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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 죽자 결심만 수차례…이젠 애들이 삶의 보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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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다같이 죽자 결심만 수차례…이젠 애들이 삶의 보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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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의 달 기획특집①] 동반자살'까지 마음먹었던 김 씨, 아이들에게서 힘 얻어

    가족은 축복이다. 가족의 품 안에서 우리가 희망을 얻고, 위안 받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가족'의 힘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선 훈훈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이젠 애들이 삶의 보약이죠
    2. 엄마 힘내세요 두 아들이 있잖아요
    3. 뇌성마비 장애인 부부의 희망찾기
    4. 나는 가장이다
    5. 세 딸이 있어 알코올중독 이겨냈어요
    6. 가족은 축복이다


    ss

     

    2008년 4월. 거실에 앉아 있던 김혜숙(46.여.가명) 씨가 홀린 듯 아파트 베란다로 향했다. 창문을 열고 밑을 내려다봤다. '5층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까.' 문득, 두 아이를 옆에 끼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한 엄마의 사연이 머리를 스쳤다.

    그녀를 손가락질했던 김 씨는 지금 그 엄마와 같은 결심을 하려 한다. 남편의 사업 실패와 이혼, 간질을 앓는 아들(10), 어리기만 한 막내(3). 두 아들은 김 씨에게 죽어야 할 이유이자 죽어서는 안 될 이유였다.

    베란다 끝에서 삶과 죽음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그녀, '죽고 싶다'는 생각은 시도 때도 없이 김 씨를 찾아왔고 그때마다 그녀는 베란다 끝에 섰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발을 뗄 수 없었다.

    김 씨는 베란다 너머 허공을 바라보던 눈길을 거두고 베란다 안쪽의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이미 끝나버린 상황에 미련 갖지 말고 아이들이랑 다시 한 번 시작해 보자."

    이를 악문 김 씨는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섰다. 그러나 지독한 삶은 그녀를 다시 밀어냈다.

    ◈ 돈 한 푼 없이 길거리로…발작하는 아이 안고 그저 울기만

    3년 전, 김 씨는 남편과 이혼했다. 사업이 망한 이후 남편은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고 생활비도 거의 주지 않았다.

    무능력한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을 위해 김 씨는 이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이혼 후 새 삶을 살아보려던 김 씨는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하기까지 한다.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김 씨와 아이들은 길거리에 나앉았다. 다행히 지인의 도움으로 보증금 200만 원에 반지하 방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은 보이지 않았고 주머니에는 십원 한 장 없었다.

    "엄마 고기 사줘, 아이스크림 사줘."

    며칠 동안 굶은 아이들은 먹고 싶은 것들을 졸랐다. 간질을 앓던 큰아이 약값도 감당이 안됐다. 갑자기 경기를 일으키며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보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온몸이 땀에 젖어 녹초가 돼 잠든 아이를 안고 김 씨는 다시 절망했다.

    "애들이 뭐 먹고 싶다고 하면… (울음) 사줄 수 없고 제 성격상 쌀 떨어졌다 어디 말도 못하는 성격이라서 어려운 사정을 더 감췄죠."



    ◈ 공부방 선생님으로 제2의 인생…"보약 같은 두 아들 끝까지 지켜낼 것"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김 씨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에 직접 경기도의 한 지역 복지센터 문을 두드렸다. 허리가 아파 고된 일을 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복지사는 지역 아동센터 공부방 선생님 자리를 권했다.

    '해낼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섰지만 세상에 다시 발을 내딛는 그녀를 공부방 아이들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차상위계층 자녀가 대부분인 공부방 아이들은 부족한 용돈이지만 학교 앞에서 산 불량식품을 간식이라며 그녀에게 건넸고, 비오는 날이면 그녀의 어깨에 매달려 팔을 주무르기도 했다.

    "불량식품 같은 것을 종종 사오는데 안 먹을 수가 없어요. 애들이 나를 생각하고 샀기 때문에 먹어야 하잖아요. 내가 아이들 마음속에 있구나라는 생각에 보람을 느껴요."

    '동반자살'까지 마음먹었던 김 씨지만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오히려 아이들에게 기를 받고 도움을 받았다. 1년 전,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김 씨는 하늘색 와이셔츠에 분홍색 아이섀도로 멋을 낸 씩씩한 공부방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김 씨는 공부방에서 일하면서 가끔 자신의 볼을 꼬집어본다.

    "지금 여기 와서 일하는 순간도 예전에는 절대 올 것 같지 않은 순간이었다"는 김 씨. 남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김 씨에게 만큼은 특별하고 소중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공부방에서 일하며 김 씨가 받는 돈은 한 달에 80만 원. 정부 지원금까지 합쳐도 채 100만 원이 되지 않는다.

    세 식구 생활비에 한 달 20만 원씩 들어가는 큰 아들 약값까지 따지면 빠듯한 돈이지만 김 씨는 더 이상 베란다 끝에 위태롭게 매달렸던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문득문득 느껴지는 아빠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가족'이란 울타리를 지켜주고 싶어 친정 식구는 물론이고 시댁 식구들에게까지 이혼 사실을 비밀로 부쳤고, 아이들에게도 "아빠는 출장 갔다"고 말했다. [BestNocut_R]

    명절 때마다 가끔 들러 거실에서 쪽잠을 자고 가는 아빠를 보며 큰 아들은 "아빠가 불쌍해 보인다"며 눈물을 비치곤 한다. 김 씨는 그때마다 아빠 없는 아이들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강한 엄마가 되기로 다짐한다.

    "두 아이가 저한테는 약이죠. 보약과 같은 거에요. 내가 바닥에서 시작하지만 다시 일어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 십번씩 들어요. 하고 싶은 게 많은 두 아들의 꿈을 지켜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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