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한두번 울린 뒤 전화가 끊겨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해보면 녹음된 광고가 들려온다. 이같은 ''원링 스팸'' 전화가 2년째 계속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도 이동통신사업자들은 속수무책이다.
직장인 박승현(30·경기도 안산)씨는 모르는 번호가 부재중 전화로 남겨져 있으면 고민에 빠진다. 한 두 번 당한 것이 아니다. ''거래처 사람이겠거니'' 하고 전화를 걸면 기대했던 목소리 대신 수화기에선 미리 녹음된 대출 광고가 흘러나온다. 박 씨는 "영업을 하는 입장에서 혹시 하는 마음에 부재중 전화에 응대를 안 할 수도 없고 정말 짜증난다"며 "하루에 한 통씩은 꼭 낚는 전화가 오는데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른바 ''원링 스팸''이다. 자동 전화시스템을 이용해 무작위로 전화를 건 뒤 신호가 가면 곧바로 끊어 버린다. 상대방에게 부재중 전화번호 남기는 것이다. 상대방이 번호를 보고 전화를 하면 광고가 녹음된 ARS로 자동 착신 전환되도록 설정해 놓는다.
휴대전화 사용자를 짜증나게 할 뿐 아니라 전화요금까지 부과시키는 이같은 ''원링 스팸''은 발신자 번호 서비스가 대중화 되면서 계속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기존의 광고 전화가 ''060''등 식별 번호를 사용해 온 것과 달리, ''원링 스팸''은 ''010'' 등 일반 휴대전화 식별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스팸인지 구별해 낼 방법이 없다.
[BestNocut_L]정통부 산하 불법 스팸대응센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휴대 전화 이용자의 62%가 원링 스팸을 경험했고 이 비율은 지난해의 같은 기간에 비해 3배에 달한다. 원링 스팸이 최근 스팸계의 ''트렌드''인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동통신사들은 ''''원링 스팸''에 대해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SKT 관계자는 "문자 메시지는 우리가 막을 수 있는데 음성전화는 막을 수가 없다"며 "회사 쪽 맘대로 정지를 못 시킨다. 광고 스팸은 통신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기보다는 형사 고발할 문제라"고 말했다.
KTF 관계자도 "원링스팸의 경우 회사가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며 "일반 휴대폰인 경우 정통부 등에 신고 된 건에 한해 해지조치 가능하지만 당사 단독으로 해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어떤 번호가 스팸전화를 걸고 받는데 사용되더라도 이동통신사 자체적으론 이 번호의 사용을 금지시킬 수조차 없다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설사 정보통신부가 나서서 신고 된 스팸 번호를 사용 정지시켰더라도, 같은 명의자가 또 다른 번호의 휴대폰을 구입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점이다.
SKT 관계자는 "재산권의 문제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이동전화 가입에 제한을 둘 수는 없는 것이라"며 "스팸을 보낸 전력이 있는 사람에게 휴대전화 가입시 페널티를 주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 명의자의 휴대폰 번호로 스팸 전화가 계속 걸려 그 번호가 정지당하더라도, 명의자는 정지당한 번호를 개통해 준 이통사나 다른 이통사에 가서 또 다시 휴대폰을 만들면 된다는 얘기다.
이런 맹점 때문에, 지난해에는 한 사람의 명의로 된 휴대폰 550여개가 사용정지 돼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550차례 사용정지 될 동안 어떤 제지도 받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이통사간 정보공유를 통해 일종의 ''''삼진 아웃''''제를 시행하고 있다. 같은 명의로 개통된 번호가 세 차례 스팸전화에 이용되면, 가입 시 페널티를 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세 이통사간에 스팸머(스팸 전화나 문자를 발송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 공유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같은 이통사에 가입하는데도 현재로선 아무런 제약도 없다.
결국 스패머가 스스로 그만 두지 않는 한, 스패머가 계속 휴대폰 번호만 바꿔가며 ''스팸질''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구조다.
또 광고주를 처벌할 수 있는 관련 법규가 없는 것도 문제다. 휴대전화 이용자들은 뻔히 광고주가 드러나는 원링 스팸을 제지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의아해 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청 기획수사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광고주를 형사 처벌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만일 실제 스팸 전화를 거는 사람을 잡은 경우 광고주를 공범으로 처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스패머를 잡기 어려울 뿐 아니라 광고주가 공범임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짜증나는 ''''원링 스팸''''이 기승을 부린 지 2년. 정치권 일부와 정통부에서 대응에 나섰다고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다. 스팸 관련 제도 미비에 이통사들의 안일한 태도까지 더해져, 결국 애꿎은 휴대전화 이용자들의 불편만 가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