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시내에 필자가 단골로 찾는 음식점이 있다.
돼지고기 요리를 주로 하는 아주 서민적인 북경요리 전문식당인데 이곳 메뉴에서 아주 이상한 점을 발견해 주인장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돼지고기 요리에는 그냥 고기(肉)라고 쓰고 쇠고기(牛肉)나 양고기(羊肉)는 따로 쇠고기, 양고기라고 분류를 하죠?" 그 말에 주인장은 "중국에서 돼지고기는 고기의 대명사라 고기라고 말하면 당연히 돼지를 먼저 연상하거든요. 쇠고기나 양고기는 특별한 날 먹거나 혹은 이슬람교 신자만 시키는 요리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즉, 중국에서는 고기(肉)라는 말이 고기와 돼지고기를 모두 지칭한다는 말이다.
영어에도 이처럼 한 단어가 두가지 뜻을 가져 우리말 번역이 까다로운 말이 많다.
결혼할 신부감으로 최악의 대상이 어떤 여성인지 말해보라면 대부분의 미국인은 ''bimbo(얼굴은 예쁘지만 다소 바보스러운 여성)''라고 앞다투어 말한다.
이를 영어로 굳이 설명한다면 ''beautiful but empty headed girl''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한 단어로 축약해 두가지 뜻을 표현하니 정말 일석이조(一石二鳥)식 표현이라 하겠다.
키가 크다, 키가 작다는 ''tall''이나 ''short''를 쓰면 그만이지만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은 ''lanky''라고 표현한다.
습기가 많으면서 날씨가 추운 냉습(冷濕)한 기후는 ''damp''라고 말하는 반면에 덥고 습기가 많은 무더운 날씨는 ''humid''라고 설명하면 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여름은 그냥 ''hot''이 아니라 ''humid''라고 말해야 좋다.
한국인들이 영어어휘를 외울 때는 그저 말랐다, 뚱뚱하다, 키가 크다, 작다로만 기억하는데 이렇게 공부하면 나중에 영어작문을 할 때 문제가 생긴다.
말랐다라고 하기보다는 몸이 가늘고 늘씬하다(slim), 피골이 상접했다(skinny), 살집이 있어 보인다(chubby), 과체중으로 위험하다(over-weighed), 뼈대가 좋고 단단해 보인다(stout)등 한 단어에 들어간 말을 우리말로 반드시 한 단어로 딱 부러뜨려 기억하지 말기 바란다.
영어 한 단어가 우리말 한 단어라는 공식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만일 이런 식으로 단어를 기억하면 정작 "나는 머리 나쁘고 얼굴만 예쁜 여자는 싫다"며 미팅(blind date)에 나가 거절을 하지 못한다.
처음 미국에 도착해 영어좀 한다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만난 학원강사들과는 달리 미국인들이 너무 쌀쌀맞고 외국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을 자주 듣는데 이는 당연한 이야기다.
영어교습이 생업도 아닌 사람들이 외국인이 한 마디로 끝날 말을 두 단어로 나눠 말하는데 이를 귀 기울여 들을 리가 없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