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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27범이 노숙자 순찰대장으로…사랑의 힘이었죠"

"전과 27범이 노숙자 순찰대장으로…사랑의 힘이었죠"

  • 2008-01-14 08:37

절망촌 희망교회 이야기② - 영등포 쪽방촌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

 

주말에는 날씨가 추워진다고 합니다. 이렇게 날이 추워지면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 고생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고,무엇보다도 지하철역에서 노숙하는 분들 걱정이 앞서는데요.

영등포역 주변의 노숙인들을 20년째 돌보고 있는 분이 있죠.광야교회 임명희 목사.

임 목사는 술, 폭력, 매춘으로 알려진 쪽방촌에 맨손으로 들어와서 교회를 세우고 노숙자, 행려병자, 윤락여성, 전과자, 장애인 등이렇게 세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했습니다.

처음엔 멱살을 잡히고 깡패들한테 몽둥이로 맞으면서도 그들에게 밥을 주고, 아픈 곳을 만져주고, 재워주고, 상담해주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줬습니다.

영등포 쪽방촌에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빵을 들고 찾아간 ‘사랑의 전도자’ 임명희 목사의 파란만장한 인생.

1월 11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한 달 동안 먹은 라면...공깃밥 놓고 울어

▶ 중고등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섬에서 졸업했고 아버지를 도와서 열심히 일을 했어요. 제가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대신 공부 잘 하는 건 꿈도 못 꿨고요. 그러다가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담배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 길에서 깡패한테 쫓기던 여학생을 구해 준 적이 있어요. 이걸 계기로 그 여학생과 친해져서 같이 놀고 집에도 데리고 오고 하니까 그 소문이 누나한테 들어가고 누나가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저를 교무실로 부르시더니, 아버지는 시골에서 가난한 와중에 너를 공부시키겠다고 고생하고 계시는데 네가 이러고 다니면 되겠느냐고 정신 차리라고 뺨을 때리시더라고요. 그 이후로 정신을 차리고 이성을 사귀는 건 자제했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가난 때문에 당장 공부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공부하리라, 대학을 가리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 신학교는 어떤 상황에서 가게 되신 건가요?

제가 29살 때 신학교를 가게 되었어요. 돈도 없고 누가 학비를 대주는 것도 아니지만 중국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고 중국어도 공부하면서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를 들어간 겁니다.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학력고사를 준비하려고 서울에 올라올 무렵이 28살 때였어요. 그때 목포에서 아내를 만났는데 아내가 학비를 대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기일 내에 안 올라와서 한 달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갖고 올라온 돈이 12만원이었는데 한 달 지나니까 없어져버리더라고요. 돈 가지고 올 줄로 기다리다가 라면으로 한 달을 때우는데 뱃속에서 라면 썩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밥이 그렇게 먹고 싶은 거예요. 당시에 공깃밥이 350원이었는데 돈을 다 털어서 시장 통에 가서 공깃밥을 시켜놓고 못 먹고 울었어요. 그때 봤던 쌀 한 톨이 얼마나 귀중하게 보이던지요. 그리고 주인이 밥을 수북하게 주면 좋은데 숟가락으로 누르면 쑥 들어가 버려요. 배는 고픈데 밥 양은 적고 얼마나 밥을 맛있게 먹었는지 몰라요. 제가 이렇게 밥 못 먹고 고생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노숙인들이 하루에 900명 정도가 와서 밥을 먹잖아요. 그래도 외국 수입쌀도 아니고 정부미도 아닌 일반 쌀로 압력밥솥에 지어서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쌀을 원 없이 먹고 싶은 만큼 대접하고 있어요. 그리고 신학교 가기 전에 학력고사 준비하느라고 학원을 다녔는데 제가 학원 내에 전도를 많이 해서 1개 소대 병력만큼 전도해서 근처 교회를 나갔어요. 그런데 저 때문에 학원이 시끄러워진다고 누가 원장님한테 이야기하는 바람에 학원에서 쫓겨났어요. 그래서 그 교회 목사님한테 찾아가서 한 달 후면 시험을 보니까 그동안 이 예배당에서 밥 달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까 잠만 자고 공부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더니 안 된다는 거예요. 나도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나면 목사가 될 사람인데 나중에 목사가 되면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결심했어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항상 개방이 되어 있어서 100여 명 이상이 잘 수 있도록 해놨어요.

