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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직접 성기 고문'' 폭로까지는 안하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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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일반

    "''정형근, 직접 성기 고문'' 폭로까지는 안하려 했는데"

    • 2004-12-1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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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그들은 다시 80년대를 꿈꾸는가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이철우 의원 민해전에 가입시킨 당사자 양홍관씨, "정형근 의원도 자식이 있지 않나. 자식 있는 사람이 남의 성기 고문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명예의 문제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안 하려고 했는데...''한 치의 거짓말도 없었다. 한치의 가혹 행위도 없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분노와 또 다른 측면에선 뭐랄까. 인간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이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 사회/정범구 박사>
    한나라당에서 이철우 의원이 가입했던 것으로 주장한 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이 조작됐다는 주장을 했는데.


    ◑ 양홍관>
    내가 민족해방애국전선에 가입한 것은 분명하다. 다만 나는 민족해방전선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인 것을 몰랐다는 거다. 그리고 내가 이철우 의원을 가입시킨 조직은 민족해방애국전선이 아니었고, 내가 조직한 별도의 조직인 조국통일애국전선이라는 조직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안기부 수사과정에서 이철우씨가 민해전에 가입한 것으로 조작했고, 더 나아가서 민해전을 중부지역당에 연결시켜서 하나의 조직을 만드는 식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철우 의원은 자신이 민해전에 가입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안다. 나 또한 분명하게 이철우 의원에게 당시 민족해방애국전선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판결문에는 그렇게 나와 있지만, 사실 이철우 의원은 민해전이라는 조직을 몰랐다는 것이다.


    ◎ 사회/정범구 박사>
    중부지역당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던 황인오씨는 민해전이란 중부지역당을 은폐하기 위한 또 다른 이름이었고, 이철우 의원은 하부 선이라 중부지역당에 대해서는 몰랐겠지만 민해전에는 가입했다고 증언하지 않았나.


    ◑ 양홍관>
    그것은 황인오씨의 이야기다. 황인오씨 본인은 그것이 위장 명칭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황인오씨 측에서 이철우씨가 민해전에 가입한 성원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황인오씨와 이철우씨는 나와 또 다른 사람을 거쳐서 조직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황인오씨로서는 이철우씨가 민해전에 가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모르는 이야기일 것이다.


    ◎ 사회/정범구 박사>
    그러면 이철우 의원이 양홍관씨의 안내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와 노동당기를 걸어놓고 당원 가입식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부 조작된 이야기인가.
    법원이 압수한 물건에 실제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와 노동당기가 있지 않았나.


    ◑ 양홍관>
    조작된 이야기이다. 실제로 내게서 나온 압수품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철우씨에게서 그것이 나왔다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생각을 더듬어 보니, 내가 이철우씨한테 보관을 요청한 물건이 있었다. 당시 나는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조직 사업을 했고, 그날 부산에 내려갈 일이 있어서 가지고 다니기가 어려우니까 이철우씨에게 잠시 맡아달라고 했다. 그것은 내가 최호경씨로부터 상자에 싸고 보자기에 싼 상태로 받은 것이었다.


    ◎ 사회/정범구 박사>
    최호경씨는 황인오씨와 함께 중부지역당의 주도 인물로...


    ◑ 양홍관>
    그렇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돌려 받지 못하고 잡혔다. 그런데 당시 안기부 수사 과정에서 "너. 뭐 가진 것 있지? 최호경이 준 거 있지?"하고 물었다. 없다고 말하다가 다시 기억을 해보니 최호경씨가 잠시 보관해달라고 했던 것을 내가 이철우씨 한테 맡긴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것이 혹시 나중에 압수품이 되었는지 그 속에 그것이 있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나중에 그것이 이철우씨한테 나왔다고 하고, 수사과정에서 다시 입맞추기를 하면서 내가 그것이 나왔다고 진술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 이야기라고 본다.


    ◎ 사회/정범구 박사>
    그럼 최호경씨로부터 보관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그 상자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양홍관씨도, 이철우 의원도 몰랐다는 말인가.


    ◑ 양홍관>
    그렇다.


    ◎ 사회/정범구 박사>
    대둔산 825호라는 암호명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조서에 나오는데.


    ◑ 양홍관>
    그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황인오씨의 조직원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그 많은 조직원들을 관리하기 위한 식별 번호 정도로 생각해 왔다. 내가 이철우씨한테 그것을 부여했다거나 이런 적은 없다.


    나중에 안기부 수사과정에서 나는 대둔산 몇 번이고 이철우는 대둔산 몇 번이고 이렇게 했는데 아..그것이 황인오씨가 식별번호를 붙인 것이었구나...이런 정도로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문제될 것이 아니라고 봤던 것.


    ◎ 사회/정범구 박사>
    황인오씨와의 관계는 어땠나.


    ◑ 양홍관>
    나는 황인오씨를 모른다. 재판과정에서도 인면식이 없었고, 98년에 나와서 언뜻 한번 본 정도다. 민해전과 중부지역당은 전혀 별개의 조직이고, 나로서는 중부지역당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 황인오씨와도 조직 활동 단계에서는 전혀 만난 적이 없다.


    ◎ 사회/정범구 박사>
    그러니까 여러 조직이 중부지역당이라는 한 조직 엮인 셈인데.


    ◑ 양홍관>
    그렇다. 당시 여러 조직을 크게 묶어서 ''해방 이후 최대의 간첩 사건''으로 몰고가려는 과정에서 무리한 고문 수사가 있었고, 다른 조직을 같은 조직으로 묶게 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 사회/정범구 박사>
    그럼 황인오씨가 북한에 가서 노동당에 가입했고, 민해전을 북한과 연계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언제 알게 됐나.


