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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리산…연하선경을 아시나요?



여행/레저

    아! 지리산…연하선경을 아시나요?

     

    지리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설레게 하는 산. 첫사랑에 빠진 처녀의 새뜻함이 배어 있는 산.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한 산. 우리 민족의 정기와 설움, 한(恨)을 송두리째 품고 있는 산. 지리산을 어찌 말로 형언할 수 있으랴? 감히 그 누가 지리산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일생에 한 번만 올라도 그 가슴 뿌듯함에 감격해 하는 산을 꼭 10년 만에 찾았다.

    지난 10년 전 까지만 해도 성삼재에서 산행을 시작해 노고단, 연하천산장, 벽소령, 세석산장, 장터목산장, 제석봉을 거쳐 천왕봉(1,915m)을 올랐으나 이번엔 경남 산청군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바로 올라 장터목과 세석산장, 벽소령, 연하천, 삼도봉, 임걸령, 노고단으로 역진을 했다.

    성삼재-천왕봉 코스보다 두 배가 힘들다는 중산리-천왕봉-노고단 코스를 택한 건 백두대간 제1구간을 제 발로 밟아보며 가슴으로, 눈으로, 몸으로 지리산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연간 수만 명이 찾는 지리산은 10년이 지난 작금에도 여전했다. 아니 수백 년, 수천 년전 에도 그 장대하고 수려한 산세는 다르지 않았으리라. 다만 등산로만 정비돼 있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경남 진주행 심야 고속버스(7월 25일 밤 12시)를 타고 산청군 원지(25일 새벽 3시 10분쯤)에 내리자마자 택시는 기다렸다는 듯 초행길(중산리 출발 등정은 처음)에다 10년 만의 지리산 종주, 그리고 어두움이 주는 두려움이라는 산객의 마음은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낚아채듯이 싣고 중산리로 내달렸다.

    어찌나 속도를 내던지 "좀 천천해 가시면 안 됩니까?"라고 물으니 알았다는 택시 기사의 말은 곧바로 공염불이 된 듯 다시 쏜살같은 속도로 쌩~쌩이다. 택시 기사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리라.

    그렇게 산객은 중산리 지리산 탐방안내소 앞에 떨어뜨려졌다.

    새벽 3시 50분. 이 시간에 중산리를 통해 천왕봉을 찾는 산객은 단 한 사람 빼고 아무도 없었다. 어둠이 사위를 적시고 있어 약간의 어두움에서 오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10년 만의 지리산 종주산행은 중산리 들머리에서부터 산객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다. 중산리에서 천왕봉까지의 거리는 5.4㎞로 다른 코스에 비해 좀 짧지만 가파르기로 유명하고 새벽 산행이 처음인지라 내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 홀로 산행을 즐기는 스타일일지라도 처음 가는 코스인데다 천왕봉을 오르는 데 체력을 소진해버리면 오늘 안에 어떻게 종주를 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우려가 뇌리를 복잡하게 했다.

    초반 페이스를 잘 유지하자는 다짐을 하고 한 발 한 발 천왕봉행 등산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새벽 4시쯤 풀벌레 소리와 계곡물 소리를 벗 삼아 가슴 뛰었던 지리산 산행을 시작한 것이다.

    내가 여기 있음을 주위에 알리고자, 아니 홀로 산행의 외로움과 무서움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호루라기를 한 번씩 불어 내 존재를 주위에 각인시켰다.

    물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혹시라도 모를 멧돼지와 방사한 곰의 출현을 의식한 다분히 좀 과장된 행위이리라. 새벽잠에 취해 있을 야생 동·식물들에겐 참으로 이기적인 행동임을 미안해하며 발걸음은 천왕봉 돌길을 밟는다.

    원래 산에 갈 때 정복형 산행 방식을 버리고 산에서 놀고 즐기는(遊山風流)형 산행을 하자고 결심한 때문인지 처음에는 좀 느릿느릿하게 진행했다.

    중산리 코스의 등산로는 초반에는 크게 가파르지 않아 칼바위까지(1㎞) 가는데 23분이 소요됐다. 좀 느린 것이다.

    어둠 속에서의 칼바위는 칼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딱 버티고 있을 뿐 보이는 게 없이 나뭇잎 사이사이로 스며든 달빛만이 칼바위의 형제만을 그릴 뿐이었다.

