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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오늘 뭐했지?]'강속구 투수' 고 박동희, 10K 화려한 데뷔전



야구

    [1990:오늘 뭐했지?]'강속구 투수' 고 박동희, 10K 화려한 데뷔전

    롯데 시절 박동희의 모습. (자료사진=롯데 자이언츠)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90년대 문화가 시작된 1990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여러분은 강속구 투수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최근 프로야구로 한정을 한다면 헨리 소사(LG)도 있고, 국내 투수 가운데는 최대성(롯데), 김광현(SK) 등이 강속구 투수로 통하고 있습니다. 기준을 꼽자면 적어도 시속 150km 이상 던져야 강속구 투수라는 애칭에 어울리겠죠.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시속 150km 이상을 한 번이라도 찍었던 투수, 그러니까 강속구 투수라는 애칭을 이름 앞에 붙일 자격이 있는 투수는 총 31명이었습니다. 물론 이들 모두 강속구 투수로 불리는 것은 아니겠죠.

    1990년대 초반 강속구 투수의 기준은 조금 다릅니다. 140km 이상만 던져도 강속구 투수라는 애칭이 붙고는 했습니다. 그런 프로야구에 150km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등장합니다. 바로 고(故) 박동희 입니다.

    2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0년 4월11일은 강속구 투수의 원조격인 박동희가 프로 데뷔전을 치른 날입니다.

    부산고-고려대 출신으로 일찌감치 최고 유망주로 떠오른 박동희는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제의를 뿌리치고 고향팀 롯데를 선택했습니다. 박동희는 150km 강속구를 앞세워 당시 최고 계약금 1억5200만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박동희는 당대 최고 투수였던 고 최동원과 선동열의 뒤를 잇는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아마추어 경력도 화려했습니다. 1986년 네덜란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다 승리 투수상을 받았고, 1988년 최고 구속인 156km를 찍기도 했습니다. 최고 계약금은 당연한 결과였죠.

    4월11일 대구 삼성전. 롯데가 3-1로 앞선 6회말 박동희가 선발 김청수에 이어 마운드에 오르며 프로 데뷔전을 치릅니다.

    삼진 퍼레이드가 펼쳐졌습니다. 7회 깁종갑에게 홈런을 맞았는데요(이날 유일한 피안타이기도 합니다). 이후 6명의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힘을 과시합니다. 7회 류중일, 이종두, 강기웅, 8회 장태수, 김성래, 박승호가 박동희 데뷔전의 연속 탈삼진 기록 제물이 됐습니다.

    앞서 연속 탈삼진 기록을 살펴보면 최동원이 1985년 2경기에 걸려 6명의 타자를, 선동렬이 1989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에 걸쳐 8명의 타자를 연속 삼진 처리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박동희는 데뷔전에서 1경기 최다 연속 탈삼진 기록을 세웁니다. 5연속 탈삼진 기록은 최동원, 김진욱, 선동렬, 최창호 등 4명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박동희는 4이닝 동안 14명의 타자를 상대했는데요. 아웃카운트 12개 가운데 10개를 삼진으로 잡았습니다. 게다가 프로야구 최초로 스피드건에 151km가 찍히면서, 누구보다 화려하게 강속구 투수의 등장을 알렸습니다. 당시 삼성 선발로 나선 최동원이 1⅓이닝 만에 3실점하면서 강판당했하면서 박동희의 프로야구 데뷔 임팩트는 더 컸습니다.

    3-1로 앞서던 롯데도 8회 5점, 9회 3점을 추가하면서 '슈퍼 루키'의 등장을 반겼습니다. 결과는 11-2, 롯데의 승리.

    이후 박동희는 승승장구했습니다.

    데뷔 해였던 1990년 10승7패 7세이브를 기록했고, 1991년에는 14승9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2.47라는 성적을 냈습니다. 1992년에는 8년 만에 롯데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 최동원이 있었다면 1992년에는 2승1세이브를 올린 박동희가 있었습니다(물론 정규리그에서는 17승을 올린 고졸 루키 염종석이 돋보였지만요). 1994년에는 마무리로 변신해 31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올스타전에도 네 차례(1990, 1991, 1993, 1994)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전성기는 짧았습니다. 오른 팔꿈치와 오른 무릎 부상으로 하향세를 탔는데요, 1997년 6월 트레이드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박동희와 김종훈이 삼성으로, 이동수와 박석진이 롯데로 옮기는 2대2 트레이드였습니다. 결국 2002년 삼성에서 방출됐고, 끝내 은퇴를 선언합니다.

    통산 성적은 59승50패 58세이브, 평균자책점 3.67.

    최동원-선동렬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던, 덕분에 '슈퍼 베이비'라는 별명이 늘 따라다녔던, 그리고 19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강속구 투수의 다소 초라한 은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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