▶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잘 헤쳐 나오신 것 같아요.

저에게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버티는 걸 잘해요. 어떻게 길러졌는가 하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거든요. 나뭇가지가 한가득 쌓인 무거운 지게를 지팡이 하나로 버티는데 그걸 통해서 버티기를 배운 것 같아요. 그리고 어려운 가정환경을 살다 보니까 그 삶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견뎌야 한다는 걸 배운 거죠.

◇ 아내와 아이들도 괴롭힘 당해... 특히 아이들에게 미안해

 

▶ 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제가 27살 무렵에 목포에서 교회 다닐 때 아내를 만났어요. 당시에 아내는 가정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저를 좋게 본 거예요. 그러다가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마침 아내를 만나서 학비를 대주겠다고 하니까 고기가 물을 만나게 된 셈이죠. 물론 약속이 지켜진 것 아니었지만요.

▶ 결혼은 언제 하신 거예요?

88년 12월 31일에 결혼했어요. 그때 ‘나는 30살이 넘어가면 결혼 안 할 테니까 30살 넘기기 전에 결혼하자’고 해서 12월 31일에 결혼했어요. 영등포 쪽방촌은 아내와 결혼하기 전부터 전도를 다녔고 결혼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동네에 들어와서 살면서 아이들도 낳고 복음을 전했어요.

▶ 사모님을 내 마누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면서요?

동네에 가서 보니까 제 옆에 서 있는 아내를 보고 하룻밤 자면 얼마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이 사람은 내 아내라고 했더니 안다고, 알지만 이야기하는 거래요. 그런 사람과 골목에 들어가서 둘이 폼 잡았던 일도 있었어요. 그리고 아내를 자기 마누라라고 하면서 쌍칼차고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 사람이 나를 볼 때마다, 네 마누라는 내 마누라로 하고 너는 내가 다방에서 사귀었던 마담과 같이 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칼을 확 뽑아들고 쫓아오면 엉겁결에 저는 도망가요. 도망가다가 찬스를 봐서 그 사람을 순간적으로 제압하고, 그렇게 몇 번씩 부딪치곤 했어요.

▶ 사모님이 더 이상 여기에 못살겠다고, 다른 곳으로 가자는 말씀은 안 하셨어요?

집사람이 의지의 사람이에요. 잘 견뎌준 것에 감사해요.

▶ 자녀들은 어떻게 되세요?

모두 3명인데 애들한테 빚이 많아요. 애들이 이야기를 하면 제가 꼼짝을 못 해요. 거기에서 아이들이 살면서 그 동네 사람들의 상황을 보면서 자랐잖아요. 엄마가 돈이 없다고 하는 경우에 아이가 모르니까, 엄마도 돈이 없으면 다른 아줌마들처럼 아저씨 데리고 오면 되지 않느냐고 한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싸우는데 한 녀석은 칼 들고 나오고 또 다른 한 녀석은 망치를 들고 나오는 걸 보고 질겁했죠. 그리고 애들이 8살 이전에 담배를 경험했어요. 맹모삼천지교라고 아이들은 본 대로 하는 거죠. 아내나 저나 애들한테 이런 환경 속에서 살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무엇보다도 애들을 이용해서 저를 위협을 해요. 교도소 출신들이 거칠잖아요. 어느 날 4층 옥상 난간에 애를 앉혀놓았는데 그 정도 높이면 마침 떨어져 죽기 딱 맞는 높이거든요. 거기에 애를 앉혀놓고 나를 부르는 거예요. 그 놈이 애를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더라는 말을 듣고 쫓아올라갔죠. 가서 보니까 애 있는 곳까지 거리가 꽤 멀어요. 아이가 조금만 움직이면 바로 떨어질 것 같아서 제가 소리를 못 질렀어요. 잠자리 잡을 때 살금살금 다가가잖아요. 그렇게 다가가서 애를 안았더니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더라고요. 술 마시고 앉아있는 그 놈을 보니까 안에서 분노가 폭발하는 걸 느꼈어요. 살의까지 느껴지더라고요. 젊은 사람이 일도 안 하고 빈둥거리고 살면 되겠느냐고 뭐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랬더니 그런 짓을 한 거죠. 아이들이 저도 모르는 곳에서 다방면으로 그런 일들을 당했더라고요. 나중에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워낙 동네에 일이 많으니까 정작 제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었던 거예요.

