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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카페 ''민토'' 지승룡 대표 "세상 모두가 아름다웠으면"

토종카페 ''민토'' 지승룡 대표 "세상 모두가 아름다웠으면"

[노컷 이코노리더] 스타벅스보다 더 맛있는 ''오감커피'' 준비…하나님 나라 확장이 궁극적 꿈

민토

 

민들레, 민들레 홀씨, 민들레 영토...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 말.

지난 94년 신촌 10평으로 시작한 민들레영토가 지금은 전국 5천평 매장에 매년 천만명 가까운 방문객수를 기록할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이 조그만 카페가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카페로 성장한 이유는 어머님의 헌신적인 사랑, ''마더 마케팅''이 고객들에게 감동을 불러왔고 이 마더 마케팅을 가지고 이제는 세계의 무대에 우뚝 설 채비를 마쳤다.

올해 우선 중국과 미국에 진출하고 앞으로 3년 내에 해외지점 30개를 만들겠다는 민들레영토 지승룡 대표(48)를 대학로 민들레영토 별관에서 만났다.

지 승룔 대표에게는 꿈이 있었다. 특히 젊은이들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 또한 남달랐다. 민들레 홀씨가 돼 정착한 뒤 그곳에 민들레영토를 세워 우리만의 문화가 있는 카페를 만들어 세계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것이 지 대표의 야심찬 계획이다.

꿈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늘 즐겁고 행운이다.

민들레영토 지 대표와의 인터뷰는 이런 즐거움 속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게 계속됐고 앞으로 10년 뒤엔 세계에서 ''스타벅스''와 ''민들레영토''가 카페 시장을 주름잡고 있을 거라는 지 대표의 말은 결코 꿈에만 머무를 것 같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지 대표와의 일,꿈, 사랑에 관한 유쾌한 인터뷰를 시작한다.

세계가 민들레 영토처럼 세상 모두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이름 지어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240킬로미터를 날아간다. 신학공부하는 나로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거리가 출애굽하는 거리였다. 바람부는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이용해서 그곳에 가서 자기가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민들레 꽃이다. 그래서 이 한국땅이 그리고 세계가 민들레 영토처럼 세상 모두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민들레영토라고 짓게 됐다.

또, 다른 사람들이 민들레영토를 줄여서 민토라고 하는데,영어로 민은 ''비천하다''는 뜻이고 토는 ''발''을 의미한다. 그래서 민토는 섬김과 배려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1994년도 신촌에서 10평으로 시작했다. 한달에 딱 50만원 저축할 수 있었다. 지금은 5천평이 넘었다. 일년에 다녀간 고객이 수백만명이다. 하지만 앞으로 3년이 지나면 방문객이 천 2백만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러고객들의 사랑과 건강한 공동체를 갈구하는 그런 문화적인 배경속에서 나름대로 성장했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면 착하고 베푸는 것은 서비스업종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논리가 팽배한 데 민들레영토는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새로운 시장, 새로운 비즈니스 어떻게 말하면 한국적 블루오션을 실천하지 않았나 그렇게 자부하고 있다.

지승용

 



12년전 신촌의 10평에서 지금은 5천평 매장에 천만명 안팎의 고객

IMF때 고객이 더 많이 왔다. 무려 2~30% 증원이 됐다.그 때 제게 들었던 생각이 민토는 내것이 아니고 내가 경영하는 것이 아니고 젊은이들의 것이였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카페가 되야된다고 생각했다.

제가 그때 울면서 6시간동안 기도했다. 우리 고객들인 젊은이들이 좌절하지 않게 해 달라고. 그러다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내 영역을 넓히라고 했다. 제가 안한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사업을 망하게 한다고 했다.그래서 넓히기가 두렵다고 했고 하나님께 그러면 조건을 들어달라고 기도했다. 하루에 3천명이 오도록 그런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대학로는 문화를 통해서 젊은이들의 마음을 기름지고 따뜻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바로 그곳에 민토가 있어서 다국적 외식업과 선의의 경쟁을 하고 이러한 에너지를 모아서 민족기업을 만들어서 세계에 나갈 수 있는 꿈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 대학로에 당당하게 입성했다.

