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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것 두려워 실종자 가족 만나지 않고 기사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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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것 두려워 실종자 가족 만나지 않고 기사 썼습니다"

    [KBS기자 반성문 전문⑨]

    여의도 KBS 본관 자료사진

     

    KBS 사내 보도정보시스템에 실린 38기, 39기, 40기 기자들의 반성문 10편을 노조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거처가 진도 실내 체육관으로 정해진 뒤, 기자들은 모두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산사람 죽은 사람 할 것 없이 저마다 이야기 되는 사연을 찾는데 혈안이 돼있었습니다. 우리는 실종자 가족들의 녹취를 따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우리 아들 살아 있으니 제발 '구조'를 해달라고 할 때, 기자들은 사연 만들기에 바빴습니다. 결국, 1층에서 쫓겨난 기자들이 향한 곳은 체육관 2층이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생활하는 곳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어떤 기자는 중계를 탔고, 사진을 찍었고, 촬영을 했습니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실종자 가족들의 24시간은 그대로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방송됐습니다. 나중에는 가족들이 2층 구석진 곳으로 잠자리를 옮기더군요.

    2층에서 바라보는 실종자 가족들.. 그게 딱 유가족들을 바라보는 KBS의 시선이었습니다.

    "인터뷰 해봤자 마음대로 편집할 건데 뭐하러..."

    취재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숱하게 들었던 말입니다. 다른 기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종자 가족의 목소리는 정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보내지 않았고, 그들이 진짜 언론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에는 관심 있는 척만 하다가 정해진 야마에 맞는 녹취만 잘라 그렇게 10초를 맞췄습니다.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습니다. 매일 보도정보시스템에 업데이트 되는 세월호 관련 연락처 어디에도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과 관련된 연락처는 없었습니다.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리포트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그런데도 위에서는 "아이템들이 너무 실종자 입장으로 치우쳤다"며 전화를 하더군요. 한참을 고민해 봐도 저는 아직까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후배들 기사에 달리는 KBS를 향한 악플과 SNS 글들은 보이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지난 4일 이런 아이템이 발제된 적이 있습니다. <검증 안="" 된="" 무책임한="" 보도…="" 수색="" 작업="" 혼선과="" 가족="" 혼란="" 자초="">.

    JTBC와 이상호 기자가 실종자 가족들을 선동하고, 검증되지 않은 다이버를 인터뷰해 실종자 가족들의 환심을 사면서 오히려 수색 작업에 혼선을 불렀다는 겁니다. JTBC와 고발뉴스가 추측성 보도로 수색 작업에 혼선을 부르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다는 지적도 함께요. 그것도 40기 후배에게 던져준 아이템입니다. 저는 정말 후배에게 부끄러웠습니다. 가족들이 왜 누군지도 모르는 잠수사 한 명과 다른 언론사의 기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생각했더라면, 그리고 그동안 재난재해 주간 방송사라던 우리가 했던 것들을 생각했더라면, 이런 아이템 발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현장에 기사가 있다'고들 하죠. 우리가 공영방송의 기자로서 시청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바로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일 겁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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