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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스포츠레터]美 기자의 당부 "내 '김연아' 기사 꼭 읽으세요"



스포츠일반

    [임종률의 스포츠레터]美 기자의 당부 "내 '김연아' 기사 꼭 읽으세요"

    '자랑스러운 유나 킴!' 일본 재팬 타임스의 잭 갤러거 기자는 소치올림픽이 끝나더라도 김연아와 관련한 자신의 기사를 꼭 읽어보라고 당부했다. 사진은 김연아가 21일(한국 시각) 소치올림픽 프리스케이팅 경기와 시상식까지 마친 뒤 태극기를 들고 관중 환호에 답하는 모습.(소치=대한체육회)

     

    소치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열정을 쏟아부었던 선수들도 금의환향해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전국동계체전을 위해 쉬지도 못하고 다시 땀을 쏟고 있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역만리 아라사(俄羅斯, 러시아의 음역어)를 떠나 고국 땅을 밟았습니다.

    저 역시 25일 귀국했습니다. 선수단보다 2시간 늦은 비행 편이라 그들의 입국 현장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기사들을 통해 뜨거웠던 환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여장을 풀고, 회사에 복귀 신고를 하고, 시차 적응으로 비몽사몽하는 사이에 이틀이 지났습니다.

    이제 막 정신이 들 즈음, 잊고 있던 한 외신 기자의 당부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일본 영자 신문 '재팬 타임스'의 잭 갤러거 기자로 나중에라도 꼭 자신의 기사를 봐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18일 만의 재회' 美 기자 "내 기사 읽어주소"

    애초 갤러거는 소치올림픽 취재진 숙소(미디어 빌리지) '입소 동기'였습니다. 현지 시각 5일 새벽 4시 소치 공항에 입국해 함께 미디어 숙소 프런트에서 방 배정을 기다리던 동지였습니다. 1시간 넘게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같은 건물 같은 층 바로 옆방에 입주했던, 나름 인연이 있던 사이였습니다.

    올림픽에 앞서 갤러거는 김연아의 올림픽 금메달 가능성을 85~90%로 본다는 내용의 기사로 일부 국내 팬들에게도 알려진 기자였습니다. 입주를 기다리면서도 갤러거는 "이변이 없는 한 김연아가 우승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피겨 담당 기자로서 일부 극성 팬들의 이메일 공격에 시달린다는 동병상련의 애환을 나누기도 했습니다.(CBS노컷뉴스 6일자 '美 기자 "김연아 칭찬하면 日 팬들이 공격"' 기사 참조)

    지리한 기다림 끝에 둘은 함께 입주했습니다. 그러나 갤러거는 미처 준비해오지 못한 샴푸 등을 사야 하는데 러시아 통화(루블)가 없어 환전을 해야 한다며 곧바로 메인프레스센터(MPC)로 향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올림픽 막판 재회할 때까지 갤러거와 마지막 인사가 될지는 몰랐습니다. 이후 시설이 열악해 제가 방을 바꿔야 했기 때문입니다.(CBS노컷뉴스 7일자 '[임종률의 소치 레터]'변기물이 펄펄' 54조 원, 대체 어디로 갔나요?' 기사 참조)

    이후 갤러거와는 마주칠 일이 없었습니다. 워낙 많은 기자들이 오가는 데다 서로 취재 동선이 달랐던 겁니다. 그러다 갤러거와 해후한 것은 거의 올림픽이 다 끝나갈 즈음이었습니다. 여자 싱글까지 피겨 경기가 마무리된 이후 펼쳐진 23일 갈라쇼가 끝난 뒤 경기장 엘리베이터 앞이었습니다.

    갤러거는 반갑게 악수를 나누면서 자신의 발언이 실린 6일자 제 기사를 봤다고 하더군요. 이어 "나도 김연아에 대한 기사를 썼다"면서 "나중에라도 꼭 일독을 권한다"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그동안 고생했다"면서 작별의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후 기사 작성과 귀국 준비로 바빠 미처 갤러거의 기사를 보진 못했습니다.

    ▲"김연아 금메달 도둑 맞았다…IOC 직무 유기"

    '이게 가당키나 한 장면인가요?' 김연아가 21일 소치올림픽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마친 뒤 금메달리스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동메달리스트 카롤리나 코스트너(왼쪽부터)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모습.(소치=대한체육회)

     

    귀국 이틀이 지나서야 재팬타임스 홈페이지로 들어가 갤러거의 기사를 보니 그 당부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피겨 여자 싱글 결과의 부당함을 역설한 내용이었습니다.

    일단 프리스케이팅 결과가 나온 21일 기사는 제목부터 강렬한 비판 논조가 묻어났습니다. '가증스러운 결과, 심판들이 김연아의 우승 타이틀을 훔쳐 소트니코바에 줬다(Scandalous outcome: Skating judges steal Kim’s title, hand it to Sotnikova)'는 제목이었습니다.

    첫 문장 역시 "김연아가 목요일 밤 도둑 맞았다"였습니다.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도 석연찮은 판정에 개최국 러시아의 홈 이점을 업은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내줘야 했던 김연아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전했습니다. 이후 기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도 적시한 갤러거 기사의 마지막은 "김연아는 놀라운 노력으로 진정한 챔피언의 정신을 연기했지만 다음에 벌어진 일은 지독한 불명예(a damn shame)였다"며 어이없는 판정을 꼬집었습니다.

    갤러거는 22일자에도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 무산에 대한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Controversy rages on after Kim denied second Olympic gold)'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24일자에도 '피겨 스캔들을 낳은 (판정) 실패에 대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직무 유기'라는 제목의 기사로 IOC를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그 기사의 마지막 한 마디가 상황을 정확하게 요약하더군요. "Outrageous."

    '분노의 기사' 잭 갤러거 기자가 소치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과 관련해 판정의 부당함을 역설한 기사들.(사진=재팬타임스 홈페이지)

     

    사실 갤러거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이지만 일본에서만 2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일본 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일본 간판 스타 아사다 마오보다 김연아의 우승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등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기자입니다. 실제로 이번 올림픽에서 결과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런 갤러거의 기사는 소치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 누가 진정한 챔피언인지를 생생하게 알려주는 객관적인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저에게 기사를 읽어보라고 신신당부한 한 갤러거의 진정성이 이제야 새삼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p.s-경황이 없어 미처 갤러거의 사진을 담지는 못했습니다. 동양인 기자에 대한 경험이 많은 듯 행여 자신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다소 느린 어조와 정확한 발음으로 저를 배려해줬던 친절한 미국 신사였습니다. 나중에라도 이 기사를 본다면 다시 한번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머리 숱이 별로 없어 중절모를 쓰면서도 샴푸는 챙겼던 갤러거, 효과 좋은 우리의 한방 샴푸를 꼭 선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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