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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시장' 황정민 "신나는 첫경험 '독' 아닌 '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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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인터뷰] 한국 현대사 관통 산업화 세대 20대부터 70대까지 연기

    배우 황정민 (사진=황진환 기자)

     

    겨울 성수기 극장가에서 개봉 열흘 만에 300만 관객을 넘긴 화제작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제작 JK필름)은 배우 황정민(44)에게 커다란 도전이었다.

    주연으로서 제작비 100억 원대 영화를 처음으로 책임지는데다, 20대부터 70대까지 한 인물이 변모해 가는 과정을 세밀한 연기로 소화해야 했던 까닭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황정민은 "많은 개봉관 수에서도, 첫날 18만 관객이나 모았다는 점에서도 국제시장은 제게 여러 모로 첫 경험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전했다.

    "첫 100억 원대 영화. 솔직히 부담도 크지만, 재밌고 신나요. 배우로서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 선택이 '독'이 되지 않기를 바랐는데, 관객들에게 '득'으로 다가가고 있는 듯해 참여하기를 잘한 것 같아요. (웃음)"

    국제시장은 피와 땀으로 얼룩진 70여 년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 온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담고 있다.

    황정민은 국제시장의 흥행 돌풍을 두고 "우리가 영화로 전하려 했던 메시지에 관객들이 공감해 준 덕이 커 보인다"고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제가 그랬듯이 어느 순간 각자의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면서 감정의 무장해제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국제시장은 한 남자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잖아요. 제가 연기한 덕수라는 인물은 '우리네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된 것 같아요. 관객들이 자신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와르르 무너지는 시점이 있을 거라고 봤거든요."

    그가 덕수 캐릭터를 다소 비현실적인, 특별한 상징성을 지닌 인물로 바라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사진=JK필름 제공)

     

    "덕수처럼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부터 파독광부, 베트남전, 이산가족 상봉 등 한국 현대사 속 수많은 사건을 모두 겪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덕수의 경험 가운데 하나는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겪었을 겁니다. 그 연장선에서 제가 연기한 꼬장꼬장한 한 할아버지의 삶을 관객들이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면 배우로서 몹시 행복할 것 같아요."

    ▶ 완성된 영화를 언론시사에서 처음 봤나. 느낌이 어땠는지.

    = 그렇다. 촬영을 모두 마치고 1년을 기다렸다. 촬영 때는 제가 나오는 장면만 찍고 보고 했는데, 다른 배우들이 연기한 것까지 모두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오프닝 시퀀스인 흥남철수 장면에서는 어린 덕수가 나오니 제가 아예 없지 않나. 시나리오를 읽었으니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부터 미친 듯이 눈물이 나더라. 언론시사 당시 휴지를 나눠 줬는데, 받은 것 다 써서 옆 사람에게 빌리기까지 했다. (웃음)

    팔이 안으로 굽어서인지, 제가 연기한 덕수의 삶에 공감하다보니 어린 덕수의 고통이 더욱 깊이 다가왔던 것 같다.

    ▶ 어떻게 출연을 결심했나.

    = 하루는 윤제균 감독님에게 전화가 왔다. "대본을 보내 주겠다"기에 무슨 얘기냐고 물으니 "아버지 얘기"라고 답하더라.

    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알게 모르게 아버지를 이해해 가고 있었으니…. 그때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아버지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라면.

    = 제가 아이를 낳고 보니 너무 예쁘더라.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데…. 아버지에게 저 역시 그렇게 사랑스러운 존재였을 텐데, 지금은 왜 그러지? (웃음) '힘든 사춘기를 보낼 때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줬으면 덜 힘들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 왔다.

    제가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돼 보니 아이러니하더라.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니라 남자로 보게 되고, 그러한 것이 알게 모르게 이해의 계기가 된 듯싶다.

    지금도 아버지를 다는 이해하지 못한다. 여전히 아버지의 대소사는 어머니를 통해 묻고 듣는다. 그렇게 30여 년을 살아 왔는데 쉽게 바뀌겠나. (웃음)

    배우 황정민 (사진=황진환 기자)

     

    ▶ 덕수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나.

    = '나의 덕수'가 아니라 '우리의 덕수'라고 여겼다. 그래서 관객들로부터 '우리 아버지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을 듣지 않는 게 최대 목표였다.

    시대를 관통하면서 산 우리네 아버지라는 상징성을 주려면 색깔을 없애고 평범하게 연기해야 한다고 봤다. 그 점이 무척 어렵더라.

