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강원도 평창에서 휴가를 즐기다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한 광동제약 창업주 최수부(78) 회장을 대표하는 말은 '뚝심경영'이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중국 인삼 수입 문제를 놓고 정권 실세와 말싸움을 벌이다 멱살잡이까지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그는 관세청의 수입 금지 조치를 해제시켰다.
1935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태어난 최 회장은 유년시절 일본학생들에게 '조센징'이라는 놀림을 받으면서 자랐다. 해방이 되고 외가인 경북 달성군으로 들어온 뒤에는 반대로 '쪽바리'라는 놀림을 받았다. 이후 그는 학교에 취미를 잃었다. 가세도 기울어 정식교육을 받은 건 초등학교 4학년까지였다.
그는 13살부터 나무장사, 과일장사 등을 하면서 장사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
군 제대 후 최 회장은 고려인삼사업사에서 '경옥고' 외판원으로 입사했다. 3년 연속으로 판매왕을 차지하며 창업자금을 마련, 직접 경옥고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1963년 용산구에 차린 30평짜리 공장이 오늘날 광동제약의 첫 모습이다.
이후 광동제약은 거북표 우황청심원, 광동쌍화탕 등 다양한 인기 제품들을 탄생시키며 중견 제약회사로 자리잡았다.
최 회장은 약재를 직접 고르는 모습으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우황을 고르는 일만큼은 30년째 내 손으로 해오고 있다"는 그의 모습과 '40년 최씨 고집' 문구가 들어간 광고는 유명하다.
2000년 이후 광동제약은 '비타 500', '옥수수수염차' 등 건강과 음료를 결합시킨 제품을 생산해 음료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최 회장은 제약산업과 기업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1996년)을 받기도 했다.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2006), 대한경영학회 경영자 대상(2008년) 등
경영전문기관으로부터도 수차례 상을 받았다.
한편 심장병 어린이에게 무료 수술을 지원해 500여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는가 하면 가산문화재단을 만들어 불우 청소년들을 돕는 등 활발한 사회공헌을 펼치기도 했다.
주말에 부인과 자주 골프를 즐겼던 그는, 휴가 기간 중 골프를 즐기다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30분쯤 평창군 대관령면의 한 골프장 사우나에서 최 회장이 갑자기 쓰러진 것을 일행들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