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대구에서 중학생이 친구들의 폭력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이후 전국 곳곳에서 봇물 터지듯 학교폭력 실상이 전해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CBS는 학교폭력의 원인과 실태, 예방·사후 대책의 실효성을 검토하고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한 방향 등을 일주일에 걸쳐 짚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편집자주]
지난해 지속적으로 친구들을 때리고 물건을 뺏어 오던 중학교 3학년 A군은 특수교육을 받기 위해 한 센터에 방문했다.
A군은 이내 그동안 숨겨왔던 속내를 털어놨다. 앞으로 자신의 삶을 상상하며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보는 생애 설계 시간이 되자, 경찰관이라는 꿈과 평범한 삶에 대한 갈망을 적어내려 갔다.
A군은 '(항상) 1등 자리에 서고 싶었다. 마음을 비우러 등산을 갔고 여러 생각이 들어 머리가 복잡했지만, 목표를 정하고 꿈을 향해 가니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며, 시상식 계단을 연상케 하는 그림 1등석에 '나'를 적었다.
◈ 학교폭력 근절의 핵심은 '마음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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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아이들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10대들 마음 속 뿌리 깊은 분노는 무시한 채, 연일 처벌 위주 대책만 내놓고 있다.
교과부는 이달 말 발표할 대책에 가해학생에 대한 유급제 도입, 부모 동의 없는 강제 전학, 위기학생 학부모 소환제 등을 담을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처벌이 아닌 '교육'이고, 징계가 아닌 '선도'라고 CBS 취재진이 만난 학생과 학부모·교사들은 입을 모았다.
◈ 아이들끼리 해결하도록 담임 노력 필요실제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1년 전부터 학생 전체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이른바 '전따'였던 6학년 A(11)양이 남다른 교육철학을 지닌 담임교사의 노력으로 전따에서 벗어났다.
A양을 향해 "지저분하다", "냄새 난다"며 놀리고 꼬집고 때리던 같은 반 남학생들은, 담임교사가 축구게임 전에 "승패에 상관 없이, 너 때문이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을 따르며 점점 변해갔다.
또 다른 반 B(11)양도 1년 전부터 '왕따'를 당하던 학생이었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앓아 교사 앞에서도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던 B양 곁에 아이들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학급회의'를 열어 아이들 스스로 교실 규칙을 정하게 했고, 왕따 문제를 공론화시켜 가해학생의 행동을 교실 사회 내에서 해결하도록 했다. B양은 친구가 생겼다.
◈ 전문상담교사도 '내방'위주 아닌 '현장'위주로 담임교사뿐 아니라 전문상담교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최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현재 전문상담교사 1인당 책임 학생수가 3,000명 가량인 점을 감안해 일선 중학교부터 확대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담교사들이 학생들의 '내방'에만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 대책처럼 무조건 수만 늘리는 것은 능사가 아니라고 CBS 취재진과 만난 이들은 입을 모았다.
상담교사들이 직접 현장으로 뛰어들어 학생들의 고민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대한 고민이 먼저라는 뜻이다.
◈ 현행 교육 평가 개선 필요해이와 함께 보다 근본적으로는 담임교사와 학교에 대한 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일선 교사들은 학생 성적과 '실적' 위주에 시달리고 있어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다고 하는 실정이다.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지자 현장에서는, 교육당국이 학교폭력 문제 발생시 담임교사와 교장, 교감 등 책임자에 대한 징계를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시교육청이 내년부터 학교폭력을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평가 방법"이라며 "방법을 잘못 택하면 문제가 더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가 몇 년 뒤 또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교육과학기술부의 개별 학교 안내 시스템인 '학교 알리미'에 학교 폭력 현황과 대처 등을 공개하도록 한 시스템도 문제로 시급한 개선책이다.
◈ 학교폭력 그 뒤…사후 프로그램 강화해야사후 프로그램 강화도 절실하다. 장차 사회를 이끌어갈 또 한 명의 국민을 인생의 낙오자로 만드는 데 대책의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서울 면목고등학교의 경우 지역아동센터와 연계해 학교폭력 가해학생 등 '고등위기' 학생들을 보내 초등학생들의 숙제 지도 등을 도와주며 스스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산만하거나 게임 중독에 빠진 학생들에게는 관련 치료 서적을 컴퓨터에 옮겨 적도록 하거나, 담임교사에게 대응 매뉴얼을 주지시킨다. 꼭 필요한 경우 자퇴나 강제전학 보다 무단결석으로 변경 가능한 출석정지로 징계를 내린다.
송형호 학생부장은 "교내봉사는 청소하면 끝나고, 사회봉사는 다녀오면 끝나고, 특별교육은 위센터 등에 다녀오면 끝나는 식으로는 성찰이 이뤄질 수 없다"며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가해학생·피해학생 가족에 대한 치유 프로그램은 거의 전무하고, 학교폭력 당사자들이 아닌 같은 반 학생들에 대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이 부재한 현실도 검토가 필요하다.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지난해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왕따 당하던 아이가 교내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같은 반 아이들 모두가 목격했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에 대한 치유 프로그램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 생활 속의 '분출구' 사회가 마련해줘야그렇다면, 고통 받고 있는 10대를 위해 사회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뛰어 놀 공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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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예방재단의 2010년 학교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자의 11.7%가 '자살 충동'이나 '등교 거부 충동'을 비롯한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가해자 역시 '스트레스'를 가해 이유의 하나로 꼽고 있다.
최연수 한빛청소년대안센터장은 "잇단 성폭행 사건으로 학교 운동장이 방과 후 폐쇄됐고, 주말에는 조기축구회장으로 변해버렸다. 공원이나 청소년수련관도 청소년들이 뛰어놀 공간이 아니고, 어른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 열린 학교, 지역사회의 공조 통해 해결
지역사회의 민간자원을 끌어들이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교내 상담교사를 늘리거나 위탁형 교육기관 지원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학생 전체'에 대한 상담을 기대하긴 현실적으로 무리기 때문이다.
명지대 권일남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상담교사들과 학교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지역사회 자원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지금처럼 3일, 5일 단위가 아닌 최소 6개월 이상의 꾸준한 상담을 할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BestNocut_R]
학교폭력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는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고, 가정과 학교가 열린 태도로 학생들을 대할 때 끊길 수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음지로 몰아놓고 양지에서 희망을 찾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