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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장사의 신] 그랜드마스터 셰프 여경래 군단이 이끄는 중식당 '홍보각'


중화요리 최고급 음식 중 '불도장(佛跳牆)'이란 메뉴가 있다. 채식하는 절의 승려조차 그 맛과 향에 취해 담장을 뛰어넘게 만든다는 뜻을 가진 고급 중화별미이다. 불도장은 샥스핀, 전복, 해삼, 송이 등 몸에 좋은 산해진미가 모두 담겨 있는데 단품 메뉴 가격만 해도 평균 10만 원 이 넘는다.

그런데 고급 불도장의 대중화를 외치며 음식의 질은 그대로 살리고 가격은 파격적으로 낮춘 중식당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랜드마스터 셰프'라고 불리며 수십 개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여경래 셰프가 있다.

홍보각의 '불도장'. 샥스핀, 송이버섯, 해삼, 전복 등이 들어가서 최고의 영양식이라 평가받고 있다.

 


또래 친구들이 공부를 위해 펜을 들고 학원을 가던 시절, 그는 칼을 쥐고 중국집에서 일했다. 어린 시절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는 유년과 젊음을 포기했었다. 그렇게 중화요리 기술을 한 수, 한 수 쌓아 온 게 어느덧 40년. 이제 여경래 셰프는 한국 중국 요리의 신화로 존경받고 있다.

도대체 그가 존경 받고 성공한 셰프로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형 장사의 신 취재진 여경래 셰프를 만나 그만의 중화요리 스토리를 들어 보았다.

전복과 송이버섯이 가득한 전가복.

 


■ 당신의 직함은 도대체 몇 개인가?

여경래 : 글쎄.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많은 것 같다. 일단 홍보각에선 내가 운영하고 있으니까 홍보각 사장 겸 부장이다. 중국에선 그랜드마스터 셰프, 학교에 가면 교수님, 세계중국요리연합회 조리명인 등등 많은 것 같다.

■ 어떻게 중국요리를 시작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나?

어머니의 강제 권유 때문이었다(웃음). 내가 중국요리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였다. 나는 중국인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출신 어머니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시게 됐다. 갑자기 가장이 된 나에게 어머니께서는 '너는 기술을 익혀야 먹고 살 수 있다'고 권유(?) 하셨고 친구들이 모두 공부할 때 어쩔 수 없이 홀로 중국집 일을 시작하게 됐다.

블랙빈메로구이. 보통 메로를 쪄서 요리하지만 홍보각에선 구이로 맛을 내고 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중국요리로 정해졌다. 더 좋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피나는 노력과 연습, 그게 40년 쌓이다 보니 어느덧 지금의 내가 돼 있었다.

■ 요즘 노력 하지 않는 식당 주인은 없다. 본인만의 특별한 성공 비결은 없었나?

있다. 나의 최대 장점은 성실하고 부지런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남들이 보기에 지나칠 정도로 밝은 긍정적 마음가짐이다. 무슨 일을 하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어떤 일에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으니까. 좋아도 좋게, 안 좋아도 좋게 생각하는 것이 내가 일하는 방식이었다. 긍정적인 마음에 있어서는 나는 대한민국 최고라 생각한다.

홍보각의 자춘권.

 


■ 홍보각 불도장이 거의 최고로 손꼽히는데, 더 비싸게 받을 생각은 없었나?

물론 더 비싸게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홍보각에서 추구하는 요리는 그것이 아니었다. 최고 비싼 것은 한계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시장적으로 봤을 때 그 수요는 한정돼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것은 그 잠재력이 막대하다. 그래서 최고급 중국 음식을 대중화시키는 것이 나의 경쟁력이라고 보았다.

보통 불도장을 먹으려면 1인당 15만 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내가 가진 모든 경험을 살려 8만 원으로 낮췄다. 직접 음식재료를 사고, 서빙도 하고, 요리를 후배들에게 빨리 전수해서 다른 부분에서의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렇다고 우리 음식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손님이 두 번 다시 찾지 않으니까.