대학로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달라진 것이 많다. 요즘 외식업소 시장이 엄청난 대 변화가 있다. 인구가 엄청나게 줄었다. 30년정도 지나면 천만명 인구가 빠져나간다. 문제는 젊은이들이 엄청나게 줄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민토할 때보다 지금 시장이 더 어렵다.

젊은이들이 많이 줄었다. 젊은이들이 자신감을 상실한 가운데 있다. 젊은이들 관점에서는 90년대가 젊은이들에게 좋았다. 무거운 어깨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 수많은 청년 군상들이 제 눈에 많이 보이고 있다. 이런 것을 바라보면서 긴장하게 되고 미션,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여하튼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하고 있고 힘들어하고 있다. 좌절감 속에서 보내고 있는 군상의 모습이 요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민토는 내것이 아닌 젊은이들 것"...성공비결, 감성과 감동 경영의 ''마더 마켓팅''

처음 제가 민토를 신촌에 열었을 때 가게들을 세봤다. 신촌에 가게가 1500개가 있었다. 1500대 1의 생존률이다.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면 고객이 그냥 온다고 생각한다. 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한달에 문닫는 외식없소가 3만개가 된다. 3만개가 모두 한 가정이다. 경제적 파멸이 되는 것이 현장의 모습이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요즘은 지식사회에서 문화사회로 바뀌었다. 문화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보보다도 감동, 만족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고객이 만족하고 감동하고 제가 표현하는 것으로 고객이 졸도해야한다. 고객이 이 상황에서 가슴깊이 느껴야하고 행복해하고 감동하는 마케팅을 중심으로 해서 지금까지 왔다. 이것이 로 ''머더 마케팅''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때 고객들이 감동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했다. 민토는 ''머더 마케팅''을 통해서 고객에게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을 통해서 민들레 영토가 성장한 것이 바로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처음 가게를 열때 주변에서 커지니까 민들레 영토의 라이벌이 신촌 연대앞에 있는 독수리다방이냐고. 또 요즘은 스타벅스?냐 하고 질문한다. 저는 처음 문을 여는 그날부터 라이벌을 선정했다. 그곳은 카이스트였다. 박사, 즉 닥터라는 말은 다크 어둠을 이긴다는 것이다. 요즘은 학위받고 끝난다. 하지만 카이스트는 공부하는 사람이 다시 공부하는 곳이다. 자연과학에서는 0.1밀리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데 인문학, 서비스는 너무 낙후돼 있었다.

제가 70년대 대학을 다녔는데 90년대 가게를 열었는데 세상에 제가 소개받은 책을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하고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그 교수님들이 60년대 공부하셨고 그 교수님을 가르친 교수님들은 1940년대 지식이거든요. 이건 안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지난 12년동안 계속 노력했다. 그래서 스타벅스는 에스프레스 커피를 전세계적으로 표준화 시켰다. 하지만 민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민토는 한 간판을 만들면 그것으로 끝난다.

경쟁상대는 카이스트?

민토

 

다른 곳에서는 새롭게 간판 만들고 새롭게 인테리어를 만든다. 앞으로 3년동안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니 비용은 많이 들었는데 실력은 늘었다. 여러가지들에 대한 노하우를 엄청나게 갖게 됐다.지금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상상하고 준비한 것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민토는 새로운 상황에서 마켓 아엔지(~ing).변하는 시장에서 끊임없이 잘 대응해서 장악하는 마케팅을 일구어내지 않을 까 한다.

2주전에 카이스트가서 강의했다. 카이스트안에 민들레 영토 개설을 검토하고 있다. 싸이월드가 감성이 붙었기에 성공했다. 자연과학이 성공하려면 감성과 휴머니즘이 붙을 때 자연과학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사람들은 우리를 절대 따라올 수 없다. 중국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도 자기에게 조공을 바쳐야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을 서비스하는 것은 우리를 따라올 수 없다. 한국은 이런 약점을 찾아서 나간다면 중국의 위협에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섬김과 서비스를 전문화하는 것이 국가경쟁력과 직결돼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정보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열린 생각이다. 나이가 들면 열린 생각을 못한다. 알고 있는 지식가지고 계속 써먹는다. 문화사에세 제일 중요한 것은 더운 가슴이다. 이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젊은이들이라고 본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만나야 하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져야하고 젊은이들이 베짱을 부릴 수 있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예쁘고 도전적인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간이 될 때 젊은이들이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

