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초 필리핀에서 살해된 수백억원대 강남 재력가 박 모 여인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박씨의 살해를 사주하는 대화 내용이 녹음된 CD를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4일, 필리핀에서 권총에 맞아 숨진 故 박모(여·67)씨 사건과 관련해 청부살인을 암시하는 대화가 녹음된 CD를 필리핀 현지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문제의 CD에는 "Your brother's friend, did a perfect job, she's gone(당신 형제의 친구가 일을 완벽히 해내면, 그녀가 가면(죽게 되면)"과 "So you can keep the money(그러면 당신이 그 돈을 가질 수 있어)" 등 살인 청부를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1분이 채 못 되는 대화 속에는 남녀 각각 한 명이 등장해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고 있으며, 여성이 주로 이야기하고 남성은 짧은 대답만 하고 있다. [BestNocut_R]
경찰 관계자는 "CD에 있는 녹취 파일은 박씨와 박씨 딸 A씨가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현지 가이드 겸 운전기사를 했던 B씨 휴대폰에 저장돼 있던 것"이라며 "현지 경찰이 휴대폰에 있던 파일을 CD에 복사해 보내왔다"고 말했다.
운전기사 B씨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A씨 육성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녹음해 보관해오다 최근 필리핀 현지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A씨 육성이 담긴 이 녹음 파일의 존재를 경찰에 털어놨다.
B씨는 현지 경찰에서 "딸 A씨가 어머니 박 씨를 죽여야 하니 살인 청부업자를 소개해 달라고 요구했다"면서 "그래서 친형을 통해 A씨에게 살인 청부업자를 연결해 주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B씨는 이어 "A씨가 살인을 청부했다는 사실을 말했다는 것이 알려질 경우 자신을 비롯해 가족들이 보복을 당할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었다"며 "자신과 가족들의 신변을 보호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조사 결과 B씨는 최근 1년 동안 故 박씨와 딸 A씨가 필리핀을 방문할 때마다 현지 가이드를 맡았었다. 그러나 박씨가 살해되던 마지막 방문 때는 돌연 집안 사정을 핑계로 가이드 의뢰를 거절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필리핀인들은 건강이 악화되는 등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들어온 일감을 마다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분명치 않은 이유로 의뢰받은 일을 거절한 B씨를 수상히 여겨 현지 경찰에 공조수사를 의뢰했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CD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목소리와 피살된 박 모씨의 딸 A씨의 목소리가 동일한 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만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CD를 보내 성문 분석을 벌이기로 했다.
또 필리핀 경찰과 함께 실제 박 씨를 죽인 살인 청부업자를 찾아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한편 A씨는 박 씨가 살해되던 당일 한국 돈 200만원을 현지에서 환전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00만원은 A씨가, 나머지 100만원은 당시 현지 가이드를 맡았던 D씨가 바꿨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A씨가 환전한 돈이 살인을 청부하는데 쓰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그동안 수사를 벌여왔다.
※ 위 기사에 나오는 영문 대화 내용은 녹취 파일 속에 등장하는 여성이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며, 번역 또한 전문번역사가 번역한 것을 그대로 적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