니면 그 가운데 동생이나 다 비슷비슷하겠네요, 처지들이?

    ◆ 남서현> 네.

    ◆ 최윤아> 좀 성향이랄까, 형제자매들도 성향이 조금 나눠진 게 저나 서현이처럼 좀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답답함을 못 이겨서 뭐라도 해야 되겠다 하면서...

    ◇ 정관용> 가족모임에도 열심히 나오는 분이 있고 뜸한 분이 있을 거고.

    ◆ 최윤아> 그런데 제 동생 같은 경우는 되게 극도로 꺼려해요. 자기가 유가족인 것을 알리는 것과 이런 것을 되게 그때 상처를 사람들한테 너무 많이 받아서 사람들 앞에 자기를 밝히는 걸 되게 무서워하고 꺼려하거든요. 그런 형제자매들이 되게 많아요. 사람을 너무 무서워하고.

    ◇ 정관용> 어떤 상처를 받았기에 그렇게 무서워하게 됐을까요?

    ◆ 남서현> 언론?

    ◆ 최윤아> 언론도 있고 아무래도 진도체육관에서 저희를 속인 사람들이라고 하면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아니었을 거 아니에요, 진도체육관의 어른들이.

    ◇ 정관용> 어른들이죠.

    ◆ 최윤아> 그때 너무 거짓말도 많이 하고 무책임한 모습도 너무 많이 보여주시고 언론에서도 그렇게 하고 해서 너무 거짓 정보나 과장되게 해서 상처를 되게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솔직히 저도 나름 성인인데 거기서 겪어온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거의 두세 달을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정말 엄청 피폐해져 있어서 출근 거부하고, 되게 무책임하게 회사 못 다니겠다고 하고 얼굴을 못 쳐다봐서 막 대인기피증처럼 무서워해서 이렇게 시선 내리고 깔고 다니고 그랬거든요, 사람 얼굴을 못 보겠어서. 제가 그런데 그 어린 아이들은 얼마나 더 심하겠어요, 그게. 얼마나 어른이 더 무섭고 그래서 좀 그런 것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되게 무서워해요. 굉장히 같은 형제자매가 접근하려고 이렇게 말을 걸려고 해도 아,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안 할래요, 저는 싫어요, 저는 안 할래요 이러면서 뒤로 빠지고 이런 형제자매들이 되게 많아요.

    ◇ 정관용> 두 분은 우리 아이들의 언니들이지만 아이들의 또 동생들도 있을 것 아니에요, 중학교 다니고 초등학교 다니고 그런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 남서현, 최윤아> (한숨)

    ◆ 남서현> 중학생 아이들이 너무 어리니까 그리고 부모님들은 사고 이후에 바로 현장으로 투입되셨고 진상규명에 뛰어드셨고 직장을 다 버리셨고 이런데 아이들은 사고 이후에 장례가 끝나고 어느 정도 수습 이후에 바로 학교로 돌아갔거든요. 그러니까 누구도 그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집에 가도 엄마, 아빠는 진상규명을 위해서 밖으로 나갔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상담을 자꾸 시켜요. 아이들한테. 그런데 그 아이들은 그 상담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게 상담이라는 게 어떤 아이를 감정적으로 너희 아픈 부분을 어루만져 주는 게 아니고 자꾸 상담을 학문적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거예요. 이 치료가 뭐 2년 정도면 어느 정도 회복이 된다라든지 약간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니까 아이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죠.

    ◇ 정관용> 그분들은 전문가들이 하는데도?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정신과 의사 이런 분들이 하는데도?

    ◆ 남서현> 학교에서 하는 상담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이 많은데 내가 유가족인 걸 밝혀야 하잖아요.

    ◇ 정관용> 그렇죠.

    ◆ 남서현> 그리고 주변의 시선들, 그런 것들이 계속 1년 내내 그걸 느끼는 거예요. 내가 유가족이라는 것을 상담을 통해서.

    ◇ 정관용> 아, 상담을 할 때마다 다시금 또 되새기게 되고 되새기게 되고?

    ◆ 남서현> 거기서 자꾸 벗어나고 자기도 친구들이랑 공차고 놀고 싶고 수다 떨고 싶고 이러고 싶은데 자꾸 그 속에 갇히는 기분이랄까, 이런 것을 아이들이 자꾸 느끼는 거죠.

    ◆ 최윤아> 그리고 낙인을 찍는 느낌 있잖아요.

    ◇ 정관용> 상담이?

