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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노점 때려 부순 용역…알고보니 같은 반 친구



사건/사고

    엄마 노점 때려 부순 용역…알고보니 같은 반 친구

    강제 철거 않는다더니…구청의 크리스마스 선물 '강제 철거'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자료사진)

     

    "빨리 와서 노점 마차 좀 가져가".

    엄마는 숨이 넘어가는 듯 했다.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온 건 지난 24일 오전 7시쯤.

    15년 만에 새로 장만한 포장마차를 설치하느라 크리스마스에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던 엄마였다. 수화기 너머 고성과 비명 소리가 들렸다.

    잠옷도 안 갈아입고 엄마의 일터, 노원구 하계역 앞으로 뛰어나갔다. 시커먼 옷을 갖춰 입은 200여 명의 용역이 노점 일대를 에워싸고 마차를 압수하고 있었다. 이를 말리는 노점 상인들은 젊은 용역들에 힘없이 짓밟혔다.

    이 과정에서 마차는 부서지고 깨졌고, 노점 상인들은 넘어지고 내동댕이쳐졌다. 엄마도 있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출근시간대,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지하철역 앞에서 이런 폭압이, 우리 가족에게 벌어지고 있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았다.

    ◈ 크리스마스 선물은 '강제 철거'

    내 나이 열여덟. 태어난 지 세 살이 되던 해부터 엄마는 하계역 앞에서 떡볶이와 김밥 등을 팔았다.

    엄마의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친구들을 데려와 "엄마 떡볶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나를 위해서, 우리 가족을 위해서 날이 춥든 덥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한결같이 일하던 엄마였다.

    일을 처음 시작하던 15년 전에 비해 물가는 3배 올랐지만 엄마의 떡볶이 값은 그대로였다. 값을 올리면 손님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우는 소리를 하면서도 "집에 있으면 뭐하냐"며 웃으며 나가던 엄마였다.

    그렇게 열심히 살던 엄마에게 돌아온 건 '강제 철거'였다. 감당하기 힘든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 "절대로 노점 강제 철거하지 않겠다"며 구민들 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던 구청장은 당선된 뒤 180도 달라졌다. 노점 강제 철거에 나선 것이다.

    구청장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는 노점상인들과 타협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기를 2년 6개월. "이렇게 상인들 얘기 들어주는 구청장도 없다"며 "더이상 봐줄 수 없다"는 노선을 폈다.

    노점상 실태조사를 벌여 4인 가족 기준 2억 4000만 원 이하일 경우에만 생계형 노점으로 인정해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방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노점을 없애려는 구청의 '꼼수'에 불과했다.

    노점상인이 트럭이라도 몰면 전부 재산으로 포함돼 생계형 기준을 초과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노점상더러 옮겨가라며 구청이 배치해 준 자리는 모두 사람들 인적이 드문 이면도로였다. 이런 식으로 종로 노점상들이 대부분 망했다.

    또 실태주소를 위해 실명은 물론 거주지, 금융동의서까지 내라는 것도 노점상들을 불안케했다. 그래서 거부했다. 엄마도 거부하고 이웃 아저씨 아줌마들도 모두 거부했다.

    대신 노점상인들은 구청측과 타협점을 찾으려 했다. 노점때문에 시민 통행이 불편하다길래 기존 마차보다 절반 크기의 마차로 바꿨다. 새 마차를 마련할 돈도 없어 주변서 빌려 겨우 마련했다.

    하지만 그렇게 거리에 놓인 새 마차는, 손님 한 명 맞아보지도 못하고 용역 손에 빼앗겼다.

    최근 노점상인들과 시민단체, 구의원 그리고 구청장이 모인 송년회 자리에서 기분 좋게 "강제 철거 하지 않겠다"던 구청장의 약속도 결국 거짓이었다.

    노점단속규탄 빈민생존권 쟁취 결의대회(자료사진)

     

    ◈ 엄마 노점 때려 부순 용역…알고보니 같은 반 친구

    엄마는 주저앉아 "마차, 마차"만 부르짖고 있었다. 참다못해 '우리 마차'를 가져오려 하자 앞이 막혔다. 용역이었다.

    아니, 용역 옷을 입은 친구였다. 동갑에,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였다. 엄마가 땅에 주저앉아 '마차'를 부르짖으며 우는 상황보다 더 기막힌 상황이었다.

    그렇게 마주한 우리는 그대로 멈췄다. 여기서 뭐하냐는 질문에, "알바…" 친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친구는 이런 일인지 모르고 왔단다. 그저 시급 많이 준다고 해서 '알바'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둘이 멍하게 서있자 팀장으로 보이는 용역이 왔다. 팀장은 다짜고짜 "왜 얘한테 시비를 거냐"며 내게 화를 냈다.

    "저 못하겠어요" 쭈뼛대며 친구는 말했다. 팀장도 상황이 어이가 없었나보다. "정말 친구 맞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투덜거리며 친구를 데려갔다.

    엄마는 "당시 강제 철거에 투입됐던 용역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등학생이었다"고 주장했다.

    마차를 압수하는 동안 엄마를 벽에 몰아붙이던 여성 용역들이, 엄마와 승강이 도중 모자가 벗겨져 얼굴이 드러났는데 상당히 앳됐다는 것.

    그들은 "너희 고등학생이지?" 묻는 질문에, 고개를 푹 숙이고 달아났다.

    이에 대해 구청은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구는 이날 투입된 용역업체 직원의 명단을 제출받아 확인한 결과 "고등학생은 없었다"고 전면 반박했다. 오히려 "노점상인들의 자작극"이라고 핏대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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