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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률 70%의 꿈' 무모한 숫자놀음



취업/직장인

    '고용률 70%의 꿈' 무모한 숫자놀음

    박근혜식 일자리 정책의 허상

     

    '좋은 일자리는 늘리고, 현재의 일자리는 지켜주며, 나쁜 일자리의 질은 끌어올린다.' 이보다 멋진 일자리 정책이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일자리 정책 '늘ㆍ지ㆍ오'가 나름 기대를 모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고용률 70% 로드맵'이었다. 이 정부, 벌써 숫자놀음에 빠진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생각보다 훌륭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전제가 있었다. '실천을 어떻게 하느냐'였다. '일자리 창출 공약'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자리를 늘리는 건 좋은데, 구체적 실천방안이 무어냐는 논란은 박 대통령 집권 6개월 동안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가 그 답을 올 6월초 내놨다. '고용률 70% 로드맵'이 그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기간 그렇게 강조했던 '늘ㆍ지ㆍ오(일자리는 늘리고, 기존의 일자리 지키며, 일자리 질을 올리겠다는 것)'는 은근슬쩍 사라졌다. 단순히 고용률만 늘리는 '일자리 정책'만 가득했다. 기본구상은 이렇다. '노동시간은 줄이고, 임금도 줄이며, 창업을 유도한다.' 이는 곧 시간제 일자리만 양산해 고용률이 높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박 대통령이 '숫자놀음'을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로드맵에 공약내용이 없다고 공약 자체가 사라졌다고 속단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번 로드맵에 정부가 일자리 정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룰 부분을 담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균형 잡힌 일자리 정책추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법도 하다.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 해법으로 여성인력 활용과 노동시간 단축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2017년 임기 말까지 238만개의 일자리(연 47만6000개)를 창출한다는 거다. 로드맵의 세부내용은 총 4가지다. 첫째는 창조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창업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직업을 발굴하겠다는 거다. 둘째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이다. 유연한 노동문화를 통해 해법을 찾겠다는 구상이다. 셋째는 남성가장 중심의 노동시장에 여성과 청년, 중장년층의 진입시키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일자리 질을 고려한 차별해소와 특수형태업무종사자에 대한 지원 강화다. 파견직노동자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지원 방안이 포함돼 있다.

     

    이번 로드맵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것은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방안이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은 "2010년 기준으로 연평균 2193시간에 달하는 한국의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749시간으로 줄이고, 감소한 노동시간의 30%(50%)만큼을 일자리로 전환하면 98만개(169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구상이 긍정적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으로 생기는 인력공백을 '시간제 일자리'로 채우려 한다는 점이다. 일자리의 질 하락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 또한 의문이다. 비정규직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한국 노동시장에서 시간제 일자리 앞에 '양질'이라는 콘셉트가 붙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시간제 일자리를 고집하다 보면 질 낮은 고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며 "임금이 적어도 생계유지가 가능한 안전망을 갖추고, 노동자 스스로 자발적인 선택이 가능해야 시간제 일자리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꿈'

     

    이병훈 중앙대(사회학) 교수는 "숫자를 채워 성과를 내려 하는 것 같다"며 "노동시장에 활력을 주고 고용률을 높이겠다는 데 이의는 없지만 얼마나 효과적이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병훈 교수는 "시간제 일자리로 고용률이 낮은 여성인력을 유인하겠다는 건데, 노동시장이 얼어붙은 건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아서다"며 "구직자가 임의대로 풀타임과 파트타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네덜란드 같은 시스템이 아니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주장대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되려면 구직자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정규직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 교수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파트타임 4시간을 하라고 하면 얼마나 호응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한창 진행 중인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사례만 봐도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게 금방 드러난다. 정부가 '정규직'이라고 주장하는 일자리조차 질 문제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박 대통령은 공약을 통해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9월 5일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교육부 등 관계 부처는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 등 공공기관 810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 25만1000여명 중 6만5711명을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노동계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비판한다. 정부가 말하는 정규직 전환은 진짜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무기계약직은 기간의 제한 없이 정년을 보장하는 근로계약직으로 사실상 정규직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은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동일업무 동일처우' 원칙에는 어긋난다. 일단 보수 수준이 다르고, 복리후생도 다르다. 단지 단기계약직에 비해 고용안정성이 조금 높은 게 전부다. 공공부문 비정규 연대회의가 성명서를 통해 "정부는 고용 보장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며 "정규직과의 격차를 양산하는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정부의 정규직 전환은 '무기한 비정규직' 양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의 김가람 보좌관(노동정책)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정책에 대해 "2015년까지 6만5711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전체(25만1000명)의 26%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비정규직을 구제하는 정책은 없다"고 지적했다.