    ◆ 최윤아> 네, 수업 중간에 한번 아이들을 다 불렀었대요, 유가족 아이들만.

    ◇ 정관용> 수업시간 도중에?

    ◆ 최윤아> 네. 그래서 너무 창피하고 내가 유가족인 것 아이들이 다 알 것 같고 되게...

    ◇ 정관용> 그런데 이미 다 알고 있잖아요, 반 친구들.

    ◆ 최윤아> 그러니까 알기는 하는데 그걸 계속 상기시키면서 낙인을 찍는 느낌인 거죠. 수업 시간에 중간에 나와 그러면 쟤 왜 나가 그러면 쟤 유가족이어서 나가. 얼마나 낙인이에요, 아들이 그 어린 마음에... 그런 경우가 되게 그렇고 선생님이 배려를 못 해 주시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그러니까 친해진 어떤 동생이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수학여행이 있고 이런 게 안산에서 취소가 됐었잖아요, 사고 이후에.

    ◇ 정관용> 그랬죠, 그랬죠.

    ◆ 최윤아> 그래서 저희는 왜 체육대회나 소풍이나 이런 것 전혀 안 가요, 이렇게 한 아이가 물었대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 희생자 형제자매가 있는 반에서 세월호 사고 때문에 그렇다고 너무 쉽게 이렇게 딱 말하니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걔를 쳐다보더래요, 걔 잘못인 것처럼.

    ◇ 정관용> 음....

    ◆ 최윤아> 그러니까 그런 낙인이 의도하지 않았든 했든 그런 낙인들을 학교에서 계속 주는 거죠. 그런 걸 되게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되게 많았어요.

    ◇ 정관용>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맞는 또 전문가들의 적절한 접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지금 많은 말씀들 들어보니까 아니군요.

    ◆ 남서현, 최윤아> 네.

    ◆ 남서현> 그 아이들뿐만 아니고 형제자매 모두 전반에 걸쳐서 그런 심리치료가 제대로 안 돼 있죠.

    ◆ 최윤아> 저희는 애초에 처음에 프로그램도 없었어요, 치료 프로그램 상담 그런 것도 없다가 나중에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 심하다고 이렇게 해서 나중에 생겼는데 그 생긴 것도 저희가 유가족이고 저희가 힘들다는 것 밝히고 상담사한테 찾아가야지 상담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누가 형제자매가 자기가 유가족인 것을 밝히고 상담을 받으러 가고 싶어요.

    ◇ 정관용> 찾아오는 그런 서비스는 아직 전혀 없어요?

    ◆ 남서현> 애초에 있었는데 그게 정말 기가 막힌 게 장례식으로 찾아왔어요. 와서 2주 뒤에 내가 너를 방문할 것이다라고 통보를 해요. 그러면 정말 2주 뒤에 찾아와요, 방문을 두들겨요, 집 문을 두들겨요, 상담 받으라고. 그런데 정말 안 하거든요, 진짜 그게 정말 상처거든요. 아무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 식으로 되다가 어느 순간 흐지부지 되는 거예요. 저는 그 트라우마, 상담 받은 것 자체가 트라우마여서 상담 너무 싫어요.

    ◇ 정관용> 그 경험밖에 없나요, 다른 그동안에 상담 받은 것은 그거 한 번밖에 없어요?

    ◆ 남서현> 아니오, 처음에 그 트라우마센터 교수님이 연결이 되는데 그 교수님하고 얘기를 하는데 제 마음을 이해를 못해 주시는 거예요.

    ◇ 정관용> 그래요?

    ◆ 남서현> 네. 제가 애초에 처음에 저는 친구들을 만나는 게 싫어요. 친구들이 다 가식 같아요. 제 마음을 이해 못 해주는 것 같아요라고 했는데 좀 이상하네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 선생님이 바라보는 게. 그래서 이거 상담 안 되겠다, 나는 여기에 이 상담을 와서 더 상처를 받았다라는 느낌이 강해서 그 이후로는 안 갔던 것 같아요.

    ◇ 정관용> 안 가셨어요?

    ◆ 남서현> 네, 아예.

    ◇ 정관용> 아...

