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왜 한국사람들은 ''to cause''라는 말을 잘 쓰는 거죠?" 몇 십 년간 동양인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한 미국할머니가 묻는 질문이다.
''~을 야기시키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이 단어는 한국인에게는 피곤할 때 마시는 바카스, 설사에 먹는 정로환, 소화가 되지 않으면 한잔 마시고 "끄억!"하고 트림을 하는 사이다 같은 말이다.
그런데 말이란 같은 뜻이나 비슷한 뜻의 말을 잘 섞어서 해야 듣는 사람이 재미가 있는 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to cause''를 ''to bring about''으로 바꿔 말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눈치는 있지만 영어의 왕도와는 거리가 상당히 있으신 분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결과에는 원인이 따르고 원인은 결과를 낳는다. 이를 문장에 적용시키면 주어는 원인이나 결과가 되고 동사는 그것을 어떻게 만드는지 과정을 설명하는 여행가이드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신문의 빈칸 채우기 식의 영작문으로는 따라 갈 수 없다.[BestNocut_R]
눈에 보이는 사물의 변화는 표현할 수 없지만 분명히 주변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나타내는 것에는 실패작이라는 것을 인정하시기 바란다.
어느 손이 귀한 집의 아들이 죽었다고 치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부 "우리 집 대가 끊겼다"고 통곡을 하겠지만 영어로 이를 표현하면 "My family name dies with me"라는 문장이 된다. 아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자기 성을 물려주기 위한 것인데 이 귀한 아들이 먼저 요절을 했으니 그 집 대는 끊긴 것이다. 주어나 동사 어느 것도 ''대''나 ''끊기다''라는 말은 없지만 잘도 우리 고유의 정서를 전달한다.
그럼 다른 예를 들어보자. 심하게 무서우면 그저 ''to be scared''나 ''to be afraid''보다는 더 강력한 뜻이 필요하다.
대학시절 한 영자신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소위 문장을 교정해주는 원어민들이 한국인기자가 쓴 글을 보고 낄낄댄다. ''I was engulfed by fear''라는 말로 기억하는데 콩글리시냄새가 나도 너무 난다. 이럴 때에는 주어를 과감하게 바꿔 ''Fear filled me(공포가 나를 채웠다)''라고 말하면 정확하다.
우리말 주어가 영어에서 주어자리를 지킬 수 없고 동사나 목적어의 위치도 언제 어디서 엉뚱한 놈들에게 뒤바꿔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