▶ 지금은 다들 성장했겠어요.

20살이 된 첫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준비하고 있고 둘째는 고등학교 2학년 18살이고, 셋째가 15살이니까 중학교 3학년이 됐어요.

▶ 이제는 부모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겠어요.

처음에는 애들이 싫어했는데 이제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아빠, 엄마가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학교에서 주는 장한 아버지상에 초청해서 상을 받은 적도 있어요.

◇ 사랑의 텔레파시, 물자공급은 하나님께 맡겨

▶ 무료급식을 하루에 900명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경비는 어떻게 충당하시나요?

영국의 고아들의 아버지 조지 뮬러 목사님처럼 저도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어요. 당장 먹을 쌀이 없으면 어떤 분을 통해서 쌀을 갖다 줍니다. 어떤 분이 지나가다가 봉투를 주는데 그 안에 쌀을 살 수 있는 수표가 들어있어요. 누구시냐고 물으면 묻지 말고 그냥 쓰래요.또 어떤 때는 시골 정미소에서 쌀을 한 트럭 갖다 주기도 하고 떨어질 때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으로 유지가 되고 있어요. 그래서 먹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IMF 때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어요. 시장에 나가서 시래기를 주워서 국 끓여먹고 김치 담가먹었는데 아내가 그 일을 열심히 했어요. 한 번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 때문에 일 하던 도중이라 그만둘 수 없어서 다 젖어버렸어요. 그런 가운데서도 열심히 일을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참 귀한 사람이에요.

▶ 가장 보람을 느끼실 때가 언제인가요?

포주 했던 사람이 술 마시면 옷 다 벗어버리고 싸움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포주를 그만두고 술도 끊고 신앙생활 하는 게 보람이고 열매에요.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전과자들, 깡패들, 알코올 중독자들은 변화가 안 된다고 말해요. 어제도 잠깐 이야기가 나왔던 사람인데 하야시 동생 춘희 삼촌이 대접에다 술 7병을 따라 마시고 죽었어요. 이 사람을 벽제화장터에서 화장하고 오는데 다리가 휘청거려요. 제가 7,8년을 노력했던 것들이 아무 열매 없이 죽어버리니까 마음속으로 쌓아올렸던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동네 건달이 이야기하기를 이 사람들은 절대 변화가 안 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변화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 변화 받을 수 있습니다. 전과 27범도 변화가 돼서 사람이 됐어요. 이 사람은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을 때리고 조직에 들어가서 조직의 명령으로 사람을 죽이고 이후 소년원에 들락날락하면서 전과가 많아진 사람이에요. 알콜 중독에 거의 폐인이 되어서 우리 교회에 왔는데 와서도 얼마나 문짝을 때려 부수고 행패를 부렸는지, 제발 다른 곳으로 보내라고 하는데 저는 이상하게도 인간 안 될 사람한테 묘한 집착이 생겨요. 그래서 사람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그때 41살이었는데 고등학교에 보냈어요. 2년 코스로 공부하고 졸업을 하는데 졸업식장에서 소감을 이야기하라고 하니까, “목사님, 쪼그만 애들하고 공부하느라 쪽팔려서 혼났어요.” 그러더라고요.(웃음) 지금은 신학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밤에는 순찰대장을 맡아서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 노숙자들의 참된 쉼터 ‘홈리스 복지센터’

▶ 그렇게 염원하시던 ‘홈리스 복지센터’가 지난해 7월에 완공이 되었다고요?

홈리스 복지센터 위치는 영등포 쪽방촌 내에 있고 크기는 지하1층에서 지상6층으로 별로 크지 않아요. 이분들이 사는 집을 지은 거니까요. 270평으로 평수는 크지 않은데 이분들이 들어와서 살 수 있도록 집을 지어준 것이, 정부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민간인의 힘으로 영등포 그 비싼 땅에 홈리스들을 위한 집을 지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일 겁니다. 이 일 때문에 미국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는데 국내외 지원으로 만들어졌어요.

▶ 화요일에 ‘역전 자정 예배’를 드리신다는 데 노숙자들이 많이 참석하시나 봐요.

