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미국에 살다보면 가장 흔히 듣는 말이 ''Thank you''이고 가장 듣기 힘든 말이 ''I am sorry''라는 농담도 있다.
영어권 특히 툭하면 소송(sue)이 오가는 미국에서 미안하다는 말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졌을 때 이게 다 내 책임이라는 이야기이니 절대 입에 담지 않는 것이 좋다. 오죽했으면 노랫가사에도 ''Hard to say I am sorry(미안하다고 말하기 어려워)''라는 말이 나오고 영화 러브스토리에는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는 여성이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사랑은 미안하다고 하는 게 아냐)"라며 유언까지 남기겠는가?
그런데, 단어 한 개에는 뜻도 하나라는 식의 영어교육을 받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인과 사소한 마찰이 생겼을 때 sorry만 들으면 책임을 다 전가시킬 수 있다고 믿는데 이건 큰 착각이다.
서양언어에서는 전부 미안하다와유감이라는 말이 동시에 쓰인다. 지나가는 차량과 교통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 운전자가 ''sorry''라고 했다고 보상을 요구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당신 차가 불미스러운 사고로 부서졌는데 참 유감이다"로 멋지게 해석하고 정작 경찰이 오면 외국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오늘날 미국인들의 평균적인 행동방식이다.
우리 사전에는 영어단어 mole이 두더지라는 뜻도 있고 분자기호도 뜻한다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필자는 어원과 뜻이 전혀 딴판인 단어가 우연히 철자가 같아 함께 사전에 기재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안하다는 sorry와 유감이라는 sorry도 철자만 같고 뜻과 용례가 다른 별개의 단어로 이해해야 억울한 꼴을 당하지 않는다.
그럼 꼭 들어야 할 사과말은 무엇일까? "That is my fault(내 탓이다)", "Could you accept my apology?(사과를 받아주실래요?)", "It is all my fault. How can I make up my mistake?(다 제 불찰입니다. 제가 어떻게 해드릴까요?)"라는 정도의 사과를 문서로 받아야 뒤탈이 없다. 물론 다 자기 탓이라고 말하고 활보하고 다니는 전두환 노태우씨에게는 미안하다도 그저 사탕발림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돼야 사과축에 든다.
미국에서는 여기 저기에서 올해 명사들이 미안하다고 한 발언록이 소개되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미안하다. 다만 이슬람에 대한 적대적인 발언이라고 소개된 내 말은 내 의사가 반영된 것이 아니고 동로마제국 황제의 말을 인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슬람신자들이 마음이 상했다면 용서를 빈다" 이렇게 당한 사람의 심정을 생각해 하는 사과는 진짜 ''I am sorry''이다.
멜 깁슨은 음주운전으로 구설수에 올랐는데 구체적으로 자기 잘못을 말하지 않고 그냥 미안하다고만 했다. 또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추행을 한 플로리다 상원의원 마크 폴리는 "어렸을 때 성직자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나도 아동성추행자가 됐다"며 남 탓을 하는데 이것은 사과라고 보기 어렵다. 진정한 사과는 ''I am sorry''에서 끝나지 않고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생각하며 뒤에 무슨 말인가 있어야 한다. 그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자기 변명이니 절대 속지 말자. 진정한 사과는 물질적 보상이 따르고 위로의 말을 동반한다.
''Sorry''에 속지 말자.
※ 이서규 통신원은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교과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