    ◆ 최윤아> 저 같은 경우도 저 때문이 아니라 부모님이, 한번 엄마가 갑자기 제 앞에서 죽고 싶다고 말하신 적이 있어요. ‘차가 날 들이받았으면 좋겠어, 윤아야’ 이러는 거예요, 엄마가. 그래서 깜짝 놀라서 트라우마 상담사 분 명함을 준 적이 있어요. 전화를 했어요, 엄마가 이런다고 무섭다고. 그런데 상담사 분이 지극히 일적으로 ‘아, 그랬어요? 아, 그러셨구나’ 이러시는 거예요, 너무 가식적이게. 그래서 뭐지, 이건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그래도 하긴 했어요, 털어 놓을 곳이 없으니까.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엄마가 죽고 싶다고 몇 번 하셨어요? 엄마가 자살충동 몇 번 느끼셨어요’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자살 프로그램에 참여해요? 자살 충동 여태까지 몇 번 있었어요? 죽고 싶다는 말 몇 번이나 했어요’ 저한테 되게 자살이랑 죽고 싶다는 이런 강렬한 단어들을 그 당시 저에게 계속 던지는 거예요. 말할 때마다. 말에 그 단어가 빠지면 안 된다는 당시 다 포함을 시켰어요, 모든 문장에. 그런 것을 딱 하고서 결국은 한다는 소리가 ‘자살방지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거기 가세요’였어요. 그래서 딱 그런 것을 통화하고 나니까 통화 끊고 나서 저는 딱 든 생각이 그거예요, ‘다시는 여기에 전화 안 해. 나는 다시는 상담 안 받아’ 이거였어요.

    ◇ 정관용> 혹시 주변에 다른 부모님이나 또 다른 형제자매들 가운데 아, 그래도 나는 상담을 통해서 좀 큰 도움을 받았어, 이런 분들 정말 없습니까?

    ◆ 남서현> 있기는 있어요. 정혜신 박사님한테 상담 받은 아이들은 다 좋았다고 말 많이 하거든요. 그리고 제가 힘들다고 하면 언니, 정혜신 박사님한테 가볼래 이렇게 나올 정도니까.

    ◆ 최윤아> 그런데 정혜신 박사님 말고는 나는 상담 잘됐다, 상담 받아서 좀 마음 후련해졌어, 이런 사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 정관용> 이런저런 과거 우리 사회에 큰 참사 같은 게 있을 때는 정신과 상담이니 정신과 의사들이 투입되는 이런 것 참 생각도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나마 그런 게 좀 이루어지나보다 했는데 직접 그 당사자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아...

    ◆ 최윤아> 학대, 오히려 정신적 학대를 주셨어요.

    ◇ 정관용> 아주 그냥 형식적으로만...

    ◆ 최윤아> 너무 형식적이라서 더 힘들게 하는 느낌? 그 형식에 저희를 맞추려고 일부러 하니까 저희가 더 힘들어지는 느낌?

    ◆ 남서현>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다 저희가 심리상담을 잘 받고 있는 줄 알고 트라우마 치료가 잘 되고 있는 줄 알고.

    ◇ 정관용> 잘은 몰라도 어느 정도씩은 진행되고 있겠거니라고 느꼈어요.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그런데 이렇게 한두 번 경험하고 여기는 갈 데가 못 된다, 이런 반응을 저도 오늘 처음 듣는데요.

    ◆ 남서현> 저희는 이 정도이고 부모님들은 거의 안 받으셨을 거예요, 아마. 너무 안 그래도 지금 너무 바쁘고.

    ◇ 정관용> 열심히 또 대책위원회 활동하시는 분일수록 시간조차 없었겠죠.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수없이 많은 그 어른들의 거짓말 등등 쭉 언론의 어떤 반응, 이런 것에서 참 상처 많이 받았다는 이런 말씀도 들었는데 또 일부 유가족들의 가슴에 막 후벼파는 이상한 말 한 사람들도 많이 있지 않아요? 그런 행동하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고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어때요? 어른들은 그나마 넘어가지만 젊은이들은 좀 민감하지 않나요?

    ◆ 남서현> 저희가 기자회견에도 언론에 호소를 드렸어요. ‘제발 악의적 보도 멈추고 제발 진정성 있는 보도를 해 달라’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그렇게 나쁜 말을 하는 게 마음이 악해서가 아니고 몰라서, 정말 언론에 속아서 이게 정말 사실인 것 마냥 알고 있기 때문에 저희를 나쁘게 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세월호 유가족이 이거 세금 도둑이다, 이런 식으로. 그런 것들이 정말 언론에서 뿌리는 그런 자료들만 정말 단편적인 것만 보기 때문에 그런 말들이 자꾸 나오는 건데 저희 형제자매는 정말 미디어랑 가깝잖아요, 저희 젊은 세대니까 휴대전화도 항상 들고 있고 그러니까 더 많이 보는 거예요, 그런 악의적 댓글들 같은 것들 그다음에 이번에 있었던 일베 어묵 발언 같은 것들을 너무 쉽게 접하니까 그때마다 뭐 형제자매 난리죠. 고소하겠다고 저희도 막...

