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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자 인권, 정치적 도구화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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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성전환자 인권실태 조사, 귀중하지만 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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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국내 최초 성전환자 인권 실태 조사 = "게이에서 트랜스젠더가 된 계기는 좀 여성스럽고 싶고 화장을 하고 싶고 치마를 입고 싶었어. 귀걸이가 하고 싶고 립스틱이 바르고 싶고 하니까. 그냥 게이 생활을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야. 아 나는 이게 아니구나. 이 쪽보다는 여성이 가깝구나 했지. 그리고 이 모습 훨씬 더 행복하니까.

내가 트랜스젠더가 싫었다면 게이로 남아 있었겠지. 일반남자로는 못 돌아가겠지만. 게이 중에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많이 있지만 그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거든. 내가 돈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지금 게이의 50%는 다 성전환을 하고 싶을 거야. 그렇지만 사회적인 체면과 가정 때문에 못하는 거야." (MTF 송 모씨,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위원회 성전환자 인권 실태 보고서 중)

누구의 이야기인가. 이는 바로 우리 사회 성적 소수자로 낙인 찍힌 한 성전환증자의 목소리다.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이 사람은 동성애자를 거쳐 성전환자가 됐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위원장 최현숙)는 지난 4일 국회 헌정 기념관에서 국내 최초로 성전환자 인권 실태 보고 대회를 가졌다.

위원회는 약 5개월간의 실태조사 기간동안 38명을 심층면접하고 약 70여 명에 대해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를 토대로 민주노동당은 노회찬 의원을 대표로 이번 정기국회 기간 중 ''''성전환자의성별변경등에대한특별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실태 조사의 문제점 =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조사한 실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일단 조사된 표본 집단을 살펴보면 실태조사에 참여해준 인터넷 커뮤니티는 ''지렁이''라는 성전환 남성 커뮤니티였다.

즉 FTM(Female to Male)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곳으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기획단의 일원인 한무지(27)씨가 지렁이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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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MFT(Female to Male)에 대한 조사는 서울에서도 이태원이라는 한정된 지역, 게다가 이태원의 특정 ''Y''업소를 중심으로 조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다수의 여성 성전환자들이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울 보다는 지방의 트랜스젠더 전용 바가 더 활성화 돼 있고, 인권 침해의 정도도 지방에서 그 정도가 더 심하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결국 위원회는 성전환자 실태 조사를 한정된 내부 그룹에 국한해 실행했음을 스스로 드러냈다.

국내 성전환증자 관련 전문가들이 국내 성전환자의 수를 약 1천 명에서 많게는 2천 여명 정도로 잡고 있고, 또 MTF와 FTM의 비율을 3대 1 정도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성전환 남성 38명의 면접 조사 결과가 대표성이 있을 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날 보고 대회에 참석한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씨는 애초 "많이 만나볼 수록 이해하기 쉽다. 38이란 숫자가 얼마나 대표성을 띌 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표본의 적절성, 대표성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마음으로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 씨는 또 "아무리 적은 소수의 이야기일지라도 인권 침해가 있다면 그것도 개선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뭐가 다른거지? = 자신을 ''타리''라는 이름으로 밝힌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과정 재학생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를 혼동한다"면서 우리 사회 내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함을 꼬집었다.

하지만 위에서 인용한 사례를 보면 과연 게이(동성애자)와 MTF(성전환자)의 경계는 과연 어디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취재 중 만나본 대다수의 성전환증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토로했다.

지난 5월 성전환수술을 마친 MTF ㄷ(27)씨는 "보갈(게이의 은어)에서 트랜스 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아는 애는 화장하고 여자 옷 입는 게 좋다고 게이 된 지 3개월 만에 성기 수술까지 다 끝냈다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ㅇ(35)씨는 또 "아는 애는 게이였다가 트랜스했는데, 트랜스로 사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이 드니까 다시 게이로 됐다"고 말한다. 또 다른 40대의 MTF는 "군대 빼려고 가슴 넣었다가 신체검사 마치고 다시 가슴 뺀 애도 안다"면서 "얘네들은 고민이 없어. 얘네들을 위해 호적정정 법안 만든다고 난리치는 게 웃기지"라고 냉소하기까지 했다.

성전환증자들이 많이 찾는 서울의 한 정신과 병원 의사는 "자기가 트랜스젠더라고 하면서 병원을 찾는 사람들 중에서 진찰을 해보면 대부분은 CD(성복장도착자)나 동성애자이고, 진성 트랜스젠더는 10에서 20 %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날 제시된 위원회의 자료 어디에서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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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트랜스젠더는 잘 살고 있다고? =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위원회는 실태 조사 보고에 앞서 지난 8월 21일 ''성전환자의성별변경등에관한특별법''에 대한 공청회를 연 바 있다. 위원회는 이 날 공청회에서 뿐만 아니라 이 날 보고 대회에서도 영국, 일본 등 해외 사례를 예로 들었다.

하지만 위원회가 실제로 접촉한 해외 전문가나 해외 트랜스젠더는 단 한 명도 없다. 해외 문헌조사 몇 건이 있을 뿐이다. 국제트랜스젠더자문단체 프린세스월드의 이태혁 대표는 "영국 같은 나라가 법이 잘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매우 좋지 않다. 영국에서 트랜스젠더를 지칭하는 레이디보이(lady-boy)라는 말은 비하하는 뉘앙스가 매우 강하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또 "영국같은 선진국은 일단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동성애자들을 사회적으로 포용하고 용인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게이나 레즈비언이 트랜스젠더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면서 "사회, 역사, 문화적인 배경과 분위기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랜스젠더 문제를 너무 급진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영국의 가정문제상담가 데이빗 밀러씨는 "영국에서 트랜스젠더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요즘에 트랜스젠더 중에 아이를 갖거나 입양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제3의 성. 법보다 사회적 편견부터 없애야 = 성전환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22일 대법원이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마친 50대 성전환자에게 호적정정과 성별 변경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뒤다.

지난 3월 출범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는 이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지난 7월과 8월 성전환자들에 대한 심층면접을 진행했으며,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10월 중순쯤 성전환자 특별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전환자는 우리 사회 소수 중에서도 소수다. 소수의 인권이 침해되는 걸 간과하는 것 또한 폭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권리는 헌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성전환증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이들을 우리 사회의 동일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일단 이들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고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편견과 혐오를 그대로 유지한 채 이들을 받아들일 경우 오히려 보호의 대상이 됐던 성전환자들이 상처만 안고 더 깊은 음지로 숨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터프츠 대학의 인류학과 교수인 힐러리 크레인은 "트랜스젠더들은 제3의 성"이라면서 "그러나 제3의 성이 있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남성과 여성 외에 다른 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문화의 차원에서 허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실태 조사가 국내 최초라는 점에서는 뜻깊지만, 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오직 법안 마련에만 주안을 두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성전환증자들을 위한 상담센터 하나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의 인권이 또다른 성소수자들의 필요로, 혹은 정치적 도구로 가볍게 여겨지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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