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세대차이는 회식문화에서 눈에 띄게 나타난다. 세상은 크게 바뀌었지만 ''''삼겹살에 소주 한잔, 그리고 2차…´로 대변되는 직장 회식문화는 예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회식은 왜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새내기 직장인들의 푸념과 ''''회식=술''''이라는 등식에 익숙해진 고참 직장인들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도 한국의 회식 자리에서 엄청나게 술을 마시는 것에 놀란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주의적인 삶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한국의 회식 문화를 부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20&30이 말하는 솔직한 회식문화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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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식은 왜 항상 술?회사원 김모(26·여)씨는 직장의 회식 문화가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래 술도 못할 뿐더러 ''''1차 술집,2차 술집,3차 술집''''으로 이어지는 ''''회식라인''''이 너무 지루하다고 말한다.
''''계속 술만 먹고, 가끔 노래방 가는 게 전부라 가끔은 답답합니다. 사람들끼리 모이면 정말 할 게 많은데 매번 술만 먹으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일 때가 많아요.''''
김씨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고 선배에게 제안했다가 되레 쓴소리를 듣었다.''''선배한테 1차로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고 2차로 칵테일 바를 가자고 했더니 ''''뭐 이런 애가 다 있냐.''''며 황당한 웃음을 짓더라고요. 같이 얘기할 기회도 많고 더 좋을 텐데 아쉬움이 컸습니다.''''
회사원 송모(26)씨도 술 일색인 회식문화가 못마땅하다. 원래 간이 좋지 않은 송씨에게 술은 독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다 먹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 안 먹으면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마실 때가 많다.
''''직장 상사가 잔을 주시는데 어떻게 안 받아요. 눈 딱 감고 무조건 먹습니다. 별 수 없이 종종 병원에 가서 간 검사를 합니다. 그 방법이 최선이죠.''''
회사원 성모(26)씨는 회식 가운데 ''''대낮 회식''''이 가장 힘들다. 영업 쪽에 근무하고 있다 보니 별 수 없이 술 접대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특히 ''''대낮 회식''''을 할 때가 많아 일에 지장을 미칠 정도다.
''''항상 경쟁하듯 술을 마셔요. 접대하는 사람이나 접대 받는 사람이나 누가 더 술이 센지 경쟁하죠. 특히 대낮에 이런 ''''경쟁 아닌 경쟁''''을 하고 나면 몸을 추스르기 힘들죠. 말이 회식이지 이건 고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술먹는 게 차라리 좋다?
은행원 황모(30)씨는 회식 때마다 ''''차라리 술만 먹고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팀장부터 동료들까지 하나같이 노래방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사람들입니다. 회식이라면 아예 1차부터 노래방에 가서 술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지요.''''
[BestNocut_L]문제는 황씨가 음치라는 것이다.''''팀원들이 노래 한 번 부르라고 권하는 걸 요령껏 피하다가 체면상 한 번 부릅니다. 팀원들이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라 제가 노래를 못하는 게 부담스러워요.''''
장모(31·여)씨는 술보다도 담배 연기 때문에 회사 회식이 곤욕이다.''''제가 술은 좀 마시는 편이거든요. 웬만한 남자들보다 잘 마십니다. 문제는 제가 폐가 안 좋다는 거예요. 술자리에서 남자 동료들이 한꺼번에 뿜어대는 담배연기 때문에 질식할 거 같아요.''''
한번은 참다가 지쳐서 정색을 하며 문제 제기를 했다. 동료들은 미안했는지 앞으로는 교대로 한명씩만 담배를 피우기로 규칙을 정했다.''''회식 시작할 때는 그 규칙을 지키죠. 하지만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과장이 제일 먼저 규칙을 어겨요. 그러고 나면 다시 ''''너구리 잡기''''예요. 지금은 어떻게든 넓고 환기가 잘 되는 곳을 회식 장소로 하도록 하는 걸로 작전을 바꿨답니다.''''
●회식 자리가 그리워요지난해 광고회사에 입사한 정모(26)씨는 다른 20&30과는 달리 함께 술을 마시며 ''''달리는'''' 공동체 문화가 오히려 그립다고 말한다. 워낙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회사 분위기 탓에 제대로 된 회식자리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은 회사에서 술먹느라 ''''정신 없다.'''',''''힘들다.'''' 말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술에 취해 재미나게 얘기하는 그런 분위기가 그리워요. 대학 시절부터 밤새 술먹고, 술에 취해 못다한 얘기도 하는 게 정말 좋았거든요.''''
이 때문에 정씨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주도적으로 항상 ''''폭탄주''''를 제조해 친구들 사이에서 원성이 자자하다고 말한다. 한창 술에 힘들어하는 입사 1∼2년차 친구들은 ''''폭탄주'''' 얘기만 들어도 과민 반응을 보이기 때문.
''''입사해서도 마땅히 술 먹을 곳이 없어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술을 많이 먹는 편인데, 친구들은 이게 못마땅한가 봐요.''''회사에서 원없이 먹는 술, 여기서도 그렇게 먹어야 하냐.''''면서 볼멘소리도 해요.''''
회사원 김모(26)씨도 회식자리가 즐겁기는 마찬가지다. 연배 차이가 많이 나는 직장 상사들에게 그나마 농담이라도 건넬 수 있는 게 회식자리이기 때문이란다.