    ▶ 덕수가 살아낸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 파독 광부는 관련 자료를 봤다. 이산가족 상봉은 제가 중학교 때 겪은 일이다. 잊고 있었는데, 촬영을 하면서 그 슬픔이 세포에 각인 돼 있다고 느꼈다.

    베트남전의 경우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참전했던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적응 못하고 사람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던 기억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 파독 광부로서 갱도에 들어갔을 때는 어땠나.

    = 관련 자료와 영상을 보면서 '힘들었겠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갱도에 들어가 충격을 받았다. 단 1분도 버티기 힘들 만큼 먹먹하더라.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3년간 파견근무를 했는지….

    ▶ 덕수가 아내 영자(김윤진)와 독일에서 만나 펼치는 로맨스도 눈에 띄더라.

    =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빛나는 청춘이 있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그것도 누구보다 절절하게, 유치할 정도로 말이다. 감독님께 말해서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더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자고 건의하기도 했다.

    ▶ 클라이맥스로 설정된 이산가족 상봉 시퀀스는.

    = 그 장면에서 당시 실제 영상들이 나오는데, 제 등장이 그 연장선으로 보여지길 원했다.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었으면 했고, 촬영장에서 덕수 동생 역을 맡은 배우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 촬영에 들어가서는 이산가족이 상봉하듯이 그 배우를 브라운관을 통해 처음 봤다. 얼굴도 모르고 대사도 한 번 맞춰보지 않은 상태에서 원신 원컷으로 찍었다. 제가 영화로 봤을 때는 TV에 나타난 동생을 바라보는 덕수의 눈이 좋더라.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사진=JK필름 제공)

     

    ▶ 연기하는 데 가장 고민이 많았던 지점은 어디였나.

    = 70대를 연기하는 것이었다. 제가 70대가 아니니 어떤 생각에 뿌리를 두고 그 세대의 모습을 보여 주느냐가 최대 고민이었다.

    외모에서 보여지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그들의 사상과 생각을 이해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늙은 덕수가 주변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으면서도 자기만의 틀 안에서 버틸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라는.

    그것이 마무리되고 나서 종로에 나가 어르신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내복은 언제까지 입고 벗냐'부터 시작해 '오랜 시간 한 자세로 앉아 있는 비결이 뭐냐' '일어날 때 어디가 제일 아프냐' '신발은 뭐가 편하냐' '속옷은 뭘 입으시냐' 등등 세세한 것들을 물었다.

    담배 태우는 모습, 장기 두는 모습도 자세히 살폈다. 극중 마지막 장면에서 덕수가 양반다리로 앉아 있으면서 다리 한 쪽을 어정쩡하게 두고 있는 자세도 그렇게 탄생했다.

    ▶ 인상적인 연기를 하나 꼽는다면.

    = 늙은 덕수가 방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있다. 옷장 위에 있는 재떨이를 내려 꽁초를 고른 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우며 먼산을 보라보는 그 뒷모습과 얼굴이 너무 좋다. '저걸 하려고 그렇게 연구를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 배우 황정민은 실제로 어떤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인가.

    = 말 없는 아들, 친구 같은 남편, 친구보다 더한 '베프' 아버지다. (웃음) 어릴 때 저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반대급부인지 아이와는 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장난도 치고 한다.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데 사춘기가 지나고 커서도 그런 관계를 유지했으면 한다.

    아내는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손가락질을 해도 믿어 주고 막아 줄 친구 말이다.

    배우 황정민 (사진=황진환 기자)

     

    ▶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분인가.

    = 어머니가 경상도 분이신데 제 심장이 아플 정도의 목청으로 잔소리를 하신다. 아버지는 항상 말이 없으시다. 갑자기 변하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건강하게 늘 같은 자리에 계셨으면 한다.

    변하는 건 저인 것 같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한다고 할까. 단지 이해할 뿐 소통은 없다. (웃음)

    ▶ 매년 꾸준히 여러 편의 작품을 찍어 왔다.

    = 직업이 배우지 않나. 작품을 안하면 내가 어디 가서 배우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 배우로서, 예술가로서 가진 기조가 하나 있다. 많은 작품을 해서 관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연극, 뮤지컬도 꾸준히 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작품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다면.

    = 대본을 단편소설로 생각하자는 게 철칙이다. 읽었을 때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까울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을 정도로 재밌다고 느껴지는 작품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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