■ 주방뿐만 아니라 근무하는 직원 전체가 젊은 편이다. 이유가 있나?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빨리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 주방팀 평균 나이는 30대 전후다.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주방의 경우 약간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고용하게 되면 그 사람들은 어느 정도 틀을 잡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변화가 쉽지 않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은 내 요리를 빨리 전수받고 내 스타일대로 만들어 줄 수 있다. 내가 학교에서 강의도 하니까 좋은 친구를 고를 기회가 많기도 했다. 젊은 친구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경험하게 하고 더 큰 무대로 내보내는 것이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고 앞으로 할 일이다.

홍보각의 산향알배기 새우.

 


■ 왜 그렇게 가르치나? 40년 경험 속에서 힘들게 배운 요리 비법이 아깝지 않나?

요즘 내가 꿈꾸고 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중화요리를 세계 시장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나 식당 등에서 학생들을 지속해서 가르쳐야 한다. 나 혼자 기술을 보유한다고 생각하면 개인적인 측면에선 성공할 수 있지만, 사회적인 측면에선 손해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육해서 인적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다. 후진양성 없인 발전이 없다. 언젠간 꼭 중화요리 전문학교를 설립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내가 가진 인적자원을 총동원하면 최상의 학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리알과 어우러진 특선냉채.

 


■ 대한민국 중식당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내가 공부하고 느낀 것을 유추해서 비교해보면 과거 중식당은 중국에서 넘어온 화교를 중심으로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청요릿집 첫 출발은 고급 식당이었던 것. 그런데 광복이나 6·25 전쟁 등 역사적인 변혁기를 지나고 나면서 기존의 중국인 고객이 본국으로 떠나게 됐다. 이후 중식당은 자연스레 한국인 고객에 입맛에 맞는 요리를 추구하게 됐고 그것이 점점 대중화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대중화 과정에서 중식당 요리사가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느낌이 강했다. ‘짱개’ ‘짱꼴라’ 등 표현이 가득하다보니 한국에서 자란 화교 2세, 3세들은 부모님이 일궈온 중식당 영업을 꺼리게 됐고 자연스레 한국인 요리사들이 그 자리를 채워갔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중식당 요리사도 셰프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고 새로운 변혁기를 맞고 있다.

그래서일까 중식은 이탈리아 음식이나 일식보다 개방이 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중국은 중국 나름대로 중식을 이어 갈 것이고 한국은 한국만의 방식으로 요리가 발전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화된 중식이 세계로 뻗어 나갈 것이다.

홍보각의 단호박일품해삼.

 


◇ 김유진 푸드칼럼니스트 평가

김유진 : 20년 전 여경래 셰프를 처음 만났는데 남달랐다. 늘 유쾌하고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대부분의 성공한 셰프는 자신이 전문가라고 자부하며 심오한 사람이 많은데 그는 달랐다. 능력 있고 성실한 그가 정말 편안하고 어깨에 힘을 놓은 상태에서 직원과 후배를 챙기는데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홍보각 여경래 셰프. 그는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따스(사부)'로 통하며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다.

 


◇ 한국형 장사의 신 취재진이 전하는 ‘홍보각’ 성공 비법

홍보각을 이끄는 여경래 셰프는 자신의 기술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법을 공개하고 본인의 역할을 나눠주다 보니 더 많은 일들을 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만약 그가 주방에서 요리만 계속 해왔다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역할을 기술전수로 분배하고 중국요리와 관련된 더 많은 일을 한 것이 홍보각의 성공 비법이다.

홍보각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87 그랜드앰버서더호텔 2층


진행 – 김유진 푸드칼럼니스트
취재 – CBS 스마트뉴스팀 김기현 PD, 박기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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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직장인은 누구나 사장을 꿈꾼다. 그중에서도 요식업은 누구나 쉽게 생각하고 대박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대박 성공 확률 1%. 도대체 요식업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김유진 푸드칼럼니스트와 취재진이 대한민국에서 요식업으로 성공한 '장사의 신'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성공 비결을 파헤쳐보려고 한다. 요식업, 두드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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