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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가장의 절규 "죽고 싶어도 아기 웃는 모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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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실직 가장의 절규 "죽고 싶어도 아기 웃는 모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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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CBS 특별기획-①] 2008 불황의 겨울, 벼랑 끝에 선 이웃들

    경남CBS는 사상 최대의 경제 불황을 맞아 생존의 위기에 내 몰리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아픈 현실을 취재해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

    ◈ “오늘은 무조건 일자리를 구하고 들어올겁니다”

    9일 황 씨는 아침과 점심을 굶어가며 열 군데 넘게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모두 헛탕이었다.

     

    황정식씨(39·가명·경남 창원시 남양동)는 아직 잠들어 있는 2살배기 아들과 베트남에서 시집 온 아내 얼굴을 번갈아 본 뒤 집을 나섰다.

    차디찬 새벽 공기에 시려운 손을 점퍼 주머니에 넣었더니 천 원짜리 한 장과 동전 몇 개만 잡힌다. 며칠 전 아내가 준 용돈 2만원도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일 밤늦게까지 생활정보지 구인광고를 훑느라 눈까지 침침하지만, 일자리를 찾겠다는 일념에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황 씨는 구인 회사 연락처를 들고 사무실을 찾아가 이력서를 내밀었다. 그러나 황 씨에게 돌아온 대답은 “죄송합니다.”

    아침과 점심을 거르며, 열 곳이나 돌아다녔지만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많아서”나 “학력이 중졸이어서”, “자격증이 없어서” 등이 채용불가 사유였다.

    회사 입장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황 씨는 온종일 허탕이라는 마음에 집에 돌아가는 길이 고통스러울 만치 무겁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창원 종합고용지원센터를 찾았지만, 이 역시 허탕이었다.

    ◈ IMF 때 직장 잃고, 경기 한파로 또 실직자 신세

    10여 년 전 황 씨는 울산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납품을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비록 비정규직이었지만, 매달 들어오는 월급에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다 IMF가 왔고, 회사는 자금 사정이 위태롭게 되자, 비정규직이었던 황 씨를 퇴출시켰다.

    이후 황 씨는 이것저것 안 해 본 것이 없다. 건설 현장 막노동, 단기 아르바이트 등 돈이 되는 것은 무작정 가리지 않고 했다.

    그러다 지난 2003년, 황 씨에게도 어엿한 일자리가 생겼다. 창원의 한 떡집에서 일을 하게 된 황 씨는 한 달에 120만 원씩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는 행복에 일이 힘들지만 참고 견뎌냈다.

    일을 하면서 설움도 많았다. 6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사장은 6년 동안 단 20만 원만 월급을 올려줬다.

    “정말 힘들었어요. 사장이 일을 억세게 시켰어요. 새벽에 일찍 나가서 배달도 하고 판매도 하고 모든 잡일은 다 했으니까요. 월급을 올려달라고 해도 전혀 올려주지 않았어요. 심지어 사장은 기계 돌리다가 다치면 너 책임이니깐 스스로 부담하라고까지 했어요”

    이를 악물고 일을 한 황 씨는 지난해 3월 베트남 국적의 여자와 결혼을 해 가정도 꾸렸다.

    황 씨는 “한국여자가, 나이도 많고 넉넉지 못한 살림에 누가 시집을 오겠냐”며 “그래도 이쁘기만 한 베트남 여자랑 결혼을 하게 됐다”고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베트남 부인이 태어나서 ‘첫 여자’라고 쑥스럽게 고백한 황 씨는 아내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꿈만 같았고, 아들도 태어났다. 일은 힘들지만, 가족들과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잠시, 장사가 되질 않자 사장은 지난 10월 황 씨를 매몰차게 내 보냈다.

    또다시 직장을 잃게 된 황 씨는 이제 아기 분유 값을 걱정하게 됐다.

    “한창 아들이 재롱부릴 때가 아닙니까? 장남감도 사주고 싶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고, 옷도 사주고 싶고… 지금 슈퍼에 가면 기저귀 값이 3만 원까지 해요. 분유는 한 통에 만원이고… 남들처럼 아버지 노릇 제대로 못 해주는 게 가장 가슴이 아픕니다”

    ◈ 집 안은 온통 주워온 물품…세금고지서와 관리비 등은 계속 밀려

    집에 돌아오니 노모와 두 살배기 아들이 집을 지키고 있다. 아내는 공장에 일을 나갔다.

    황 씨는 집에 먹을 것이 없다며 기자에게 손수 끓인 커피를 한 잔 대접했다.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한 끼도 못 먹어 배가 주리지만, 아들 얼굴을 바라보곤 금세 표정이 밝아진다. [BestNocut_R]

    집 안이 어지럽다며, 밤새 뒤척였던 구직 광고 신문을 치우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멀쩡한 살림살이가 없다.

