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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규의 영어와 맞짱뜨기]주어 따로, 동사 따로?

영어

 

미국 전역을 혈관처럼 흐르는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가장 많이 만나는 것은 밤사이 차에 치어 죽은 야생동물의 사체이고 그 다음이 손을 들고 지나가는 차를 세우는 히치하이크족이다.

친한 미국인들은 "태우면 언제 강도로 돌변할지 모른다"며 기피하지만 필자는 장거리여행을 할 때 이들 히치하이크족을 태워 운전을 맡기고 쉰다.

또 왜 차를 세우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I have a flat tire(타이어에 펑크가 나서)"라고 말한다.

영어는 우리말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말 문장에서의 주어가 사라지고 엉뚱한 녀석이 주어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타이어가 펑크가 났으면 당연히 타이어가 주어로 등장해야 하지만 이 문장에서는 타이어가 아니라 내가 주어로 온다.

사실 타이어가 주어로 등장하면 그 타이어가 내 차 타이어인지 남의 차에 달린 놈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말로 ''코피가 흐른다''는 말을 할 때에 영어로는 ''I have a bloody nose''라고 하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나는 피투성이의 코를 가졌다''가 되지만 우리식으로 말하면 ''코가 피를 흘리는'' 격이 된다.

조금 더 관용적인 표현을 보면, 술을 밑빠진 독처럼 마시는 대주가를 지칭해 ''he has a hollow leg''라고 하는데 다리가 비어있다는 말이다.

다리가 비었으니 배에 술이 다 차면 다리의 빈 공간으로 술이 들어가 술을 엄청나게 마실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관용어구라지만 과장이 좀 심한 것 같기는 하다.

이때에도 ''그 사람 다리가 비었어''라고는 말하지 않고 ''빈 다리를 가졌다''로 우회해서 표현한다.

그럼 영어에서는 왜 이렇게 해당되는 사물이 아니라 엉뚱한 말이 주어로 등장해 영작문을 하는 한국인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일까? 서양인 특히 영어권사람들은 네 것 내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좋은 꽃이 피어도 내 집 마당이 아니라면 그림의 떡이요, 의미없는 넋두리에 불과하다.

또 타이어가 스스로 터질리가 없고 멀쩡한 코에서 저절로 피가 나올리도 없다. 피로해서든 누구에게 맞아서든 결국 내 몸에 이상이 있으니 코피가 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엉뚱한 단어가 주어로 등장하지만 결국 그 타이어가 누구 것인지, 코는 누구 얼굴에 붙어 있고, 어느 집 술고래 다리가 비었기에 술이 그렇게 잘 들어가는지를 알아야 영어를 할 수 있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저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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