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예장통합 김동엽 총회장, 주기철 목사 순교 70주년 기념예배 설교

  • 0
  • 0
  • 폰트사이즈

종교

    예장통합 김동엽 총회장, 주기철 목사 순교 70주년 기념예배 설교

    • 0
    • 폰트사이즈
    예장통합 김동엽 총회장이 13일 인천 주안장로교회에서 드려진 주기철 목사 순교 70주기 추모예배에서 설교했다.

     

    제목 : 함께 죽고 함께 삽니다.
    본문 : 디모데후서 2장 8 ~ 13절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오늘 주기철 목사님 순교70주년 기념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올해 주기철 목사님의 손자인 주승중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주안교회에서 이 귀한 예배를 드리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1944년 4월 21일 저녁 9시였습니다. 패망을 눈앞에 둔 일제가 최후의 발악을 할 때입니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의 모진 고문과 고된 감옥살이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시다가 평양형무소 옥중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는 가혹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속에서도 이 땅에 신앙과 양심의 자유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같은 순교자가 있었기에 한국교회는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순교 신앙이 없었다면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과 역사 앞에 영원한 죄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일제의 박해와 탄압을 이긴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 신앙이 그루터기가 되어 한국교회는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하신지 벌써 7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주기철 목사님을 죽인 일본은 아직까지 지난날의 과오를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종군위안부, 강제징용 등 일제가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그들이야말로 불쌍한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십자가의 믿음과 순교의 아름다운 신앙전통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붉은 피를 뿌린 순교자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찾아왔다가 대동강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 신사참배에 끝까지 항거하시다가 옥중에서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 아들을 죽인 원수까지 용서하신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시고 끝내는 북한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으신 손양원 목사님처럼 신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순교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순교의 신앙의 온전히 회복되어야 한국교회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속에서 순교의 의미를 찾고 이를 되새기는 가운데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우리는 고난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8~9절입니다.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나는 매여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여 있지 않다는 바울의 말은 자신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여 있지 않고 로마 전역으로 자유롭게 전파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는데 어떻게 말씀은 매여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바울로부터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이미 로마 전역에 수없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박해를 하고 핍박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로마의 옥중에서 집필했습니다. 2차 수감이었고 바울은 순교를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바울은 에베소에서부터 로마로 갈 것을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겉으로는 종교에 대해 관대했지만 그것은 허울뿐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은 로마의 황제도 신으로 섬길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타협하는 종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들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로마의 황제가 아무리 많은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역시 죄인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유로 기독교는 필연적으로 로마의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천주안장로교회 주기철 목사 70주기 추모예배.

     

    바울은 로마 제국 차원에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점차 가시화되던 시기에 로마에 갔습니다. 그가 로마에 갔던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중심인 로마를 복음으로 점령해야 전 로마제국의 복음화가 이뤄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슬에 매일 것을 각오하고 로마로 갔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짧은 기간이나마 복음을 자유롭게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이를 이용해 로마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황제였던 네로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예술적 영감을 위해 엄청난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정신병자와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네로는 로마 대화재로 인한 시민들의 불만을 기독교로 향하도록 하였고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십자가에서, 투기장에서, 감옥에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피가 흘려졌지만 기독교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아졌습니다. 박해하면 할수록 제자들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지고 복음은 더 넓게 퍼졌던 것입니다.

    일제는 신사참배를 우리에게 강요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외치면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그 일로 인해 감옥에 갇히고 모진 고문을 받고 끝내 죽으셨지만 주기철 목사님이 보여준 진정한 순교 신앙은 감옥에 매이지 않고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퍼져서 이 땅에 참다운 믿음이 살아있다는 것을 만방에 보여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박해가 심하고 가둬놓으려고 해도 진실은 숨겨지지 않습니다. 어둠이 빛을 가둘 수 없는 것처럼 거짓은 진실을 숨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비록 매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습니다. 이 매이지 않는 복음이 오늘도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고난과 박해를 받는 저 북녘 땅에도 그리고 이슬람 지역에도 넓게 퍼지길 원합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복음이 매이지 않도록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복음을 증거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으면 영광도 함께 받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 “그러므로 내가 택함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본문에서 바울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함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과 그리고 영원을 영광을 받게 하려고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참는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모진 박해와 고문과 그리고 죽음의 공포까지 참는다는 것입니다. 택함 받은 자들이 이 영광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도록 끝까지 참겠다는 것입니다.