    집 안 살림살이는 죄다 주워 온 물품이다. 아들 장남감도 같은 아파트 주민들이 버린 것을 주워 와서 닦고 수리한 것들이었다.

    황 씨는 “이제 두 살이 넘어서 가지고 놀게 있어야 하는데 살 형편이 안되다보니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황 씨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 두달 전 취직한 아내 월급 80만원으로 4가족 생계 꾸려

    몇 일전 아내에게 받은 용돈이 바닥나 이제는 천 원짜리 한장과 몇 개의 동전밖에 남지 않았다.

     

    외동아들인 황 씨는 중학교 밖에 나오질 못했다. 언제나 든든한 기둥이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황 씨는 지금 일흔을 넘긴 홀어머니도 모시고 산다.

    황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어린 나이에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일을 했어요. 지금 이렇게 나이 들고 힘든 일을 겪게 되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형제가 있었으면 상의도 하고 그럴텐데 모든 일을 혼자서 다 견뎌냈거든요. 형편이 어려워 외삼촌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마저도 외면하더라구요.”

    아기가 생기고 생활 형편이 어려워지자 아내도 두 달 전부터 전자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에 나가시 시작했다. 특근과 잔업을 해도 들어오는 돈은 고작 80만 원. 이 돈이 지금 황 씨 부부가 쓸 수 있는 유일한 현금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회사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특근과 잔업이 없어지고, 쉬는 날도 많아져 수입은 계속 줄고 있다.

    황 씨는 “이제는 매달 꼬박 나가는 아파트 관리비며, 세금도 못 낼 형편에 놓였다”며, 한 켠에 모아 놓은 세금 영수증 뭉치들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트 주인이 전세금을 올리지나 않을지도 걱정 된다.

    그러면서 황 씨는 베트남 가서 찍은 결혼 사진을 찌그러진 서랍 문짝 사이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보여준다. 한참을 사진을 넘기면서 어느새 즐거웠던 추억이 생각나는 듯 웃음이 입가에 가득했다.

    황 씨의 어머니도 사진을 바라보다 옛 추억이 생각나는 듯 입을 열었다.

    “며느리가 시집와가지고 떡 하니 손자를 낳아 주니깐 입이 안 다물어졌어요. 참 귀한 우리 아들에다가 귀한 손자까지 얻으니 너무 좋네요. 살림요? 힘들지요… 나라도 어디 가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매를 어디 써줍디까?”

    황 씨의 어머니는 “우리 새끼 하나밖에 없는데 돈은 우리 묵고 사는데 지장만 없으면 되니깐 아픈 데만 없었으면 해요. 그래도 앞으로 잘되지 않겠나… 희망을 기다립니다”라고 말했다.

    ◈ “죽고 싶었죠…그래도 자식보고 살아야지요”

    황 씨는 오늘만 열 번도 넘게 제출했다가 돌려받다보니 구겨진 이력서를 다시 꺼내^ 사장님들한테 보여줄 생각이다.

     

    이제 두어 시간만 더 있으면 날이 어둑해 지는데도 김씨는 자리를 털고 다시 집을 나섰다.

    온종일 열 번도 넘게 제출했다가 거절당한 이력서를 다시 몇 통 챙겨들었다.

    “열 번이라도 죽고 생각이 왜 안들겠습니까? 힘들 때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자식보고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힘들면 이혼도 하고 하는데 우리는 안그래요. 사랑하는 아내도 옆에 있으니 힘을 내야지요”

    황 씨는 아들 생각에 싱글벙글한다. 자신의 어릴 적 꿈이 경찰이 되는 것이었는데 아들에게 경찰 아니면 판·검사를 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아들이 하고 싶은 것을 시켜야죠.(웃음) 그러나 우리같이 없는 사람도 도와주고 억울한 사람들 한도 풀어주고… 그런 아들이 됐으면 해서요.”

    황 씨는 아버지의 가난을 대물림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현재 상황에 낙심하지 말고,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기로 늘 다짐한다고 한다.

    “나중에 돈을 많이 모으면 아내와 약속한 게 있어요. 베트남에 있는 처가의 집을 지어주기로 했거든요. 힘들더라도 견뎌내야죠. 빨리 일자리 구해서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하고 싶고, 아들이 갖고 싶어하는 ‘뽀로로’ 장난감도 사 주고 싶고….”

    지금 황 씨의 수중에는 2천 원 남짓한 돈이 있다. 황 씨는 그 돈마저도 집에 들어갈 때 아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려고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없이 착하게만 보이던 황 씨가, 발길을 돌리는 기자를 불러 세워 말했다.

    “정말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그런 심정 기자 양반도 모르잖아요. 정부에서 딴 짓거리 좀 하지 말고, 일자리 좀 제발 구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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