''''제정신으로는 직장상사 앞에서 어떻게 농담을 할 수 있겠어요. 경직된 회사문화에서 그나마 ''''탈출구''''가 될 수 있는 게 술자리 아닌가요. 같이 폭탄주 원없이 마시고, 노래방 가서 춤추고, 이러면 ''''딱딱한 우리 조직도 아직은 살 만하다.''''란 생각을 하게 되죠.''''
● 이런 회식자리가 부럽다연구소에서 일하는 강모(29·여)씨는 회식이 즐겁다.1주일에 한 번 있는 회식날은 팀원들이 모두 모여 보드게임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저녁을 맛있는 걸로 먹고 나서는 보드게임방에 가요.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서너시간은 금방이거든요. 그러고 나서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헤어지는 거죠. 벌써부터 다음 회식이 기다려져요.''''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여모(35) 팀장은 술만 먹고 다음날 속만 쓰린 회식을 바꾸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다 나름대로 해법을 찾았다. 팀원 중에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술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즐겁게 회식도 하고 단결력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던 여 팀장이 찾아낸 방법은 바로 볼링이었다.
''''일단 다같이 편을 나눠서 볼링을 하는 겁니다. 가끔 술내기 볼링도 하고요. 자연스럽게 웃음꽃이 만발하고 박수 소리가 넘쳐납니다. 두세 시간 동안 즐겁게 놀다가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집에 보냅니다. 하지만 자리가 즐거우니까 술은 안 마시더라도 대개 자리를 지키지요. 미리 예약해 놓은 곳에 가서 소주 한 잔을 곁들여 늦은 저녁을 먹죠. 운동을 하느라 땀을 흘린 뒤라 그런지 소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팀원들도 만족스러워하고 특히 제가 가장 즐겁습니다.''''
외국인들 눈에 비친 한국의 ''''회식문화''''는 어떨까.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회식 자리에서 너무 많은 술을 마신다는 것에는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들마다 엇갈렸다.
● 몸이 버티나요? 대학생 비지저(26·중국)는 한국의 술문화가 못마땅하다. 비는 ''''중국이나 한국이나 술을 못 먹으면 직장생활 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면서도 ''''그런데 한국에서는 술을 안 먹으면 감시하는 눈으로 쳐다봐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서는 윗사람 앞에서도 먹기 싫으면 안 먹겠다고 얘기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찍힐까봐 두려워 꾹 참고 먹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회사원 율리아(23·여·카자흐스탄)는 ''''카자흐스탄에서는 보드카 한 잔만 진하게 먹고 분위기를 즐기는데, 한국에서는 회식 장소에서 폭탄주 돌리느라 정신이 없다.''''면서 ''''정작 회식자리에 술은 있지만 대화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회사원 우노다 시오리(27·여·일본)는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게 일 때문에 술을 마실 수밖에 없을 때가 종종 있다.''''면서도 ''''그러나 말없이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우노다는 ''''직장 사람들과 동료애를 돈독히 한다는 것보다는 몸만 혹사시키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고 되뇌었다.
회사원 카이오(26·브라질)는 ''''한국의 회식문화는 좀 딱딱한 것 같다.''''면서 ''''브라질은 술을 마실 때 음악과 함께하며 춤을 추며 거의 축제나 다름없다.''''면서 ''''한국은 일의 연장선 같아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마리아(30·러시아)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술에 취해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돼 집에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다.
''''한국 기업들은 사람 중요한 줄 모르는 것 같아요. 건강을 지키면서 열심히 일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루가 멀다 하고 죽기 직전까지 술을 마셔대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잘 할 수 있겠어요.''''
● 같이 둥글게 모여 술자리 ''''인상적´ 회사원 개리 모리스(24·독일)는 한국의 회식문화가 부럽다. 따로따로 떨어져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아니라 같이 둥글게 모여 회식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모리스는 ''''독일 등 유럽인들은 병맥주 하나 들고 돌아다니면서 술을 마신다.''''면서 ''''한국인들은 둥글게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면서 ''''우리는 하나다.''''라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어 인상적이다.''''고 말했다.
대학교 강사 스테판 헤크만(30·미국)은 ''''한국인들은 노상에서도 술을 마시며 함께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좋다.''''면서 ''''따로 떨어져서 이야기하지 않고 다 함께 같은 화제로 말하는 한국인의 술문화가 너무 좋아 보인다.''''고 부러워했다.
외국기업 한국 지사에서 일하는 제임스(34·영국)는 한국 사람보다도 더 한국의 회식문화를 즐긴다. 잔돌리기는 기본이고 폭탄주도 자기가 먼저 권할 정도다. 한국 사람도 못 말리는 그의 술버릇은 영국 런던에서 공부할 당시 한국 유학생과 알게 되면서 시작됐다.
''''친하게 지내면서 같이 술도 자주 마셨어요.1차,2차,3차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종류별로 마시는 것도 그때 배웠고요. 폭탄주를 맛있게 제조하는 방법도 전수받아 지금은 소주나 맥주만 보면 섞고 싶어질 정도랍니다. 술을 마시면서 인생의 고민을 함께 나눈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친구 아니겠어요.''''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바얀(27·몽골)은 한국 친구들이 술을 너무 못 마셔서 불만이다.''''몽골에 있을 때는 친구들과 칭기즈칸 보드카를 마셨어요. 한국 술문화가 몽골과 비슷해 좋긴 하지만 소주는 너무 순하잖아요. 그래서 하루는 칭기즈칸 보드카를 가져왔는데 몇 잔 마시니까 친구들이 모두 취해버리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