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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챙긴 자, 헐벗은 자, 죽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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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 챙긴 자, 헐벗은 자, 죽은 자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단군 이래 최대의 사업이라던 용산 국제업무지구개발 사업이 시작도 못하고 6년 만에 끝을 맺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최대주주이자 땅 주인인 코레일과 민간출자회사들이 얽히고 설킨 문제들을 풀지 못해 싸움만 거듭해 오다 결국 두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코레일이 시행사인 드림허브에 팔았던 땅을 되찾아 등기를 끝내면 드림허브는 사업자로서의 법적인 지위가 없어지고 시행사 없는 사업은 삽질 한 번 못해 보고 사라진다.

    ◈용산개발… 죽은 자, 헐벗은 자, 챙긴 자만 남아

    총 사업비 31조원에 이르는 거국적 사업이 이리 허무하게 사라진다. 엄청난 피해와 후유증을 남긴 사업이지만 소득을 올린 곳도 있다. 바로 서울시. 서울시는 개발사업 과정에서 취득세만 4,353억 원, 재산세 329억 원, 법인등록세 100억 원 등을 챙긴 것으로 추산된다.

    철도기지창 부지로 갖고 있던 땅을 코레일에서 사업 시행사인 '드림허브'로 이전하면서 취득세, 사업이 파산에 이르러 코레일이 땅을 되찾아오는 과정에서 또 취득세. 삽질은 못했어도 땅을 갖고 있었으니 계속해서 재산세, 회사를 세웠으니 법인세 ... 서울시만 수익을 올린 건 아니다. 정부도 종합부동산세 640억 원을 챙겼다.

    코레일로서는 사업을 해 돈을 번 것도 아니고 부동산을 사는 것도 아니고 되가져오는 건데 취득세를 또 내자니 속이 쓰릴 건 당연. 취득세를 내지 않으려면 그 땅을 1년 이내에 철도시설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사업이 망하면서 네 탓 내 탓 민사재판이 줄지어 늘어설 텐데 법원 판결 전까지 땅은 묶이게 되고 새로운 개발은 불가하다. 결국 세율을 조정하더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윤성호 기자)

     

    코레일로서는 사업 무산 이후 5조5천8백억 원 어치의 토지 소유권을 되찾아오는 데만 취득세 2,162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기차길 깔고 열차 운행하는데도 적자가 산처럼 쌓인 마당에 딱한 일이다. 서울시도 아쉽다고 주장 할 건 있다. 사업이 제대로만 됐으면 토지분양과정에서 줄줄이 취득세 거두고 땅값이 올랐으니 재산세도 엄청 걷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기관들은 그렇다 치고 이제 남은 사람들이 문제다. 재산권이 묶여 손해 본 사람들, 개발사업 기다리느라 빚내며 버텨 본 사람들, 용산서 쫓겨난 세입자들, 개발사업에 합류해 보려고 돈 빌려 쓴 사람들, 빚더미만 커지는 코레일 먹여 살리려 철도요금 인상을 기다려야하는 국민이 남았다. 떠나버린 사람들도 있다. 4년 전인 2009년 1월 20일에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 6명과 경찰관 1명은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

    ◈서러운 땅, 용산은 누구의 것인가

    용산은 커다란 강항江港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방방곡곡의 산물들이 한강을 통해 서울로 들어왔다. 용산, 마포, 서강이 주요 나루터였고 그 중에 용산은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실어와 부리던 곳이다.

    또 수도인 서울을 지키는데 한강변에 위치한 용산은 요충지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진을 쳤고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다. 1894년 동학군 토벌에 나선 일본군도 용산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러일전쟁을 치르고 나서 일본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한국주차군이라는 일본군 사단을 주둔시키는데 그 사령부가 용산에 있었다. 러일전쟁을 치르면서 군사물자 수송이 중요해지자 일본은 용산 일대 300만 평을 군용지로 수용해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뒤 군사시설 지역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용산은 철도기지로 자리를 굳힌다.

    {RELNEWS:right}주한 미군의 지휘부가 자리한 곳 역시 용산이었다. 미군이 자리잡은 용산과 이태원 일대에는 위안부 기지촌이 들어서고, PX 물건들이 쌓이며 시장이 형성되고, 미8군 문화에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싹을 틔우기도 했다.

    일본군도 떠났고 미군도 떠난 용산은 누구의 땅이 되었을까? 그 뒤를 이어 용산을 탐낸 사람들은 게걸스런 개발업자들이다. 그리고 공공기관도 숟가락을 얹으려 나섰다. 2007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한강과 서부이촌동을 용산사업 부지에 포함시킨 ‘한강 르네상스’ 계획을 내놨다. 금방이라도 서울이 세계 최고의 명품도시로 탈바꿈할 듯한 엄청난 프로젝트를 내놨지만 그것은 누구를 위한 꿈이었을까?

    하루 하루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서민 중에 용산개발로 덕을 볼 사람은 애당초 없었다. 용산은 힘과 돈을 가진 사람들의 수중에 있었을 뿐 우리 국민으로부터는 멀기만 한 땅이었iu다. 21세기 들어 금권력은 또 한 번 용산 땅에서 사람들을 몰아내고 아픔만 남겼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렇게 간언했다고 한다.

    "신이 생각건대 땅에는 오직 두 사람의 주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요, 다른 하나는 그 땅에서 땀 흘려 일하는 농부입니다."

    이제라도 용산은 국민을 주인으로 한 새 역사를 시작해야 한다. 이 땅을 국민에게 온전하게 돌려주는 방책이 뭔가를 함께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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