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CBS '브라보 마이 제주'<월-금 오후 5시 5분부터 6시,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에서는 매주 목요일 제주의 식물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수선화'에 대해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를 통해 알아본다.월-금>
수선화
엊그제 소복이 쌓인 눈으로 생태숲은 아직도 눈 세상입니다. 한 겨울 매서운 추위는 아니지만 올라오던 봄꽃들도 이번 눈으로 꽃잎을 모두 다물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가 여러 날이 지속될수록 겨울을 이기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들이 더 아름답고 위대해보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추위가 한창인 1월에 꽃을 피우는 수선화입니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한겨울에 벗을 삼아야할 대상으로 세한삼우(매화, 대나무, 소나무)라 해서 꽃으로는 매화를 생각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수선화를 좋아했습니다. 그것은 겨울추위를 이기고 기어이 꽃을 피워내는 고고한 자태가 자신들이 가져야할 정신과 덕목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때만 하더라도 수선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기 때문에 중국 연경(북경)에 다녀오는 사람들로부터 알뿌리를 겨우 얻어다 키울 만큼 귀한 꽃이었습니다. 제주의 유배시절 추사 김정희의 수선화에 대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김정희가 제주도 대정으로 유배를 오게 되는 데 이곳에는 담벼락, 밭둑, 길가에 흔한 것이 수선화였습니다. 더욱이 제주사람들은 이 귀한 것을 잡풀로 여기고 뽑아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이것을 본 김정희는 애석해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무암으로 가득 차서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던 제주사람들에게는 뽑아내도 계속 올라오는 수선화는 귀찮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수선화에 마음을 뺏겼던 김정희는 유명한 '수선화'라는 시를 지어 다산 정약용에게 보내는데 수선화를 '맑은 물에 해탈한 신선'이라 표현하며 직접 곁에서 볼 수 있었던 즐거움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수선화는 그림이나 시에 등장하곤 하는데 지금까지도 문학작품의 주요 소재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김동명의 시 '수선화'는 김동진에 의해 유명한 가곡으로 태어납니다. 정호승은 '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수선화를 통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해주는 소재가 되었던 것도 수선화가 주는 아름다움과 겨울을 넘기면서도 흐트러짐이 꽃을 피우는 고고함 때문일 것입니다.
한 겨울을 넘긴 꽃이라고 하면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강한 꽃대와 두툼한 잎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수선화도 날렵하고 두툼한 잎 사이로 올라온 비교적 굵은 꽃대에서 연노란 색의 청초하고 향기 있는 꽃을 피워냅니다. 수선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꽃으로 제주도와 거제도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12월이면 꽃을 피우는데 꽃자루 끝에 5~6개의 꽃송이가 옆으로 달립니다. 기본적으로 수선화의 꽃잎은 여섯 장이고 여러 겹으로 되어 있는 땅속의 비늘줄기와 수염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선화는 곤충들의 활동이 거의 없는 겨울에 꽃을 피워 꽃가루받이에 어려움이 있는 것인지 씨앗을 통해 번식을 하지 못하고 땅속줄기가 대신합니다.
금잔옥대
여기서 거제도에서 자라는 수선화는 부화관이라고 하는 황금색의 꽃잎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데 금으로 만든 술잔을 연상케 합니다. 이 모습 때문에 금잔옥대, 금잔은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제주에도 금잔옥대라고 하는 수선화를 들여와 키우는 곳도 있지만 자생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제주에서 자라는 수선화는 육지 보다 훨씬 빠른 시기인 12월이면 꽃을 피우고 꽃잎의 모양도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차이를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제주에서 자라는 것을 제주수선화라고 하여 따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수선화를 '몰마농(말마늘)이라 부르는데 '몰'은 동물인 말을 뜻하기도 하지만 '크기가 크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몰마농은 '말이 좋아하는 마늘'이라 는 것 보다 '뿌리가 마늘 같이 생겼지만 크기가 큰'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수선화는 지중해연안에서 중국의 남쪽 지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서양에서도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 내려옵니다. 그리스신화에 '나르시스라는 미소년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여 급기야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호수 옆에 나르시스의 혼을 담은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수선화의 학명(Narcissus tazetta var. chinensis Roem.) 가운데 속명 Narcissus가 이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선화를 한자로도 水仙花라 씁니다. 여기서 '水(물)'는 물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는 뜻이 아니라 서양의 전설처럼 '물을 사랑하는'이라는 의미로 이해해도 될 듯합니다. 그것은 수선화가 물이 없어도 돌담이 겹겹이 쌓여있는 돌무더기나 길가의 버려진 땅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제주의 산방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수선화가 꿋꿋하게 꽃을 피우고 있고 있습니다. 한 겨울 추위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은은한 향기와 고고한 자태로 꽃을 피워냅니다. 수선화는 겨울이라는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서 고고한 모습이라는 강한 자존심이 필요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모습이 '자존심'이라는 수선화의 꽃말을 만들어냈을 듯합니다. 현대를 치열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시대라고 합니다. 수선화를 보면 조금의 어려움을 탓하여 자신의 뜻을 접을 일은 아닐 듯합니다. 너무 지나쳐서는 안 되겠지만 약간의 자존심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