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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

    "'지식채널e'는 지식이 아닌 앎에 대한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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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0회 맞은 EBS '지식채널e' 김진혁·김한중 PD

     

    "'지식채널e'는 '지식'에 대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앎'에 대한 프로그램이에요. 지식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대하는 태도를 다루죠."(김진혁 PD)

    5분 남짓한 짧은 영상 속에는 내레이션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C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다분히 비유적인 영상, 사진 그리고 때때로 필요하다면 간략한 수치만이 등장할 뿐이다.

    우리가 당연히 아는 사실 같은데, 프로그램 말미에는 짜릿한 '반전'이 기다리고있다. 우리의 통념을 보란 듯이 뒤집는 지적인 충격.

    지난 1일 방송 900회를 맞은 EBS의 교양 프로그램 '지식채널e'다. 최근 강남구 도곡동 EBS 사옥에서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진혁 전 담당 PD와 김한중 현 담당 PD를 만났다.

    "일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제작진이 이미 내용을 습득하고 알려준다면, '지식채널e'는 알기 전 과정부터 시작해 알고 난 다음 이야기가 바로 끝나버려요."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김진혁 PD는 '지식채널e'의 특징으로 지적인 '불친절함'을들었다. 지식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일반적인 교양 프로그램과는 달리, 새로운 지적 지평을 시청자에게 열어주고서 나머지는 전적으로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둔다는 것.

    현재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김한중 PD도 "기본적으로 TV라는 매체는 시청자를 소극적으로 만든다"라며 "설명이 친절하지도 않고, 완성된 문장을 구사하지도 않고, 공간이 뚫린 여백이 많은 화면 구성은 자신도 모르게 그 여백을 메우려 한발 다가서게 되고,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고 부연했다.

    프로그램은 지난 2005년 9월 '1초'와 '베이비 사인' 편으로 첫 시작을 알렸다. 당시 과학(Science), 어린이(Children) 두 개에 불과했던 방송 카테고리는 현재 50여 개까지 늘어났다.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EBS의 간판 콘텐츠로 자리매김했지만, '지식채널e'는 프로그램 편성 사이의 공백을 메워주는 '스테이션 브레이크(Station Break)' 용으로 출발했다. 제작 비용도 처음에는 SB 관련 예산에 포함돼 있었다.

    "최초의 기획 의도 자체는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 집어넣어서 채널을 돌리는 시간에 임팩트 있는 영상을 통해 시청자를 사로잡자는 것이였어요. 그래서 원래 기획은 길어야 1분30초에서 2분이었는데 너무 짧다 해서 그것보다는 길어졌죠."(김진혁 PD)

    짧은 시간 안에 임팩트 있는 효과를 내려다보니 지금의 독특한 프로그램의 포맷이 갖춰졌다는 설명이다.

    "당시 편성부장님이 보이저호가 지구에서 출발해 날아가면서 수성, 금성, 화성 등을 하나씩 찍어 영상을 보낸 것을 어디선가 보셨어요. '몇일 째에 보내온 사진'이라는 식으로 사진과 자막으로만 표현한 것이었죠. 내레이션 없이 클래식 음악만 깔아서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은 것이었는데, 거기서 힌트를 얻었죠."

    김진혁 PD는 "'지식채널e'가 보여주는 여러 가지 스타일과 메시지 등이 이미 인터넷이나 광고에서는 인기를 얻고 있었다"며 "지상파에서 보기에 신선하지 않느냐. 어느 정도 반응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주 잘될 것이라고는 당연히 예측하지 못했다"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등극한 소감을 전했다.

    사실 '지식채널e'의 시청률은 0.5% 정도로,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짧은 방송 시간과 뇌리에 남는 영상·음향 효과는 기획 당시에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식채널e'를 스마트 기기 시대에 가장 최적화된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그때가 사실은 인터넷이 텍스트를 벗어나 동영상과 음악으로 멀티미디어화 되는 초기였어요. 그 혜택을 '지식채널e'가 많이 본거죠. 다른 프로그램이 TV 입소문이 인기의 8할이라면 '지식채널e'는 반반이에요."(김진혁 PD)

    인터넷의 덕을 많이 봤다는 그는 "프로그램 홈페이지도 2006년에 제작진이 직접만들었다"며 "방송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대해서는 모든 지상파가 대단히 무관심한 때였다"고 한 발짝 앞선 인터넷 플랫폼 개척을 설명했다.

    '지식채널e'는 어떠한 아이디어의 제약도 없이 사회, 정치, 문화 등 우리 주위의 모든 것 그 자체를 소재로 다뤄왔다. 자연스레 민감한 소재가 전파를 탈 때도 있었고, 일각에서는 이를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지난 2008년 5월 광우병 파동 당시 영국의 광우병 사례를 다룬 '17년 후'편 방송 이후 김현직 PD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것이 그런 예.

    김현직 PD는 "이게 정보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정보를 알기 전 단계까지 생각의'시동'을 거는 것이기 때문에 메시지가 담겼다기보다는 문제의식이 담긴 것 같다"며"문제의식을 담되, 특정 방향에서의 일방성을 해소하기 위해 휴머니즘의 가치 안에서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을 꿰뚫는 보편적인 가치인 휴머니즘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끔 하는'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것.

    "아이템을 채택할 때마다 중요한 것은 '상식에 근거하느냐'거든요. 상식 중의 하나가 휴머니즘이라는 거죠.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간혹 그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거나 왜곡되기도 하죠."(김한중 PD)

    촬영 없이 아이디어와 영상·음악으로만 승부를 보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아이디어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15명 남짓한 제작진이 각자 아이디어를 가지고 회의에서 발표하고, 적어도 3분의 2가 공감을 표해야 다음 제작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김한중 PD는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바로 아이디어를 접어야 한다"며 "아이템이 채택되는 과정 자체가 치열하다"고 고충을 전했다.

    '지식채널e'는 현재 정규 프로그램 편성 외에 일주일에 두 번씩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 시리즈'와 한국개발연구원과 공동 기획한 'KDI 공동기획 경제시리즈'도 선보이고 있다.

    '문화유산 시리즈'는 문화유산에 대해서 교과서에 몇 줄 적힌 이상의 숨겨진 지식을 대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유홍준 교수의 열망과 제작진의 뜻이 맞아떨어져 시작됐다. 'KDI 공동기획 시리즈'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직접 피부로 느끼는 경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원칙과 이론으로 확대되는 지식의 전달 과정이 '지식채널e'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 기획하게 됐다.

    "'지식채널e'가 7년2개월이 됐고, 제가 맡은 지는 3년이 넘었어요. 프로그램의 문법, 특징, 장점들은 이미 구축이 돼 있었죠. 어찌 보면 '지식채널e'는 '결핍'에서나온 프로그램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가진 게 아이디어밖에 없으니까 고통스러운 연출을 했을 거에요. 공은 초창기 PD들이 가져가야 할 것 같아요."(김한중 PD)

    "형식 면에서 지상파에서 이미 보았던 것을 EBS가 적은 예산과 좋지 않은 여건에서 따라간다면 다른 지상파와 차별화될 수 없었겠죠. 제작비가 한정돼 있다 보니 중요한 것은 규모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로 보여주는 것이었고, 아이디어로서 보여줄 수 있는 범위에서 해 본거죠."(김진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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