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말소
벌금 90만원을 내지 않아 주민등록이 말소된 30대 여성이 영양실조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 했다는 소식에 여론이 들끊고 있다.
이 젊은 여성의 기구한 삶에 대한 개인적인 애도부터 시작해 과연 선진국클럽인 OECD 가입국가에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런일이 벌어지도록 과연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는 질타까지...
한편으로는 ''''주민등록말소''''에 대해 생소함을 표현하는 의견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빈곤문제연구소 "정부 주민등록말소자 문제 개입할 의사 없어!"빈곤문제연구소가 올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주민등록말소자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현재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인구는 6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말해 우리나라 인구 100명당 1.25명이 국가로 버림받아 국민성이 상실된 사람임을 뜻한다. 쉽게 말해 노숙자나 쪽방 거주자, 그리고 신용불량자 가운데 상당수가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다.
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은 ''''행정자치부에서도 주민등록말소자의 정확한 현황을 밝히기를 꺼려한다''''며 ''''이는 곧 국가가 이들의 생활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할 뿐 아니라 그럴 의사도 없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경우 국가가 보장하는 최소한의 사회보장혜택을 누릴 수 없게된다. 국민기조생활보장법에 의한 기초생활보장금은 물론이고 연금과 의료보호혜택에서도 제외된다.
그밖에 주민등록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모든 불이익, 예를들어 취업이나 상거래활동, 그리고 혼인신고과 자녀양육 등이 모두 불가능해진다.
일정한 요건 되면 기관장 직권으로 주민등록 말소그렇다면 과연 벌금 90만원을 내지 않았다고 국가가 주민등록을 직권말소 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면 주민등록말소의 직접적인 원인은 벌금을 내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벌금을 낼 형편이 안되 주소지를 등록하지 않아서이다.
현행 주민등록법 17조에 의하면 주소지 신고를 사실과 다르게 할 경우 등에는 해당 지방자치단체 기관장의 결정으로 주민등록을 말소할 수 있다.
또, 주소지를 등록하기 위해 주민등록을 되살리면 행정전산망에 벌금을 내지 않은 것이 나오고 때문에 벌금 90만원과 함께 주민등록 복원을 위한 과태료 5만원까지 물어야 한다.
물론 일반인에게 이 돈이 적은 액수일지 모르지만 이들에게 백만원 상당의 돈은 몇 달을 버틸수 있는 거금이다.
류정순 소장은 ''''주민등록이 말소됐다는 것은 빈곤 등의 이유로 사실상 정상적인 삶을 포기한 것을 의미한다''''며 ''''이들에게 벌금을 내고 주민등록을 되살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주민등록 되살렸더니 가장 먼저 빚독촉 한 곳은 ''정부''실제로 지난 10년에 걸쳐 4번이나 주민등록이 말소된 경험이 있는 강모(52) 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식품도매업을 하던 강 씨는 IMF 당시 부도위기를 맞게됐다. 어쩔수 없이 카드빚을 지게 됐고 결국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결국 그 때부터 채권추심회사 직원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던 강 씨는 도망을 다니는 형편이 됐고 결국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채권추심회사의 요구에 의해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강 씨는 ''''누구처럼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빚을 지게 된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가족과 같이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발버둥 치다가 이렇게 됐는데 국가에서는 매정하게 주민등록을 말소시켰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민등록이 말소되자 취직을 할 수 없어 강 씨는 대전에서 주민등록을 다시 살린 뒤 건물 청소부로 일을 하게됐다.
하지만 주민등록을 살리자 말자 가장 먼저 연락이 온 곳은 다름아닌 건강보험관리공단. ''''밀린 의료보험비를 내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 어떻게 알았는지 채권추심회사에서 강 씨의 직장으로 수도없이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강 씨는 결구 일을 그만둬야 했다.
강 씨는 ''''개인파산이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차마 사람 얼굴을 하고 남의 돈 떼먹고 발벗고 못살 것 같아 파산을 택하지 않았다''''며 ''''조금이라도 벌어서 갚으려고 했는데 국가에서 먼저 훼방을 놓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신용불량자, 성매매 피해여성, 성적소수자... 국가는 책임 없다?
빈곤문제연구소의 실태조사결과 주민등록말소자의 8~90%는 신용불량과 연결돼 있다. 이는 IMF위기와 그 뒤 정부의 경기활성화 정책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신용카드 대란이 주민등록말소자를 양산하는데 일조했음을 의미한다.
뿐만아니라 소수이긴 하지만 주민등록말소자 가운데는 악덕포주에 의해 의도적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성매매 여성을 비롯해 가족이 소위 ''''호적을 파버린'''' 성전환자들까지 사회적 소수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조사결과 나타났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색출하기 위해 처음 도입돼 해방 후 독재정권시절에는 분단상황이라는 미명아래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명맥을 유지해온 주민등록제도.
이제는 그 주민등록제도의 또 다른 면인 ''''주민등록말소제도''''가 이제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하고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지 곱씹어봐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