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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조선왕조실록] 한글 사용을 반대한 관리들이 투옥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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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조선왕조실록] 한글 사용을 반대한 관리들이 투옥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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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 2월 20일

     

    조선왕조실록, 오늘은 중국 사대주의에 물들어 언문 즉 한글 창제에 반대했던 신하들의 이야기입니다.

    훈민정음은 세종 25년에 만들어져, 세종 28년에 정식으로 반포됩니다. 하지만 중국을 숭상하던 사대주의자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등 숱한 난관을 겪어야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종 26년의 일인데,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장문의 상소문을 올리자 세종이 이들을 직접 불러들여서 이유를 물어 봅니다.

    최만리는 "조선은 건국초부터 지성으로 대국을 섬기면서 중국의 제도를 준행해왔는데, 한자와 너무 다른 언문이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비난받는 일이 생긴다면 중국을 섬기는 도리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따로 언문을 만드는 것은 중국을 버리고 오랑캐와 같아 지려는 것"이며 "또한 새롭고 기이한 한가지 기예에 불과해 학문에 방해가 되고, 정치에 유익함도 없도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세종은 "처음부터 죄를 주려고 부른 것이 아닌데, 너희들이 사리를 돌아보지 않고 대답을 하니 그 죄를 벗기 어렵다"며 이들을 하룻동안 감옥에 가두라고 명했습니다.

    하지만 김문 이라는 신하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언문을 제작하는 데 찬성하더니 이제와서 불가하다고 말을 바꾼 이유를 국문을 해서라도 알아내라"며 따로 지시를 내렸습니다.

    {IMG:1}■ 세종 5년 (1423) : 군자감의 묵은 곡식을 백성들에게 판매(저화라는 지폐 사용)
    ⇒ 백성들이 곡식이 귀해 굶주리자 군자감에 보관중인 묵은 곡식을 저화 1장에 쌀 2되, 콩 4되의 값으로 풀게 하였다

    ■ 세종 7년 (1425) : 시녀로 궁 밖으로 내보내진 자는, 혼인을 제외하고 사역시키지 말게 하다
    ⇒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궁 밖으로 내보내진 시녀는 남편을 맞아 가는 것 말고는 어떤 사역도 시키지 말라고 한 것을 보면 결혼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세종 26년 (1444) : 집현전 일부 관리들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다
    ⇒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훈민정음 반포가 중국을 섬기는데 어긋나고 언문만 쓰면 한자를 잊어버려 옛 성현들의 고귀한 뜻을 배우기 힘들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상소를 냈다. 세종은 이들을 감옥에 가뒀다가 다음날 석방했다

    ■ 고종 1년 (1864) : 대왕대비가 무관집안의 자제들이 무술을 익히지 않고 청탁으로 등용되려는 폐단을 고치라고 지시
    ⇒ 대왕대비 조씨가 고위 무관 집안의 자식들이 청탁에 의해서만 벼슬길에 나서려는 세태를 나무라고 쓰러져가는 훈련원 건물을 고치라고 내탕금 1,000냥을 내렸다

    ■ 고종 40년 (1903) : 학부에서 영어학교 졸업시험을 보아 4명을 선발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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