    법계사까지는 가파르지 않다는 선답자들의 말은 칼바위 바로 다음에 있는 출렁다리를 지나면서 여지없이 깨졌다. 적당한 오름길을 넘어 된비알(가파른 오름길), 아니 깔딱고개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땀이 온몸을 적시고도 부족해 등줄기와 얼굴의 골을 따라 흘러내린다. 예전부터 배워둔 단전호흡법으로도 벅참을 느낀다.

    갑자기 너른 공터가 나타나면서 사진을 통해 익히 봤던 천왕봉이 올려다 보인다. 우측으로는 써리봉도 보이고 그 우측으로 막 해가 솟아오르는 붉은 기운이 하늘을 뒤덮는다. 일출의 장관이 있는 듯 하다. 스마트폰을 꺼내 좌우, 앞뒤 전경을 찍어댄다. 로터리대피소 바로 직전인 헬기장이다.

    사진도 찍고 물도 마시고 볼 일도 본 20분의 휴식시간. 법계사에서 천왕봉까지의 2㎞. 여기서부터 그렇게 힘들다고 하던데 어떤 오름길일까 걱정 반, 우려 반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천왕봉 800m를 남겨둔 개선문까지의 등산로는 된비알임에 분명 하지만 그렇다고 깔딱성 고갯길은 아닌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익히 봤던 개선문 이정표 앞에서 일단 숨을 돌리고자 조망에 들어간다. 중산리 계속과 중봉, 서리봉 등을 밑에서 올려보노라니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다. 너무너무 신비롭다. 어떻게 저렇게 빚었을까? 저런 산세를 이곳이 아니고선 볼 수 없기에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직접 등정해봐야 지리산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했을까?

     

    중산리에서부터 이곳까지 등산객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 무더기의 등산객을 만난다.

    제주에서 왔다는 가정주부와 서울의 단체 학생 등산객들로부터 푸념을 듣는다. 오늘은 망했단다. 이유는 일출을 보지 못했다는 거다. 헬기장에서 일출의 붉은 기운과 옆으로 슬쩍 비친 햇빛을 봤는데, 그럼 내가 행운아였네.

    서로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안산 즐기세요라며 헤어지고 그야말로 3,40도를 넘는 천왕봉 오름길에 발을 올려 놓는다.

    이제 저 가파른 오름길만 끝마치면 된다는 생각만이 뇌리를 지배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돌계단 길을 내딛는다. 숨은 헉헉된다.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정신이 없다. 땀이 비오 듯 쏟아진다. 그래도 고지가 저기인데 라며 어금니를 물고 땀범벅이 된 얼굴로 어느 덧 정상을 밟는다.

    아 지리산 천왕봉, '한국인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는 정상석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얼마만인가? 무려 10년이다. 어느 여름 지리산을 잊어본 적이 없건만 다시 찾아오는데 무려 10년이 걸리다니 그동안 난 뭘 갈구하며 살았던가? 3년 동안 이국땅에서 살았다고 치더라도 지난 7년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간간히 산에 다녔는데 바쁘다는 이유를 대며 지리산을 외면하고 산 것은 아닌지, 골프 같은 사교적 운동에 몰입하고 지낸 것은 아닌지 반문해본다.

    1,915m의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 정상석 앞뒤를 스마트폰에 담는다. 주위의 산객에게 부탁해 내 얼굴이 담긴 인증사진도 한 장.

     

    어떤 때는 지리산 천왕봉을 찾은 등산객들이 너무 많아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단다.

    그런데 오늘은 금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일출 산객들도 없고 낮 시간도 아니어서 겨우 10명 남짓. 또한 날씨가 꽤 쌀쌀하다. 기온이 영상 14도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사진을 찍고 조망을 하는데도 춥게 느껴진다.

    날씨는 맑지만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멀리까지의 조망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반야봉까지는 선명하게 조망 되지만 노고단은 흐릿하다.

    오늘 저곳까지 가야한다. 여기서부터 25.5㎞다. 지금 시간이 오전 7시(새벽 4시쯤 등산하기 시작했고 20분 정도 휴식을 했으니까 중산리매표소에서 천왕봉까지 2시간 40분가량 걸린 셈이다) 이니까 오늘 산행 계획은 큰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천왕봉에서의 즐거운 시간도 마감해야 할 듯. 천왕봉에서 지리산 서북능선과 덕유산 자락을 바라보지만 뵈는 건 오직 흐릿함뿐. 아쉽다. 가야 할 길이 10년 만에 천왕봉을 찾은 산객의 마음을 바쁘게만 한다.