민토는 편하고 자유로운 열린 공간이기 때문에 젊은이들로부터 사랑받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 특별히 상업적인 시설이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토론하고 의견을 모으는 모습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민토에 대한 신뢰감과 비즈니스를 통해서 민주화, 세계화 실현할 수 있는 실험모델로 저를 선배로 생각하지 않나하고 감히 생각하고 있다.

중국 사천성과 미 워싱턴, LA에도 진출...바그다드 어린이를 위한 도서구입비 마련

{IMG:8}일단 올해 중국 사천성 성도시와 LA, 워싱턴에 민들레 영토가 세워진다. 대략 3년 지나면 상당한 규모의 역량있는 민토가 30개 정도 해외에 생길 수 있을것 같다. 워싱턴 민토를 세우면 적어도 그 이익의 상당부분을 바그다드 어린이를 위한 도서구입으로 쓸 것이다.

바그다드 어린이들을 위한 조그만 카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라크 어린이들을 생각한다면 화해와 일치의 공간으로 워싱턴에 자리잡으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캄보디아 선교사분이 민들레 영토를 세우고 싶어한다. 캄보디아가 부익부 빈익빈과 공무원 부패가 너무 심하다고 한다.

주류에 선교라는 모토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민토를 세우면 주류속에 들어갈 수 있고 주류에 들어가면 사회변화에 도움을 주는 적극적인 선교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다음달에 저를 만나기로 했다. 작

년부터 올해 코스타라는 해외 유학생 기독교 수양회에 다니면서 강연하면서 젊은이들을 만난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자신감을 잃고 있다. 조선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없을까하고 생각하며 민토가 새로운 선교도구로서 선교 모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난달 상해 집회에 갔는데 많은 선생님들이 이렇게 말했다. 이 많은 청소년들이 좌절하고 있다.

상해에 민토를 세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인들이 모여있는 외곽지대에 세우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제가 안된다고 했다. 상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신천지인데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그곳에 탁월한 서비스를 마련해서 상해사람들에게 세계인들을 감동하면 그곳에 놀러온 청소년들이 희망을 갖지 않겠는가?

상해에도 민토를 세우되 외곽이 아닌 삶의 한복판, 역사의 한복판, 비즈니스의 한복판에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저는 한국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해외진출 위해 스타벅스보다 더 맛잇는 ''오감커피'' 개발 준비

민토 대학로 본점

 

그렇다. 첫번째로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세계에 나갔을 때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 대한 인상이 부정적이며 상품적 가치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요즘 경제력이 조금 나아지니까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을 깔보는 것을 느낀다. 이런 의미에서 민토 브랜드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 솔직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대장금, 비 등 한류를 이끄는 것은 매우 희소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솔직히 민토가 가지고 있는 ''마더 마케팅''을 표준화시키기는 어렵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 그 정을 얼마나 느끼게 할 수 있을 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탁월한 제품을 개발해야한다. 그래서 지금 비장의 무기를 준비하고 있다. 스타벅스보다 더 맛있는 오감 커피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다섯가지 감각을 깨울 수 있는 특별한 커피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해외진출은 걸음마 단계다.

그렇지만 아기가 첫 걸음을 뗐을 때 주변에서 박수치고 격려해 주듯이 주위에서 격려해 준다면 해외진출이 먼 꿈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다.

"민들레영토의 궁국적 꿈은 하나님 나라 확장"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그것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어느날 버스를 탔는데 운전자분이 산타크로스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저는 그 분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산타크로스라고 느꼈다.