    로마에 가면 중심에 큰 광장이 있다고 합니다. 그 광장을 중심으로 주요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로마시민들이 즐겨 찾는 콜로세움, 대전차경기장, 공회당 등 주요한 건축물들이 광장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켠에는 감옥도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수감된 감옥이 바로 그 감옥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오면 승전행사를 했습니다. 개선부대가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중앙 광장으로 들어오면 황제가 그들을 치하하며 상을 내리는 것이 승전행사였습니다.

    일단 승전행사가 치러지면 사도 바울이 갇혔던 감옥에서도 시민들의 환호와 군인들의 함성과 그 모든 소리가 다 들려왔습니다. 개선장군들이 시민들의 환호를 받고, 황제가 준비한 상급을 받고, 영광을 취하는 그 모든 것들을 감옥에 있던 사도 바울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옥에 있던 사도 바울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본문 말씀에 비춰볼 때, 사도 바울 역시 개선행렬을 상상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생각했던 개선은 이 땅에서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차 이르게 될 저 하늘나라에서 주님께서 순교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영광스럽고 찬란한 개선행렬을 믿음의 눈으로 바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소리를 들으며 저 하늘나라에서 자신을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을 위해 준비된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구원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영광’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고 주기철 목사.

     

    사랑하는 여러분,
    순교자는 이 땅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땅의 영광을 바라보면 순교를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제 목숨을 구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순교자는 이 땅의 영광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늘나라에 준비된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의 모든 고난과 환난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이 땅의 영광을 취하려 했다면 얼마든지 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실력과 인품 등 모든 면에서 존경받는 목회자였습니다. 만인의 신망을 받았습니다. 그런 주기철 목사님이 신사참배에 동참했다면 일제는 갖은 부귀영화를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님은 진정한 영광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제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순교의 제단에 자신을 바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역시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여 영원한 것을 취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우리도 그 영광에 동참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위한 고난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그 영광에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세 번째 교훈은 “주와 함께 죽으면 주와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본문 11~13절.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주와 함께 죽으면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로마서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사도 바울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함께 왕 노릇’하리라는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사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325년 니케아에서 종교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는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 열렸던 첫 번째 종교회의였습니다. 이 회의의 참가자들은 모두 318명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기독교인들의 지도자들이 모두 이 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회의에 참가한 지도자 중에서 무려 30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장애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모진 고문을 받다가 손과 발, 팔 다리를 잃은 것은 예사이고 눈, 코, 귀가 잘려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멀쩡한 사람은 12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어야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여러 순교자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목숨 걸고 예수를 믿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북한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여전히 기독교에 대한 모진 박해가 있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다가 걸리면 자기 생명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은 예수 믿는다고 생명을 내어놓지 않아도 됩니다. 자유롭게 예수를 믿을 수 있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예수를 믿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자유롭게 예수를 믿을 수 있다고 해서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 신앙과 믿음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목숨은 내어놓지 못하지만 믿음의 조상들에게 믿음의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산 순교자로서 살아가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번 회기 저는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주제 아래 총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은 순교자들의 정신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교정신이 퇴색되면서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믿음의 정도를 걸으려는 모습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거나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 될 것들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하는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과거를 무시하는 것도 범죄이지만 과거를 망각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범죄입니다. 이제 주기철 목사님과 여러 순교자들이 피를 흘려 보여준 아름다운 신앙을 지켜서 진정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아름다운 총회와 한국교회를 회복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귀한 일에 저와 여러분을 사용하길 원합니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