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교수(중앙대 석좌교수)가 "문화일보와 인연을 끝내겠다"고 발표해 언론계 안팎이 떠들썩하다.
김용옥 교수는 29일 오전 10시30분경 문화일보로부터 고정칼럼인 ''도올고성''을 싣지 못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후 오후 4시30분 중앙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김 교수는 매주 월요일 문화일보에 ''도올고성''이라는 타이틀의 기명칼럼을 실어왔고, 29일 탄핵 반대입장을 담은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기사 아래 참조)라는 제목의 글을 써보냈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헌재의 판결을 조용히 기다리라는 모든 감언이설의 배면에 망나니도끼에 대한 기대와 암약이 도사리고 있다면 조선의 민중은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고 전제한 뒤 "탄핵정국이 근원적으로 우리사회의 정의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분노를 수그러뜨리면 안된다"며 "바로 이 시각 우리 민중의 함성! 그것 이상의 헌법은 없다. 우리는 헌법을 새롭게 써야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화일보는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공정보도원칙에 따라 싣기 어렵다"며 김 교수에게 게재불가 방침을 전달했다.
김 교수는 기자회견 전 돌린 보도자료에서 "긴박한 시국에서 한 사상가의 양심의 논리는 국민들이 시국을 바라보는 하나의 해석의 관점을 제시하며, 그 논리는 침묵할 수는 있을 지언정 추호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뗀 뒤 "그동안 문화일보사가 저의 붓의 세계를 사랑해주고 보호해준 것에 감사드리며 오늘로서 문화일보와의 모든 인연이 단절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고 문화일보의 게재 거부에 대한 입장을 알렸다.
이어 김 교수는 오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화일보 게재 거부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과 탄핵정국에 대한 의견, 그리고 현재 방송중인 MBC <도올특강>에 대한 의견 등을 밝혔다.
김 교수는 이날 저녁 미디어오늘과의 전화통화에서 "마감 30분전인 오전 10시 30분에 편집국장으로부터 게재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를 데려온 사장(김정국 사장)이 그만두고 새 사장(이병규 사장)이 와서 이런 결정이 난 것 같아 사장을 직접 찾아가 사장에게 국장이 말한 보도원칙에 대해 물었고, 사장은 공정보도에 관한 의견을 편집국에 전달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해주었다.
그래서 원인을 제공한 사장에게 ''그럼 나가라는 거냐, 아니면 실을 거냐''고 물었고 사장이 싣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나에게 사표를 내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여 이 시점 이후 문화일보와 나와의 모든 인연은 끝이라고 사장에게 전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2002년 12월부터 3000매 분량의 원고를 써오면서 한번도 내 글을 고치지 않았는데 이번 글에 대해 편집국장이 ''한쪽의 치우치지 않는 공정보도 원칙이 세워졌다''며 타협의 여지없이 내 글을 거부했고, 국장에게 고칠 수도 있다는 의사를 전했으나 지난 두 주 동안 너무 시달렸다며 게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문화일보측은 게재 불가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화일보 김종호 편집국장은 "도올 선생의 글은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고, 지금의 헌법은 중요하지 않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지나치게 너무 한쪽에 치우쳤다. 앞의 두 글 (15일, 22일 칼럼)은 항의는 예상했으나 그 정도는 수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실었지만 이번 글은 더 강한 메시지로 되어 있어 싣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도올 선생이 수정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수정이라는 것은 약간의 표현을 고치는 것으로 그 글에 수정을 요구할 생각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사장 이후 편집 변화 조심스런 전망 김 교수는 탄핵안이 가결된 후인 지난 15일과 22일 쓴 두 편의 글 <젊은이들이여, 거리로 나가라!>와 <이 땅의 명운을 새롭게 할 때다>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강조했다. 지난 두 편의 글의 연장선상에서 29일 실릴 예정이었던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은 탄핵반대 3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문화일보 내부의 시선은 김 교수의 글이 지나치게 선동적이었다는 지적부터 문화일보 논조가 변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다양하다.
편집국 기자들은 15일자 22일자 칼럼에 대해 "도올 선생이 기자로 일하면서 이슈에 대해 긴밀한 협의가 있었지만 지난해 가을 명예논필이 된 이후로 문화일보와 도올 선생과 격조해진 측면이 있다.
문화일보가 오랫동안 도올 선생의 주장을 배려해 주었는데 이번 글은 책임있는 학자로서 쓸 글이 아닌 것 같다"(편집국 A기자) "논리적인 설득력도 부족하고 지나치게 선동적이다"(편집국 B기자) "이번 글은 안 봐서 모르지만 이전 두 글을 봤을 때 호불호는 있을 지언정 칼럼으로써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본다" (편집국 C기자) "문화일보의 강점은 다양한 어조인데 이것이 사라지게 되어 아쉽다"(편집국 D기자) 등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문화일보가 김 교수를 간판스타로 내세웠다는 점과 김 교수를 위해 ''명예논필''이라는 새로운 자리를 만드는 등 극진한 대접을 해온 것을 감안할 때 새 사장의 취임에 따른 편집방향의 변화라는 의견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편집국의 한 기자는 "사장이 취임사에서 문화일보의 정체성과 통일성을 강조한 바 있는데, 새 사장 취임 후 전체적인 분위기가 보수적으로 바뀌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김 교수의 거칠 것 없는 토로는 보수진영에서 보면 선동일 수 있으나 신문에서 보면 파격인 것만은 분명하고 김 교수만의 강점으로 평가돼왔다. 물론 총선 정국이라 민감한 부분도 있겠지만 사장이 바뀐 후 이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15일과 22일 글이 실렸을 당시 글의 논조에 대해 기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었고, 22일 글에 대해 표현상의 문제로 일부 단어에 대해 수정을 요구한 바 있었으나 김 교수의 글과 관련해 문화일보내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된 적은 없었다.
김 교수는 "편집국내에서 내 글에 대해 한번도 지적하지 않았다. 국장이 지난 두 주 동안 너무 시달렸다고 말했는데 만일 그랬다면 나한테 미리 상의를 했었어야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김 교수는 또 "지난 주 사장이 바뀌면서 치우침 없는 편집을 표방 한 후 내 글이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은 걸고 알고 있다" 며 "기사는 기본적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고, 치우치지 않는 공정보도란 치우칠 수밖에 없는 보도를 공정하게 싣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종호 편집국장은 "당연히 도올 선생이 (항의가 들어 올 것이라는 것을) 알 거라 생각해 말하지 않았다. 도올 선생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알리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국장은 게재 거부를 새 사장 취임과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향후 문화일보와의 관계 김 교수가 기자회견을 열어 문화일보와의 절연의사를 강하게 표시함에 따라 문화일보와 김 교수와의 각별했던 관계는 끝이 날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2002년 12월부터 문화일보 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해 2003년 9월 사표를 낸 이후에도 명예논필로 활동해오면서 문화일보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
김 교수는 이후 문화일보와의 관계에 대해 "이 시대가 나의 글을 요청하기 때문에 과거 나의 분위기를 100% 유지시켜 준다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으나 현재의 경영진으로서는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김종호 편집국장도 "단순히 어제 칼럼 하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화해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며 "그러나 도올 선생이 어제처럼 글을 쓰면 앞으로도 게재가 어렵다고 본다. 다른 글을 써주면 고마울 것 같다"고 말해 실제 연재가 재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오늘 이선민 기자 jasmin@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