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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이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한편으로는 명절이라 더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노숙인과 독거노인 등 소외된 우리 이웃들에게 명절 날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배고픔보다는 외로움과 바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가긴 어딜 가요…이 꼬라지로 고향에 갈 수도 없고…손가락질만 당하지"
설 연휴를 앞둔 지난 8일 서울 영등포역 앞. 한 손에는 목발을, 한 손에 선물용 김 세트를 든 윤 모(51)씨는 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 곳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윤 씨는 오랜 노숙 생활에 피부가 두터워진 탓인지 옷깃을 파고드는 칼바람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인근 쉼터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지하철역이나 교회를 떠돌면서 근근히 끼니를 때우는 윤 씨는 노숙 생활만 벌써 14년째. 설날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설 당일을 제외한 나머지 연휴 동안은 노숙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교회도 쉬는 경우가 많아 윤 씨에게는 설이 반갑지만은 않다. 대부분이 풍요롭게 지내는 명절에 윤 씨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어야만 한다.
윤 씨는 손에 들고 있던 김 상자를 원망한다. "한 단체에서 설 선물로 줬는데 밥 없이 먹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줄 사람도 없고…" 어느새 윤 씨의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
윤 씨는 이럴 때면 한 살 나이를 더 먹었을 딸 생각이 간절하다. "가족이 너무 보고 싶다. 딸 하나 있는데 벌써 16살이다. 몸을 다치면서 가정이 파괴됐고 아내에게 식당 차려주고 딸을 맡겼다. 그래도 시집가는 모습은 봐야할텐데…" 고개를 떨군 윤 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빛 하나 제대로 들지 않아 냉기로 가득한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이 모(71)씨 역시 설날은 외롭기만 한 날이다.
외풍이 심해 집 안에서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어야하는 이 씨. 설 한파가 매서울수록 사람의 온기가 더욱 그립기만 하다.
사업실패와 연이은 도박 탓에 결국 가족들이 모두 자신을 떠났고 우여곡절 끝에 이 씨는 7년 전 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 곳에 겨우 들어왔다. 하루 하루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이 씨의 시름은 명절이 되면 더욱 깊어진다.
이 씨는 "애들이 보고 싶다. 아들과 딸이 지금쯤이면 자식을 낳았을 거다. 기 전에 손자, 손녀들을 볼 수 있을까"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이 씨의 가슴이 미어진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다지아나(33)씨는 한국에 들어온 지 벌써 6년이 넘었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5살짜리 아들도 뒀지만 지금까지 고국에 다녀온 횟수는 겨우 두 번.
아직 언어는 물론 한국 문화에도 익숙지 못한데다 물가가 비싼 한국에서 다문화가정 주부가 설 명절을 준비하려고 하니 그저 눈 앞이 캄캄할 뿐이다. 그렇다고 이런 어려움을 마땅히 털어놓을 곳도 없다.
게다가 한국에서 떠들썩한 명절을 보낼 때마다 고국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이 눈에 밟힌다.[BestNocut_R]
다지아나씨는 "조금씩 한국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하다. 가족들 사진을 보면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일수록 오히려 더 외로운 사람들. 이들에게 새해를 여는 설날은 그 어느때보다 외롭고 쓸쓸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