    오늘 중 전남 구례군의 성삼재를 밟아야만 하는 산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왕봉을 때때로 휘감는 구름은 자리를 비켜주질 않으니 마냥 앉아있을 수만 없는 일. 정리하고 장터목산장을 향해 떠난다.

    거리는 1.7㎞. 천왕봉에서 장터목산장을 거쳐 연하선경과 세석산장까지의 구간이 가장 지리산다운 멋진 풍광이 펼쳐지는 곳. 오르내림만 없다면 신선놀음을 하며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구상나무와 고사목들이 즐비한 곳. 그곳을 향해 내려간다.

    천왕봉에서의 내림길이 좀 거칠다. 조심을 요하는 곳이다. 10년 전에 비해 많이 훼손된 것 같다. 국립공원공단 측의 안전한 보수가 요구된다 하겠다.

    통천문과 제석봉, 그리고 등산로 주변에 즐비한 야생화들. 대부분 이름을 모르지만 현호색, 일월비비추, 풀솜대, 산이오풀, 꿩의다리꽃 등이 지천에 피어있고 구상나무와 고사목들이 어우러진 제석봉 부근 길은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장터목산장. 과거에 백무동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중산리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물물교환했던 그 곳이건만 이제는 장사라곤 대피소가 전부일 뿐 등산객들의 발걸음만 남아있는 곳이 됐다. 그래도 장터목산장이 생긴 뒤 천왕봉 일출을 보려는 등산객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됐던가?

    수십 명의 등산객들이 아침식사중이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아쉬움이라면 주변의 공사로 인해 장터목대피소의 너른 마당 같은 지역이 중장비에 점령당해 과거의 넉넉한 장터목대피소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아침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장소도 협소하고 추워 가다가 하기로 하고 연하선경과 세석산장을 향해 다시 배낭을 둘러멘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지리산 종주에 나서는 것이다.

    각오를 새로 하고 너무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연하선경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기쁘다. 이제나저제나 이 등산로를 밟아보나 했는데 2013년 7월 말쯤에야 지리산을 찾다니, 그동안 지리산을 사랑하지 않은 나 자신을 책망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내딛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아 다시 고개를 돌려 천왕봉을 뒤돌아보고, 산행을 시작했던 중산리 방향으로 눈길도 주고, 10년 전까지 줄곧 애용했던 백무동 방향으로는 그윽한 향수에 젖은 눈빛을 보내고, 발걸음과 마음은 세석산장으로 향한다.

    아! 연하선경. 세석산장~연하봉까지의 능선길이 연하선경이다. 25.5㎞의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길이 연하선경이라는데 이제야 이 아름다움을 알다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 없다. 등산로 주위의 얼레지가 지천으로 깔려있어 우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흥준 선생께서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서문에 쓴 글귀인데 조선조 정조시대에 유한준 선생의 글을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멋진 글인가?

    지리산을 사랑하면 알려고 하고 알면 보인다. 지리산의 멋진 아름다움과 그윽함, 장쾌함, 포근함, 풍부함 등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내포한 지리산을.

    1990년대 <남부군>과 <태백산맥>을 읽고 지리산 등반에 나섰을 때 그 이전의 지리산과 달랐듯이 언제부터인가 지리산과 백두대간에 대한 관심을 가졌더니 정말로 지리산을 사랑하게 된 것을.

    사랑에 빠지면 그윽하게 바라보듯이 지리산을 걸으면서 가슴 저편에서 그윽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인일일까? 아니 당연할 것이다. 이 또한 지리산을 사랑하는 증거가 아닐까?

    어느덧 세석산장이 바라보인다. 거의 다 왔다. 촛대봉에서 영신봉에 이르는 세석평전, 이 높은 고지에 이런 평원이 있을 줄이야. 덕유평전과 함께 1500m 이상의 고지대에 이처럼 아름답고 넉넉한 평원이 우리로 하여금 지리산을 더욱 사랑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습지가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도 특이하지 않은가?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이현상이 이 평원에서 빨치산 투쟁대회를 열었다고 하니 그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흐른 작금의 한반도 정세를 본다면 그가 뭐라고 할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빈곤국으로 전락한데다 절대왕정과 비슷한 3대 세습독재를 보면서 '내가 과연 조국인민해방투쟁을 한 게 잘한 건지 의문이 들지 않을까'라는 괜히 쓸데없는 상념이 뇌리를 스친다.

