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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이나 유산하며 일해도 월급은 12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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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번이나 유산하며 일해도 월급은 120만원"

    [G20과 전태일40주기③]근로기준법 적용에서 벗어나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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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6시. 서울대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김명숙(59·여)씨가 젖은 솜뭉치 같은 자신의 몸을 깨우는 시간이다.

    젖은 수건으로 환자의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힌 뒤 기구로 가래를 뽑고, 식사까지 시키고 나면 9시를 넘기는 건 예삿일이다.

    김씨는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환자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선 채로 10여 분만에 끼니를 해결한다.

    "음식을 급하게 먹는 습관이 생겨서 소화제는 항상 갖고 다니죠. 간병인들 대부분이 그럴 거예요." 김씨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치매기가 있는 환자는 3~4시간마다 침대에 대소변을 지린다. 환자 씻기기나 침대 시트 갈기는 모두 김씨의 몫이다.

    "환자는 잠들더라도 우리는 환자를 지켜봐야하기 때문에 깊이 잠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선잠이 들어도 기침소리나면 화들짝 놀라 잠을 깨죠."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하루 24시간을 일하고 김씨가 받는 돈은 일급 55,000원, 시급으로는 2,200원이다.

    거동이 가능한 일반외과수술환자는 55,000원,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65,000원을 받지만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던 환자는 이미 한달전에 수술을 끝냈고 현재는 폐에 물이 찬 상태였다.

    이렇게 일주일에 6일을 일하고 일요일 하루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 일하다 다쳐도 고스란히 자기책임…보상은커녕 생계를 걱정해야할 판

    김씨는 지난해 8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균인 MRSA 감염자를 돌보다 자신도 MRSA에 감염됐지만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병원이 아닌 파견업체에 고용된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감염검사조차 안 해 주더군요. 보호자, 간호사 다 검사해주는데 나만 쏙 뺀 거죠. 나 말곤 집에 돈 벌 사람도 없는데 한 달 쉬어도 보상받을 길이 없어 한참 억울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녀의 두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같은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차성희(43·여)씨도 만성 소화불량과 만성두통, 근육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차씨는 "환자를 침상에서 휠체어로, 휠체어에서 침상으로 옮길 때 어깨가 많이 상한다"며 "인대가 늘어나거나 아파도 본인이 다 치료해야 하고, 그나마도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지 못해 병원에 가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간병인 중에 소화불량과 두통, 근육질환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도 했다.

    ◈ 하루 12시간, 일주일에 5일 꼬박 일해도 120만원…심심치않게 주말근무 반강제

    또 다른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 교사들의 처지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노조 전임자로 활동하다가 2008년 11월 해고통보를 받은 유명자(41·여)씨는 당시를 '아득했다'고 표현했다.

    사무실에 9시 반까지 출근해서 각종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회원데이터관리와 임급 처리, 팀장과 회원유치 실적에 관한 면담까지 하고 나면 밥을 챙겨먹을 시간조차 빠듯해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늦어도 오후 2시부터는 회원가정에 방문해 교육을 하고 저녁 10시에 집에 가면 파김치가 돼 소파에 쓰러졌다.

    유씨는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기만으로도 벅찬데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회사에서 홍보를 나가자고 했다"며 "아파트 단지에 직접 홍보지를 붙이거나 아파트 바자회서면 가서 홍보 활동하는 것인데 나는 뿌리쳤지만 뿌리치지 못하는 동료교사들은 그나마 쉴 수 있는 날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고 씁쓸해했다.

    오수영(37·여)씨는 5년 전 임신했을 때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씨는 "맡았던 지역이 이른바 산동네여서 경사가 가파른 계단이나 5층짜리 아파트 계단 을 오르내렸다"며 "대체교사가 없어 배가 남산만큼 나온 임신 9개월째까지 일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오씨는 "나는 다행히 유산을 안 했는데 동료 교사같은 경우는 유산을 4번이나 했다"며 "그만큼 일하는 조건이 열악하다"고 토로했다.

    일주일에 3~5일,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 이들 교사들이 받는 돈은 한 달에 120만원 남짓이다.

    일부 회사들은 학습지회원들이 학습비를 제때 납부하지 않으면 그 돈을 학습지교사 월급에서 미리 공제하고, 학습지교사들이 학습비를 받도록 하기도 한다.

    실적 경쟁과 압박 때문에 일부 학습지교사들은 유령회원을 등록해 월급에서 채워 넣기도 한다.

    법적으로 자영업자 신분이라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법정근로시간과 4대보험, 고용보험 등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전국적으로 100만명에 이른다.

    민변 노동위원회 권영국 변호사는 "87년 이후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근로기준법 준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인 정규직을 회피하는 형태의 변형된 근로 형태가 생겨났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특수고용노동자"라며 "노동권에 대한 행사 자체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런 종류의 고용형태를 개선하는 일이 전태일 40주기에 주어진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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