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윤성호기자
"종북 딱지로 정치적 구속을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지. 주눅 들거나 움츠리지 말아야 합니다."
군사독재 시절 금서였던 <자본론> 세 권 전체를 1989년 한국어로 최초 완역한 국내 대표적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72)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더 나은 사회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게 막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에서 자본론을 강의하던 저술가가 국정원에 신고를 당하는 일을 비롯해, 미국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 관련 또다시 '종북몰이' 논란까지 불거진 데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서울대 교수로 발령받자마자 유학시절부터 10년간 준비해왔던 자본론 한글판을 '잡아가려면 잡아가라'는 마음으로 발간했다는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 교수가 된 지금도 "자본주의 사회는 나쁜 사회라고 꾸준히 '욕설'을 하고 다닌다"고 했다.
"자본론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감옥을 가던 당시에도 검찰이고 경찰이고 안기부고 내 책에 손도 못 댔는데, 지금 자유롭게 읽고 토론하는 게 무엇이 문제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가장 과학적으로 추적한 자본론이야말로 현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두고는 “자본주의 사회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부(富)를 키우는 건데, 그걸 못하게 해야 다시는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고 진단했다.
이윤을 쫓는 사회경제구조가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윤성호기자
24일 오후 성공회대에서 '자본론입문' 강의를 하던 김 교수는 여러 색깔의 펜으로 화이트보드를 몇 번이나 채우고 지워가며 노동 착취로 만들어지는 잉여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교재는 그가 지난해 8월 펴내 어느덧 6쇄를 찍은 <자본론 공부>다.
그는 "지금까지 썼던 책 가운데 가장 정치적"이라면서 "그간 자본주의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는데,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가 언제, 어떻게 망할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자본주의 사회 너머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갓 퇴근한 직장인을 비롯해 늦깎이 대학원생이 된 이들까지 서른 명 남짓이 강의실을 채웠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시청 앞 서울광장에 있었다는 한 수강생은 자본론을 공부하는 까닭에 대해 “암울한 시대에 세상을 바로잡는 데 작은 목소리라도 내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24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그는 “빨간 딱지야 우리가 붙인 게 아닌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왜 지금은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없는지 염려스럽다”고도 했다.
{RELNEWS:right}기초의원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대학원생 구병일(35)씨는 "학생운동을 격렬하게 했던 세대도 아닌데 자본론을 처음으로 읽으면서 새삼 많은 것을 느꼈다"며 "정치를 위한 아이디어를 찾고 싶다"고 바랐다.
'인류의 역사는 변한다'는 큰 전제 아래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성과 발전, 소멸의 법칙은 이야기하고 있다.
김 교수는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는 '노동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사회의 주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굵직한 사건사고들이 이념 논쟁으로 비화되는 가운데, 자본론을 읽는 움직임이 만들어 낼 울림이 주목되는 대목이다.자본론>자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