     

    김가람 보좌관은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간 차별금지 지침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 임금은 20~40%까지 차이난다"며 "국책연구기관의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절반가량 임금이 적다"고 말했다. 김 보좌관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정규직이 양산되지 않도록 입구를 막고 출구를 열어놔야 하는데, 거꾸로 입구는 열고 출구는 막아놓은 격"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정부의 정규직 전환은 대기업들의 정규직 전환 분위기를 유도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은 정부정책에 마지못해 동참하는 수준이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거다. 그러다보니 부작용만 양산되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바람에 직접고용이 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 정책은 단순히 정권이 끝날 무렵 고용률만 늘리면 되는 게 아니라 기존 일자리 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앞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또 다른 일자리 창출정책인 '스마트 뉴딜정책'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스마트 뉴딜은 세계 최고수준의 국내 정보통신기술(ICT)을 산업 전반에 적용ㆍ활용ㆍ융합해서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창조경제를 통해 고용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7월 초에는 전국 규모의 산학연계 ICT모임 '창조경제 위한 스마트뉴딜 실천연합(창실련)'이 출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마트 뉴딜은 국민의 정부 시절의 '사이버 코리아21'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이버 코리아 21도 다양한 산업 분야에 IT기술을 접목해 고부가가치 창출함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을 꾀했던 정책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두고 '참조경제'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중요한 건 성공적인 정책을 베끼면 상관없겠지만, 이 정책은 IT와 벤처에 대한 환상과 거품이 빠지면서 실패로 끝났다.

     

    일자리 정책의 생사가 정부보조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있다. 올해 4월 통과된 정년 60세 연장법이 그런 경우다. 정년연장은 보장됐지만 기업들은 시행을 꺼린다. 정년 연장으로 기업은 퇴직을 앞둔 인력을 비싼 연봉을 주고 몇년 더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들이 주장하는 게 임금피크제다. 정년을 연장하는 만큼 연봉을 깎겠다는 것이다. 연봉이 깎이는 입장에선 좋을 리 없다. 그러자 정부가 내놓은 대안은 보조금이다.

    돈 쏟아 붓는 일자리 정책

    현행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최고 임금보다 20% 이상 줄어든 임금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최대 10년간 연간 최대 6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당연히 정부보조금 없이 정년연장을 할 기업은 없다. 그러다 보니 정년 연장 이후 임금피크제 수용 여부를 두고 노사가 갈등을 빚는 상황이 많은 기업에서 연출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용부는 한발 더 나아가 임금피크제 지원을 강화하는 고용연장지원제도 개선방안을 9월 안에 내놓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면 연간 지원금 최대 규모는 1인당 200만원이 늘어난 800만원이 될 전망이다. 일부 지원요건도 완화할 예정이다. 정부보조금으로 고용률만 높이면 그만이라는 모양새다.

    고용재난지역 선포에 관한 공약도 마찬가지다. 이 공약은 대기업 또는 특정 업종에서 대규모 정리해고 발생했을 때 해당 지역을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정부가 특별예산지원을 통해 정리해고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면 기존 고용보험과 지자체 예산, 정부 재정지원을 집중 투입해 정리해고자의 생활비ㆍ재취업을 지원을 하겠다는 게 요지다.

     

    문제는 기업의 책임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다는 거다. 때문에 이 공약이 효과를 내려면 '정리해고 요건강화법'이 통과돼야 한다. 정리해고 요건을 법으로 강화했음에도 대규모 구조조정 사태가 터지면 세금으로 (정리해고자를) 지원하고, 법을 통해 기업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발의한 정리해고 요건강화 법안은 수개월 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원칙 없는 정책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정책 또한 흔들려서다. 박근혜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칙이 분명하지 않아서다. 고용률 70% 로드맵에 '원칙'과 '철학'부터 심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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