    연하봉에서 촛대봉까지 거의 동행한 전남대학생(무슨 동아리 소속 수십 명) 두세 명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며 책을 읽고 지리산에 오면 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말을 줬더니 집에 가면 태백산맥을 꼭 사 읽어보겠단다.

    어쨌든지 지리산을 찾은 산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이 세석평원과 천왕봉, 노고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영신봉에 올랐다.

    세석에서 영신봉에 이르는 0.7㎞ 구간이 일월비비추 천국이다. 영신봉에서 남남정맥길을 응시하며 다시 한 번 지나온 마루금을 찾아 촛대봉과 제석봉, 천왕봉을 눈에 담고 벽소령으로 돌진한다.

    벽소령대피소에 늦어도 11시 30분을 전후해 도착해야 하는데 자못 걱정이 앞선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산장까지의 6.3㎞ 구간이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아련해 반대방향의 등산로도 오르내림이 반복된다면 오늘 산행의 최대 고비가 여기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리라.

    그러나 염려와는 다르게 반대방향(세석에서 벽소령)은 내리막이 많아 시간을 다소 절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지 않고 지난 것 같다. 벽소령에서 세석으로 올 땐 상당히 힘들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렇지 않게 느껴졌다.

    선비샘. 우리나라 큰 산의 능선에서 물이 풍부한 곳은 지리산이 유일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선비샘과 임걸령 샘물이다.

    한 통의 물을 발칵발칵 들이마신 뒤 또 한통을 받아 머리에 붓고 발에도 쏟아 사실상의 족탕을 하고 더위를 식힌다. 물이 넘쳐나 머리를 감는다고 해도 누가 탓하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선비샘 수량은 넉넉하다. 물론 목욕을 할 정도는 아니리라. 선비샘에서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졌다.

    예전엔, 비박을 단속하기 이전에는 지리산 최고의 비박장소가 선비샘 주변이었다.

    그런데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단속하고 난 이후부터는 비박 장소가 크게 줄어 등산객, 특히 젊은 산객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1인용 텐트로 비박을 즐기는 산객들은 공단 측의 조치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턱없이 부족한 대피소 예약을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며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공단 측은 요지부동이라고 한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위세는 대단하다.

    여차하면 비법정탐방로라는 이유를 대며 등산로를 폐쇄하기 일쑤고 그곳에 들어갔다가 걸리면 무려 50만원의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특히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등산객들에게 국립공원관리공단 단속반원(이른바 국공파)들이 공포의 대상이다.

    이들의 단속을 피하고자 야밤이나 새벽 시간에 등산을 하는가 하면 단속 장소를 비켜가기 위해 위험한 지역으로의 등산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속리산 문장대 구간과 대야산 구간, 설악산권인 점봉산, 미시령 구간, 대관령 선자령 구간 등도 국공파의 단속이 아주 심한 곳이다. 단속 근거는 백두대간의 동식물을 보호한다나?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산길을 걷는 죄밖에 없는데, 아니 조국의 산하를 제 발로 걸어보고 느끼고 싶어 하는 국토사랑 순례객에게 그렇게 공포심을 심어줘야 직성이 풀리는지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 묻고 싶다.

    젊은이들의 취업 확대를 위해 국공파를 모집하는 건 이해가 되나 단속을 위해 국공파를 늘리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논리적인 모순이다.

    자연보호란 못 들어가게 막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걷되 자연을 훼손하지 말라고 계도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또한 단속구간에서는 비박을 금지하고 버너와 코펠 소지를 철저히 막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었더니 어느덧 벽소령에 가까워졌다. 벽소령길은 경남 함양군 마천마을에서 벽소령을 넘어 하동군 의신마을에 이르는 토벌대로를 말한다.

    1950년대 초 빨치산 토벌을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혹자는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 때 지리산의 무장공비(북한 출신 간첩) 출현에 대비해 닦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찌됐든 이 길은 이제 흔적만 도로일 뿐 바위가 무너져 도로를 점령해버렸고 나무가 크게 자라 그냥 평범한 산길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럴지라도 지리산 주등산로 가운데 1.1㎞ 벽소령 구간이 가장 편안한 길이 아닐까?