    ◑ 양홍관>
    안기부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됐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조국통일애국전선과 민해전 이야기만 했는데, 그것 때문에 고문을 심하게 받았다.
    ''위에서 다 이야기를 했는데 왜 너는 또 생뚱한 이야기를 하느냐''는 거다. 그래서 난 수사과정에서 한 10여 일 간 고문을 당했다.


    10일 이후에 가서야 ''너는 중간에 있다. 그러니까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이야기하고 밑에서는 그것을 맞춰가자''고 했다. 수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10일 이후의 진술을 진행한다.


    ◎ 사회/정범구 박사>
    당시 고문을 굉장히 고문을 심하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누구로부터 어떻게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해 달라.


    ◑ 양홍관>
    일단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안기부, 남산하면 공포정치의 핵심 아니었나. 그래서 ''안기부에 들어가면 나는 새도 떨어진다. 떨어지는 낙엽도 직각으로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풍미했던 시절이었다.


    안기부에 딱 들어가자마자 내 옷을 다 벗겼다. 팬티 한 장 안 남기고.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7명 정도가 달려들었고. 그들이 한 이야기는 "니가 왜 여기 왔는지, 니가 알지?'' 이거였다.
    ''네 이야기 다 알고 있으니까 다 불어라,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서 살아서는 못 나간다''는 거였다.


    그 때부터 때리기 시작했고, 양팔을 벌려서 세 명씩 잡고 손가락 사이에 막대기를 끼고 돌리고. 몽둥이를 무릎에 끼고 밟고. 그것도 안되니까 다시 3명씩 교대해서 태권도도 잘하는 사람들이 와서... 내가 조직폭력배들 속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속에서도 난 하루를 지냈다.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고 중간에서 막히니까 내가 초점이 됐던 것 같다. 그래서 이틀 정도 지나서 ''사장''이라는 사람이 왔다.
    그 사장이 막대기를 하나 가지고 내려오면서 "이 새끼. 아직도 안 불었어. 이거 완전히 꼴통이잖아" 이러면서 그때도 내가 발가벗고 있는데 귀두를 막대기로 탁탁쳤다.
    그 때 여기에서 살아남지는 못하겠다는 심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번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정확히 기억을 했다. 사장이라는 이름과 얼굴 형태를. 그리고 나서 그 분은 갔고, 나중에 물어보니까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이거야"라고 이야기하더라. 그래서 나는 안기부 부장 정도 되는 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정말 심각하구나, 잘못하면 살아서 못 나가겠구나 이런 공포감을 3일 동안 계속 느꼈다.


    ◎ 사회/정범구 박사>
    그 ''사장''이란 사람이 15대 때 부산에서 출마한 정형근 의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 양홍관>
    98년도 8.15때 특사로 가석방됐고, 그 분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고문 이야기가 나올 때 "아, 나를 고문한 정형근이군" 이렇게 인식하게 됐던 것.


    그래서 나는 사실 이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정형근 의원이 적어도, ''이 사건이 너무 엄중해서 고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약간의 가혹행위가 있었다''라는 정도의 이야기를 했다면...


    정형근 의원도 자식이 있지 않나. 자식 있는 사람이 남의 성기 고문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명예의 문제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안 하려고 했는데...''한 치의 거짓말도 없었다. 한치의 가혹 행위도 없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분노와 또 다른 측면에선 뭐랄까. 인간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이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 사회/정범구 박사>
    한나라당이나 정의원 측에서는 당시 이철우 의원이나 관련자들에게 가혹행위가 가해졌다면 재판과정에서 어디 한줄이라도 그런 이야기가 나올 텐데 그런 것이 전혀 없지 않느냐는주장을 하고 있지 않나.


    ◑ 양홍관>
    저는 법정에서 분명하게 모두진술에서도, 최후진술에서도, 항소이유서에서도 가혹행위를 이야기했다. 그래서 재판관이 그것에 대해서 판결문에 적어 놨다. 그리고 내가 감옥 안에서 고문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안기부 수사관들에 대해서 고소 고발을 했다.
    그런데 감옥에 있는 상황에서 한번 휙 한번 검사하고 말더라. 그러면서 유야무야 됐다.


    나는 그의 인상 착의도 이야기하고 ''사장''이다, 나의 수사기록을 보면 알지 않느냐, 수사관이 수사 기록에 자기 이름을 쓰지 않느냐, 그러니 당연히 그 사람들과 대질 신문을 해야 하고 구체적인 현장 검증을 해서라도 밝혀야 하지 않느냐, 그래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밝혀져야 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당시 검사는 교도소에서 한번 면담하고 끝이었다.


    ◎ 사회/정범구 박사>
    이번 이철우 의원이 관련된 간첩 논란. 이런 사건들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다.


    ◑ 양홍관>
    왜 이런 일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먼저 생각하기 전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들이 다시 80년대를 꿈꾸는가. 이것을 통해서 뭘 하자는 건가. 지금 한나라당이 이것을 가지고 무슨 비전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것은 무슨 비전도 아니고, 자기들의 내부 싸움인지 아니면 지금의 색깔론 정국을 통해서 독재와 고문을 계속했던 냉전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자유민주주의의 대표 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그야말로 수구 냉전 세력으로서 극복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이유로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폐지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다시 이 국보법의 망령을 통해서 나와 같은 공포를 느껴서는 안 된다는 심정이었다.


    ▶진행:정범구박사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98.1MHz 월~토 오후 7시~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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