    ◆ 최윤아> 이런 것 반응하지 말라고. 한 동생은 너무 화가 나서 페이스북 메시로 화를 냈대요, 그 일베한테. 그랬더니 갑자기 그 일베가 막 ‘제 생각은 이런데 아니신가 보죠’ 약간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너무 화가 가서, 이 어린 아이는 중학생이었는데 너무 화가 나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이 사람을 그러면서 너무 화가 가는데 풀 곳은 없으니까 계속 씩씩되고 있는 거예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저도 뭐 전문가는 아닙니다마는 이제 또 두 분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를 또 지어야 하는 상황이라 주제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두 분은 유가족입니다, 그렇죠? 유가족이 아닐 수가 없어요. 또 유가족임을 잊을 수도 없고 그걸 극복한다는 것도 또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돼요. 동시에 유가족이지만 남서현 씨예요. 또 최윤아 씨예요. 그런데 지금 아직은 남서현 씨 최윤아 씨를 못 찾고 있죠?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빨리 찾으셔야 될 텐데, 그렇죠? 그런 생각은 하세요? 아, 내가 유가족이지만 동시에 또 난데 이런 생각은 드세요, 어떠세요?

    ◆ 남서현> 그렇게 사고가 나서 계속 쉼 없이 앞으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여유도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고 어느 순간 보니까 제 주변에 남은 것은 유가족 분들 그다음에 우리 형제자매들, 진짜 끝없이 남은 그런 싸움들밖에 없는 거예요. 그 4월 16일 이전에 내 주변에 있었던 나의 꿈, 나의 소망이라든지 나의 학업, 나의 친구들 이런 것들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거예요,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까. 그런데 그 와중에 저를 찾으려니까 그게 너무... 어느 날은 너무 억울해서 잠도 안 와요. 내가 왜 유가족이 됐을까 그런 생각에. 그런데 대형참사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잖아요, 누구나 될 수 있는 거고. 사람들이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 최윤아> 저는 유가족으로서의 저를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처음에는 왜 나지? 왜 내 동생이지 이 생각 때문에 매일 밤 울고 잠도 못 자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이랬는데 물론 불면증은 지금도 겪고 있지만. 그런데 답을 찾았어요. 이미 유가족이야, 어쩔 수 없어. 그래서 그걸 받아들이고 난 후에 그러면 나는 유가족, 윤민이 언니로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싶다 그래서 지금 윤민이 언니 최윤아로서, 그냥 유가족이 아니라 윤민이 언니 최윤아로서 내 삶을 조금이라도 그러면 이 삶에 지금 살 수밖에 없으니까 이 삶이라도 그러면 제대로 살아보자라고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정관용> 희망이라는 단어를 써도 됩니까, 두 분한테?

    ◆ 남서현, 최윤아>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 정관용> 지난 1년 뭐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게 없다, 진상규명 뭐 책임자, 적폐해소... 말은 말았지만 이루어진 게 없다,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고 사회에 아마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고 그러셨을 것 같은데 그런데 어떤 희망이란 단어.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 남서현> 우리 함께해 주시는 분들?

    ◆ 최윤아> 그리고 우리가 포기안 하는 것? 거기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포기 안 하면 그래도 뭐라도 바꿀 수 있으니까 그 마음이 희망인 것 같아요.

    ◆ 남서현> 저는 알거든요, 저희 유가족 부모님들은 절대 포기할 분들이 아니고 그분들이 마냥 포기한다고 해도 우리 형제자매들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 밝혀질 거라고.

    ◆ 최윤아> 그 마음 자체가 희망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되게 작은 희망이고 소박한 희망이긴 한데, 그 마음 자체가 희망인 것 같아요.

    ◇ 정관용> 희망을 이야기하며 끝내야 되겠습니다. 안 그런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그렇죠?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오늘 두 분 고맙습니다. 건강하셔야 돼요.

    ◆ 남서현, 최윤아> 네.

    ◇ 정관용> 고맙습니다.

    ◆ 남서현, 최윤아> 감사합니다.

    ◇ 정관용> 우리 지현이 언니 남서현 씨, 윤민이 언니 최윤아 씨 함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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