    2001년 8월 중순 지리산 종주를 하려다가 폭우가 내려 벽소령에서 의신마을로 내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10m 앞이 안보일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어 길을 잃어버리자 고로쇠수액줄을 따라 내려갔던 그 길이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무성해져 버렸다.

    11시 40분쯤 벽소령대피소. 당초엔 1박을 하면서 지리산 10경중 4경인 벽소한월(碧宵寒月)을 즐기고 싶었으나 무박종주를 선택 하는 바람에 스쳐가는 한 지점에 불과했다.

    벽소령은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오히려 맑아서 푸르게 보이므로 벽소한월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언젠가 벽소령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벽소한월의 의미를 되새겨볼 것을 다짐하며 연하천대피소로 향한다.

    길이는 3.6㎞이나 명선봉, 형제봉을 포함해 봉우리 두세 군데를 오르내려야 하는 관계로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오르면 내려오는 게 산의 섭리이자 세상사, 인간사의 이치라고 말하지만 지리산 종주도 후반전에 접어들었고 체력이 고갈될 지경에 처한지라 산객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무겁기만 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체력이 바닥난 것이다. 방전된 것이다. 가파른 형제바위를 오르는데 체력이 고갈돼버린 것이다.

    줄곧 시원한 바람이 불었으나 이 지역만은 땡볕에 습도까지 높은데다 바람까지 불지 않아 땀이 볼을 타고 내리다 가슴팍까지 적시기를 수 차례. 어찌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였다. 점심을 먹지 않아 허기까지 겹치면서 몸 상태를 더욱 악화시킨 데 따른 결과였으리라. 소금을 가져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이러한 몸 상태로 연하천대피소까지 가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 적당한 곳에서 쉬며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데 에너지가 소진돼 그런지 밥맛도 없었고 속도 좋지 않았다.

    연하천대피소와 음정 방향을 표시한 이정표를 보는 순간 거의 다 왔음을 기뻐하며 속도를 내 겨우 오후 1시 50분쯤 연하천대피소에 다다랐다.

    2시를 넘겨선 노고단 방향으로 갈 수 없다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의 말에 따라 이온음료 한 병을 재빠르게 사 챙기고 명선봉 계단을 오른다.

    힘들지도 않은 오름길인데 제법 어렵게 느껴지는 것을 볼 때 이미 체력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지 않나 판단된다. 아마도 형제봉을 오를 때 너무 지쳤나보다.

    연하천대피소에서 소금을 구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다시 내려갈 생각일랑 아예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올라올 0.4㎞가 너무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명선봉에서 한참을 내려오면서 예전에 이 길을 오를 땐 별로 힘들지 않았는데 오늘 내려오면서 보니 상당한 거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땐 성삼재에서 출발해 체력이 왕성했었기에 그러했으나 오늘은 반대방향으로 종주를 하는 바람에 많은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한 것이다.

     

    그리고 토끼봉. 토끼봉도 된비알성 오름길이 아니어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기온은 최고조에 이른 오후 3시쯤이어서 그런지 토끼봉 오름길도 간단하지 않았다. 토끼봉은 또 다시 산객의 체력적 한계를 시험하는 듯 했다.

    여기서 내려가면 화개재. 전북 남원 방향의 뱀사골과 경남 피아골 지역을 연결하는 화개재엔 옛날의 장터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무성한 잡풀과 잡목만이 지키고 있었다.

    종주를 포기하고 반선마을로 내려가면서 우리나라 계곡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뱀사골계곡의 전경을 구경이나 하고 갈까, 말까를 고심하면서도 여기서 포기하면 언제 다시 백두대간 북진의 제1구간인 중산리~천왕봉~노고단을 종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끝내 문제의 삼도봉으로 발길을 이끈다.

    노고단에서 삼도봉까지의 거리는 5㎞에 지나지 않고 약간의 내림성과 평지성 돌길을 걸으면 돼 평탄한 등산로라고 할 수 있으나 화개재에서 삼도봉 등산로는 그야말로 마의 구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개재에서 1,2백미터를 오르면 길이 3백m의 계단길이 나타난다. 나무계단만 무려 585개(얼추 계산)를 올라야 하는 구간이다.

