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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간판 정비 사업을 둘러싸고 곳곳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수십년을 함께 장사해온 이웃끼리 고소 고발이 오가는 등 때아닌 '간판 전쟁'이 벌어지는가 하면 사전 협의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자체가 지정한 소수 업체들이 사업을 독점하면서 간판의 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여의도 한 복판에서 때 아닌 간판 전쟁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간판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기존 간판을 일방적으로 떼어내고 새 간판을 걸어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김모(56)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입건된 사람은 간판을 뒤바꿔 단 상점 주인을 비롯해 건물 관리소장과 간판 제작업체 대표 등이 포함됐다.
여의도의 대표 상가에서 때 아닌 간판 전쟁이 일어난 것은 지난해 12월. 이 일대가 서울시의 디자인 거리로 선정되면서 9월부터 LED간판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곳에 한 음식점이 가게를 내놓고 장사를 중단하자 해당 층 간판 교체를 주도하던 상점 주인이 음식점 간판을 떼내고 자신의 간판을 내걸었다.
음식점 주인은 뒤늦게 사라진 간판을 발견하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간판이 없다는 이유로 매매 계약도 취소돼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관련자들을 고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기한내에 촉박하게 간판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협의가 되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서 "2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이웃 상인들끼리 서로 소송에 휘말리게 됐다"고 말했다.
◈ "수십만원 더 들였지만 효과 별로" 일방통행식 추진에 불만 속출오래된 간판을 LED로 교체해 도시 미관을 정비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간판정비사업은 서울시에서 선정한 디자인 거리 50곳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상 점포만 9천 4백여곳에 달하며 현재까지 4천 5백여곳의 간판이 교체됐다. 시에서는 점포당 150만원씩의 지원금을 배정해 총 137억원의 예산을 들여 간판 교체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이번 사업에 대해 정작 해당 점포 주인들은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경제적인 부담이 큰데다 사업 방식이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여의도에서 최근 간판을 교체한 편의점 주인 이모(50)씨는 "추가비용을 들여가며 바꿨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윗사람들이 테이프 컷팅식을 하기 위해서 급하게 진행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 "구청 지정업체만 이용, 간판 개성 떨어져"특히 상인들은 해당 구청에서 지정한 업체에 간판을 의뢰해야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구로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150만원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지정 업체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며 "구청에서 압박이 내려와서 했지 수십만원씩 비용이 들어가는데 누가 멀쩡한 간판을 떼내고 싶겠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소수 지정업체에서 일괄적으로 간판을 제작하다보니 통일성은 있지만 개성이 떨어지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삼청동에서 최근 간판을 교체한 음식점 주인은 "추가 비용을 많이 내서 좀 더 색다르게 하려고 해봤지만 해놓고 보니 거리가 온통 똑같은 간판인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여의도의 한 상인은 "가게 고유의 느낌이 있는데 한 간판업체에서 모든 간판을 만들면 개성이 살겠냐"면서 "정부에서 특정 업체를 지정해주면 안 된다. 최소한 우리가 디자인 업체를 정할 수 있게 자율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상인들의 불만이 높아지는데 대해 서울시 디자인본부 도시경관담당자는 "간판이 시각적 공해로 여겨지는 만큼 간판 정비가 시급하다. 지원금을 효율적으로 지급하기 위해서는 소수 업체를 지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간판을 한꺼번에 바꾸려는 것 자체가 왜곡된 디자인관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김강 연구원은 "간판을 사회적 합의 없이 일률적으로 교체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단지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또 "간판은 자생적으로 생겨난 하나의 현상으로 그 도시의 인문 지리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단순히 정비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충분한 논의를 통해서 우리 상황에 맞는 간판 문화를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