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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심장병 앓는 승민이 도와주세요"…400km 걷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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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천성 심장병 아이 위해 행진 통해 기부활동 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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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6년 여름 임신 33주째에 접어든 이은정(가명.39)씨에게 예기치 못한 산통이 찾아왔다. 예정일까지는 아직도 2개월이나 더 남아있던 터였다. 이 씨는 천안의 한 대학병원으로 급히 실려갔다.

    태어난 아기는 1천615g의 미숙아였다. 출생 직후 아기를 인큐베이터에 격리시켜야만 했던 이 씨에게 곧바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아기의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심장의 좌심실과 우심실 사이에 구멍이 뚫린 '심실 중격 결손증'과 '폐동맥협착' 등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수술 없이는 자칫 생명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때 갑자기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로부터 소식이 끊겼다. 이 씨는 "승민이가 (심장이)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겁이 났던지 그 이후로 연락이 계속 안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홀로 힘든 싸움을 감당해야만 했다.

    지금은 만 4살이 된 양승민 어린이는 서울로 올라가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심장에 인조혈관을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서혜부 탈장 수술과 2차 심장수술, 손가락 수술 등 모두 4차례에 걸쳐 차가운 수술대에 올랐다.

    그동안 왼쪽 눈꺼풀이 떠지지 않는 '안검하수'라는 병이 새롭게 발견됐다. 양 손바닥도 하늘을 바라보게끔 돌아가지 않는다.

    "승민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계속 인조혈관을 바꿔줘야 돼요. 눈이랑 손도 하루빨리 수술해야 하는데…"

    이 씨는 한 달에 67만원의 정부보조금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월세 14만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치료비를 충당해야 한다. 보금자리라고 해봐야 13평 남짓한 공간에 이동식 화장실이 달린 가건물이 전부다.

    지금까지 수술비는 병원측 후원회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해결해왔다. 그러나 향후 수술비와 치료비, 교육비 등을 생각하면 이 씨는 "눈앞이 까마득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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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km 걸을 때마다 승민이를 도울 수만 있다면…"

    이처럼 딱한 사정을 듣고 4명의 청년들이 지난달 초 병원에 입원 중인 승민이를 찾아갔다. 민통선 일대 400km를 행진하면서 승민이를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인솔팀장을 맡은 대학생 양권모(23) 씨는 "장준하기념사업회에서 해마다 행진을 통한 기부활동을 벌여오고 있다"면서 "올해에는 승민이를 돕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조국을 위해 싸운 고(故) 장준하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변방 지역인 민통선을 행진 장소로 택했다고 양 씨는 전했다.

    양 씨 등 '청년등불' 대원 27명은 우선 싸이월드 클럽과 트위터 등을 통해 이 같은 소식을 알렸다. 1km 걸을 때마다 도토리 또는 현금 후원으로 '희망의 등불을 밝혀 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4일 대원들은 고성 통일 전망대에서 출정식을 열고 12일 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하루에 3~40km씩 8시간 이상을 꼬박 걸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다.

    12일 경기도 연천군의 한 군부대 앞에서 비에 흠뻑 젖은 채 행군 중인 대원들을 만났다. 물을 먹은 신발이 대원들의 발을 땅에 붙들어두려는 듯 한걸음 떼는 것조차 힘겨운 모습이었다.

    일부는 전날까지 계속된 일사병을 못 이겨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샤워를 하다 말벌에 발바닥을 쏘이는 변을 당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18명의 대원들은 강행군을 이어나갔다.

    우비 하나로 가랑비를 견디고 있던 대학생 박수경(22.여) 씨는 "힘들어도 이렇게 걸으면서 한 땀 한 땀 정성이 모여진다고 생각하니 보람이 된다"면서 "승민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다른 사람들에겐 우리의 열정을 전달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중국에서 유학 중인 안욱전(21) 씨는 "행군 도중에 물집이 심하게 잡혀서 낙오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 정도 각오도 없이 하겠다고 덤벼들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후회했다"면서 "승민이의 인생에 도움을 주겠다는 각오를 되새기며 걷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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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민이와의 첫 만남…청년들 "끝까지 걷겠다"

    행군 9일째 대원들이 걸어온 길은 모두 290km. 이날은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넘어온 첫날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날이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양 씨 등 4명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과 승민이가 처음으로 대면하기로 한 날이기 때문. 어스름한 저녁, 옥계리 마을회관에 도착한 승민이는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6시 30분쯤 회관 앞마당에서 이들의 감격스러운 첫 상봉이 이뤄졌다. 여기저기서 승민이의 이름을 부르며 "네가 승민이구나", "귀엽다"는 등의 탄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중국에서 유학 중이라는 김동균(23) 씨는 "비포장도로와 고개를 넘으면서 하루 종일 힘들었다"면서 "하지만 사진 속에서만 봤던 승민이를 직접 보니 보람을 느낀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 씨는 행진 시작 전부터 승민이를 자신의 조끼에 그려넣기도 했다.[BestNocut_R]

    대원들의 이 같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승민이는 어머니의 품에 꼭 안긴 채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의 어머니 이 씨는 감동에 벅차 눈물을 꾹 삼켰다.

    이 자리에 참석한 장준하기념사업회 이준영 운영위원은 "희망 대행진의 본래 목표는 한 생명을 돕는 것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청년들도 삶의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면서 "행진이 끝난 뒤에도 후원 아동과 결연을 맺어 관계를 지속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원들의 '희망 대행진'은 오는 15일까지 계속된다. 도토리 후원은 싸이월드 클럽(http://club.cyworld.com/hope_march)이나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후원회 홈페이지(http://town.cyworld.com/isupport)를 통해 가능하다. 장준하기념사업회를 통해서도 후원에 참여할 수 있다. 문의전화 (02)722-0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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