    체력이 방전되지 않았을 땐 그렇게 힘든 구간이라고 할 수 없으나 형제봉과 영신봉, 토끼봉을 오르내리면서 지칠 대로 지친 산객으로선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계단이다. 경사도 30%를 넘고 끝날 줄을 모르고 줄기차게 이어지는 계단 오름길이다. 다행스러운 건 목재계단이라는 것이 큰 위안이다.

     

    계단이 끝나면 곧바로 삼도봉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좀 더 다리에 힘을 줘야 삼도봉을 만나게 된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경계선이라는 의미로 삼각형의 이정표다. 우측으로는 반야봉이요. 남쪽으로는 경남 하동군 어디인데 잘 모르겠고 뒤로는 장엄한 지리산 주능선길이 펼쳐지는 곳이다. 남쪽과 동쪽의 조망이 훤한 곳이기도 한 삼도봉.

     

    노고단까지 5㎞. 지리산 25.5㎞ 종주길에서 가장 부담이 없고 높낮이도 심하지 않은 마루금이다.

    그런데 어찌나 부담이 되던지…중산리에서 천왕봉 5.4㎞의 줄기찬 오름길도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이 좋고 평탄하다시피 한 길이 두렵기까지 하다니! 지치긴 지쳤나보다.

    집에서 가져간 포도로 에너지를 보충하며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임걸령을 향한다. 금새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예상했던 임걸령은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이게 어인일인가? 문제는 내가 지쳐있다는 증거다.

    봉우리 같지 않은 곳에서 좀 내려가더니 임걸령이 나타났다. 어 이상하다. 분명이 샘물이 나오는 곳인데 어디 있지라며 찾아봤다니 오른쪽(연하천 방향에서 노고단으로)에 길이 있어 가봤더니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10년 전과 바뀐 모습인 것 같았다.

    그토록 마시고 싶었던 임걸령 샘물.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그것도 부족해 물병(0.5리터)로 받아 머리에서부터 껴안았다. 그리고 서울에 가져가 마실 요량으로 두 병을 받아 배낭에 넣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3㎞. 피아골 삼거리와 돼지령을 거쳐 노고단에 가면 오늘의 산행도 끝나리라는 기대감을 잔뜩 안고 태양을 보며 노고단으로 직행.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나 되는 듯. 고갈된 체력을 반증이라도 하 듯 평지의 흙길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 반면 돌길과 조금의 오르막이 앞에 나타나면 "에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노고단을 1㎞ 앞두고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연하천대피소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6시까지 노고단을 지나야만 내가 혼나지 않으니 반드시 6시 이전에 노고단 문을 통과하셔야 합니다"(지정 입산시간제 때문-다음 기회에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짚으려 한다)라는 말이 천근만근 같은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산객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과연 15분 안에 1㎞를 걸을 수 있을까? 이 길도 700m가량 돌길인 것으로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막판 스퍼트를 냈어도 5분 정도 어긴 2013년 7월 26일 오후 6시 5분쯤에야 노고단 능선에 다다랐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공단 직원에게 몇 분 어겨 통과해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줄곧 생각하며 1㎞를 내달리다시피 했는데 아무도 없다니, 잘 됐다는 안도감과 함께 괜히 막판 땀을 쏟았네라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의 지리산 주능선 종주를 마쳤다. 중산리에서 시작해 천왕봉~장터목대피소~세석대피소~벽소령대피소~연하천대피소~노고단~성삼재까지 33.6㎞를 14시간 30분(휴식, 점심, 사진촬영시간 포함)에 주파했다.

     

    과연 잘한 일일까? 정복형 산행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가?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을, 언제 찾아도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고 편안하며, 도대체 이 좁은 땅덩어리에 이처럼 장쾌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봉우리와 계곡을 거느린 곳을 음미하고 새기고, 즐거이, 때론 유유자적하며 걸어야 하는 지리산을 등반대회하 듯 마구 걷는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라는 회의감이 뇌리를 지배했다.

    서울행 무궁화호 안에서 이제는 하루에 지리산을 종주하는 정복형 산행을 더 이상 하지 말자고. 내 체력을 자랑하고 싶은 것도 아닌 것을 뭣 때문에 무리한 지리산 종주를 하는가하는 원론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그것이리라.

    그리고 왜 산에서의 1㎞, 0.5㎞는 그토록 길다는 말인가? 지쳐있음을 부인하지 않더라도 삼도봉에서 노고단 방향으로 좀 가면 반야봉 오르는 길이 나오며 좀 더 가면 반야봉 가는 이정표가 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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