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도 화성과 용인의 한 체대에서 조교와 선배들이 후배를 폭행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는 운동을 하는 체대 학생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돼버린지 오래다. 선배에게 맞고 또 다시 후배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악순환의 고리. CBS는 대학내 폭력실태와 함께 대안을 3회에 걸쳐 집중취재했다.[편집자 주]| 글 게재 순서 |
| 1. '줄빠따의 공포'…체대 폭력, 그 실상은? 2. '기강 잡으려면…' 폭력이 필요하다고 믿는 그들3. "중고생들도 보장받는 인권, 대학생도 보장돼야" |
ㅇ
서울의 유명 사립 대학 운동부 소속이었던 정 모(27)씨. 그는 현재 운동을 완전히 접은 후 다른 진로를 모색 중이다. 운동부 시절 겪었던 폭력 때문이다.
'후배 실력이 저조하다', '선배 유니폼을 빨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달에 한 번 구타와 기합이 이어졌다.
'경기력 향상과 집중력 높이기'가 폭력의 이유였지만 졸업한 지금, 결과적으로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운동할 때까지만 해도 선후배 사이에서 이런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선배가 우리를 위해서 그런 거다 생각했는데 체벌을 해서 실력이 높아지는 것보다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잘하는 선수들이 그만 두는 경우가 더 많더라고요."
평생의 꿈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체대 내 폭력,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서울.경기지역 체육 관련 소속 학과 학생 6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폭력에 대응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전체 학생 중 39.5%에 달하는 221명이 '훈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운동부에서는 당연하니까'라는 응답도 20.8%로 116명이나 됐다.
학생들은 '집중력 향상'과 '경기력 향상'을 위해 기합이나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운동부에 체벌은 '필요악'이라고 인식한다는 말이다.
현재 체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정 모(25)씨는 "맞지 않으면 정신력이 나태해지는 것 같다"며 "부상 위험성도 줄이고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어느 정도 체벌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과내에서 임원을 했다는 체대생 김 모(24)씨도 "까딱 잘못하면 다칠 수 있고 정신이 헤이해질 수 있기 때문에 체대의 경우 기합받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또 학년이 올라갈수록 구타 문화를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 조사에서 폭력 경험에 대응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운동부에서는 당연하니까'라고 응답한 학생은 1학년의 경우 19.3%인 반면 4학년은 25.5%였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폭력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기도 내 체육 대학에 재학중인 최 모(24)씨는 "저학년때는 왜 때리나 했는데 3,4학년이 되고 보니까 운동에 대한 것도 그렇고 예의도 그렇고 1,2학년 때 못 본 게 좀 보이더라"고 말했다.
체대 졸업생 박 모(26)씨도 "학교 다닐 땐 맞는게 싫긴 했는데 막상 졸업하고 보니까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더 예의있게 행동하게 되고 당시에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지금은 이해된다"라고 말했다.
류태호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는 "폭력이 주는 긍정적 효과를 크게 받아들이면서 학생들은 선배가 자신에게 휘둘렀던 폭력을 선배가 되서 후배들에게 다시 휘두르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분란 일으키면 찍혀요" 쉬쉬하는 학생들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쉬쉬하는 학내 분위기도 체대 폭력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조교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경기도 화성의 한 대학은 지난 2009년에도 신입생 50여 명을 각목으로 구타하는 등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이에 소수의 학생이 반발했고, 학부모도 학교 측에 진상 조사를 요구했지만 사건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당시 사건을 겪었던 한 학생은 "학생들이 문제제기를 했지만 결국 선배들한테 문제 일으켰다고 찍혔다"며 "나중에는 오히려 학생들이 조교한테 사과까지 했다"고 말했다.
인권위 조사에서 '폭력상황에 대응하지 못한 이유' 1위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가 79.9% 391명으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분란을 일으키기 싫어서" 일부러 입을 다문다는 체대생도 있었다.
경기도 내 체육대학에 다니고 있는 이 모(26)씨는 "문제제기를 하면 오히려 집합이 더 심해지고 강압적이 되니까 더 자주 모이기 싫어서 그냥 한 번 가고 말았다"고 말했다. [BestNocut_R]
한 체대생은 "얘기하고 싶어도 뒷감당을 하기 겁난다"며 "지금 운동을 하고 있고 잘못 얘기했다간 앞길이 완전히 막힐 수 있다. 체육쪽에서는 그런 게 중요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다른 체대생도 "혹시라도 내가 말한 게 발각되면 학교 생활 힘들어지고 보복 당할까 봐 말 못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체육대학에서 폭력을 통한 체벌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학생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폭력의 당위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일종의 조직보호 심리, 그리고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