이처럼 단순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줄 수 있는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을 위해 일반인들을 위한 교회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의 문화, 문화의 사역지가 바로 민들레영토이지 않나.제가 생각하는 민토는 이런 것이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자금이 없어서, 지식이 없어서 어려운 일들을 겪었지만 2가지 크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신촌 본점 얘긴데. 신촌 본점이 시유지가 많았다. 2000년 시에서 민토를 강제 수용해서 관공시설을 짓겠다고 그랬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

국가가 지켜줘야하는데 그런 문화는 죽이고 이기적인 문화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관료문화를 보면서 속상했다. 두번째는 대학로 민토 별관인 이곳 건물을 짓고 나서 특별한 서비스를 했는데 지역 상인 일부가 견제를 했다. 이 지역에는 많은 권력이 모여있는 곳이다. 대표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압박했는 지 모른다. 2001년도 압박과 협박 등으로 해서 죽음 직전까지 몰린 적이 있었다.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냐 하면, 신촌 위기는 고민이 돼서 인터넷에 글을 썼다. 그 글을 보고 고객들이 뭉쳤다. 관공서 게시판에 항의 글 올리고 연대 총학생회에서 성명서 내고 한총련까지 성명을 내 주겠다고 해서 관공서가 결국 손을 들었다. 이때를 계기로 민들레영토를 사랑하는 모임 즉,민사모가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신촌 민토 시유지 수용위기도...연대 학생들 항의로 살아나

대학로 주변 상인들의 압박에 대해서는 당당히 맞서겠다고 솔직히 맞짱을 떴다. 그랬더니 권력을 가진 대표가 그렇다라면 조용히 가자고 이야기 해서 그 위기를 잘 넘었다. 그 두가지 일로 비결을 깨달았다. 고객 중심으로 두려워하지 말고 맞짱을 뜨면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민토가 가볍지는 않다. 언젠가는 솔직한 상황에 대해 말할 때가 있을 것이다. 권력의 아픔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목숨걸고 고객에게 투자하라"이다. 따라서 요즘 다들 어렵다고 하지만 내 사전에는 불경기가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활활 타오르는 불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고객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고 어머니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불경기가 에워싸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종업원들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이렇다. 나는 이렇게 열심인데 왜 종업원들을 그렇게 못하나하면서 차이가 생긴다. 그러다 그 차이에 대해 회식중에 깨달았다.회식을 하면서 종업원들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바니

 


"종업원들과 같이 간다"...목숨걸고 고객에 투자, 어머니가 자식 사랑하듯 해야 성공

어머님 아버님이 아픈 사람,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2군데 뛰면서 정말 어렵게 생활해 가는 것을 봤다. 아르바이트생들 90%가 가난했다.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참으로 많이 반성했다. 그래서 이 아이들과 끝까지 함께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웃고 출근해 묻는 방식을 바꿨다.

앞으로 5년지나면 한국은 비참해진다. 10년 지나면 한국은 거덜란다. 이대로 가면 세계속에서 가난한 국가로 들어간다. 현재 더운 가슴이 없다. 기성세대에 맡기면 안된다. 청년들이 역사의 주인이 되야한다.

두려워 말고 창업해야 한다. 그리고 비젼있는 회사에 가서 멋진 말을 하고 자신의 뜻을 크게 펼쳐야한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아야할 것은 청년은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을 쌓아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야한다.

주변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청년들, 역사의 주인공 되기 위해 책 많이 읽고 지식을 쌓아야

윤동주의 서시가 떠오른다. 윤동주 시인이 죽어가면서 했던말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그 말이 지금 이 순간 떠오른다. 현재 어찌보면 우리 주변은 모두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때 별을 노래하는 시인 윤동주처럼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는 감성도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서시의 뜻을 다시 한번 곰곰히 되새겨 봤으면 좋겠다.

지승룡 대표 프로필
민토 도우미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경신고등학교 교목과 청소년공동체 운영 등을 통해 청소년과 청년 사역자로 활동했다.

38세에 한 카페에서 쫓겨난 것을 계기로 청년민족 문화 카페를 꿈꾸며 19994년 신촌에 민들레영토를 창업했다.

노점상으로 모은 2,000만원으로 시작한 10평짜리 카페를 10년 만에 5,000평이 넘는 규모의 대형 문화 공간으로 발전시켰다.

현재 민들레영토는 국내 카페 브랜드 인지도 1위이며 국내 외식업소 고객 만족도 1위다.

저서로는 『민들레영토에 핀 사랑』과 『선배처럼 살아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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