왜 자정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가 하면 그 시간이면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전철도 끊기고 나면 역전 노숙자들이 잠을 자기 위해서 자리를 잡는데 그걸 보면 너무 불쌍해요. 방탕과 노숙에 중독이 되어 있어요. 노숙도 일종의 중독이거든요. 그렇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한테 빵만 줘서는 안 된다는 거죠. 구걸하는 부분만 키워주게 되고 부정적인 요소들이 더 많아요. 그래서 빵만 주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아픈 사람들이 있으면 치료해줘야 하고 옮겨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밤에 나가서 일일이 다 만나는 겁니다.

▶ 노숙인들 중에서 서로 의지가 돼서 결혼하신 분들도 계시죠?

결혼식을 한 분들이 25쌍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물론 다 순탄하게 가정을 꾸리는 건 아니지만 가정을 잘 꾸리시는 분들은, 직장을 나가시는 분들도 있고 세탁소 나가서 일하시는 분들도 있고 직장에 취직해서 일꾼으로 장기근속하면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 상담을 해보시니까 노숙자들이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던가요?

그들의 공통점이 부모님 세대의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편모나 편부 슬하, 치고 박고 싸우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내면세계가 건강하지 못해요. 본인이 성장해서 가정을 이뤄도 결속력이 약해서 충격을 가하면 깨지기 쉬워요.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노숙자가 쪽방촌으로 들어오게 되고 꿈이나 비전이 없죠. 그러다 보면 절망상태에 빠지게 되고 자신을 길에다 던져버리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노숙자가 되는 겁니다. 여성노숙인들은 약간 정신적인 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피해망상, 과대망상, 우울증, 편집증 등 대인관계에 좀 문제가 있어요.

▶ 홈리스 복지센터에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겠죠?

이번 달에 동네에다 청소년 쉼터를 마련했어요. 10명 정도를 수용해서 교육시키고 희망을 심어주고 있는데 이걸 안 해주면 나중에 어른이 돼서 돌아다니다가 노숙자로 전락하고 마는 거거든요. 이 사회에 방치되고 있는 노숙인들을 보면서 청소년들의 교육과 같이 연결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미 발생한 노숙인들은 심신의 치료가 필요한데 이들을 위한 치료가 해야 될 일로 남아있어요.

▶ 홈리스 복지센터를 후원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한 말씀 해주세요.

참 고맙죠. 시간을 투자하는 것만큼 큰 게 없습니다. 한 번씩 오시는 분들은 하루 종일 계시거든요. 또 그냥 오시지 않고 어려운 홈리스들을 위해서 헌금을 보내주시는 분들, 20년 가까이 꾸준하게 돌봐주시고 봉사해주시는 분들에게 말할 수 없이 감사해요.

◇ ‘사랑의 파도치기’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

▶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사람의 힘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변화가 되지 않아요. 내가 땀 흘리고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해도 변화가 안 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사람들이 변화되더라고요. 제가 일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일을 합니다. 이런 사역을 하시는 분들이 좀 더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견뎌주었으면 좋겠어요. 성급하게 저런 사람들은 변화 안 돼, 도와줘 봤자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사랑으로 지속적으로 돌보게 되면 언젠가는 그들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바다를 보면 파도가 밀려와서 바위를 만지고 내려가요.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나면 바위에 구멍이 난다는 겁니다. 이런 것처럼 사랑의 파도치기, 사랑의 어루만짐이 한결같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마음이 무너지고 돌아오게 되는 겁니다. 저는 그걸 믿습니다.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박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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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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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VER김영미2022-06-03 09:18:32신고

    추천5비추천1

    불굴의 의지로 살아오신 삶에 고개를 숙입니다.
    존경합니다.

  • NAVER돌박사2022-06-03 06:39:06신고

    추천7비추천1

    바로 이러한 분이,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윤가새끼 같은, 기회주의자요 배신자는, 이 나라를 병들게 하며,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한탕주의나 가르치는 악적인 존재다.
    미래의 세대들에게 귀감이 되는 김 동연 지사님, 이제야 말로 노 무현 대통령님 이후로, 전심 지지할 분을 만났습니다.
    아무쪼록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시기 바랍니다.

  • NAVER고철장수2022-06-03 05:30:26신고

    추천5비추천1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세칭 삼류야간대학 출신인 제게 큰 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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