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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사법부, 군사정권 가혹행위에 눈감아…사과드린다"



법조

    판사 "사법부, 군사정권 가혹행위에 눈감아…사과드린다"

    전두환 정권 때 '역사란 무엇인가' 읽었다고 옥고 치른 피해자에 사과

     

    "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 인해 큰 고통을 당한 피고인에게 이 재판부는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이 사과드린다."

    서울북부지방법원 형사5단독 변민선 판사는 25일 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던 김모(53)씨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고,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표했다.

    이른바 '혁명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에 고문까지 받았던 대학생은 이제 초로의 50대 장년이 돼서야 뒤늦게 무죄 판결과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경희대학교 학생이었던 김 씨는 1981년 6월 영문도 모른 채 영장도 없이 경찰에 연행됐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5·18 민주항쟁을 무력 진압하고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직후였다.

    경찰은 민주화운동을 펼치던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에 김 씨도 가담해 북한을 찬양, 고무, 선전하고 관련 표현물을 취득했다는 등의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를 적용했다.

    김 씨가 취득했다는 '관련 표현물'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러시아 혁명사"와 박현채 교수의 "민족경제론",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 등으로 오늘날에는 석학들의 명저로 꼽히는 책들이다.

    1개월 동안 불법 구금됐던 김 씨는 풀려난 지 2개월여 만에 다시 불법 구금됐다. 악명 높았던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과 협박, 회유를 받던 끝에 김 씨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활동을 했다"고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증거라고는 불법 압수된 서적과 고문 끝에 나온 자백뿐이었고 자백 내용마저 재판 과정에서 김 씨가 부인했지만, 이듬해 9월 대법원은 징역 2년 6월을 확정판결했다.

    변민선 판사는 "김 씨의 자술서 등은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가혹행위에 의해 작성됐고 재심 대상 재판 당시에도 이미 김 씨가 이 내용을 부인해 증거능력이 없다"며 "압수물도 임의로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고, 있더라도 내용상 북한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상적으로 출판한 서적"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변 판사는 판결문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 아래서 사법부가 피고인이 불법 감금 및 가혹행위를 당한 점을 애써 눈감았다"며 "이 사건 재심 판결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피고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김 씨에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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