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곤(paragon)이란 '완벽함의 궁극적인 모델'을 뜻하는 단어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바로 파라곤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동시대에 활약하던 티치아노나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비교되는 것을 미켈란젤로는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그는 단 한번도 그들과 경쟁해서 이겨보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자기 자신, 파라곤을 추구하는 미켈란젤로 자신만이 그의 경쟁자였다.
자신의 분야에서 파라곤을 추구한다고 해서 모두가 파라곤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조각, 회화, 건축 등 무려 세 가지 영역에서 파라곤을 탄생시켰다.
조각의 파라곤은 바로 다비드상이다. 다비드상은 미켈란젤로가 27살 때 완성한 것인데, 5.5m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 대리석 조각을 본 조르조 바사리는 1550년에 '조각이라는 예술은 이로써 끝이났다'고 말했다. 즉, 다비드상이 조각의 파라곤,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다비드상만으로도 미켈란젤로는 미술사에 확실한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이와 경쟁하였는데, 바로 화가 미켈란젤로였다. 그가 38살이던 1512년, 로마 바티칸 궁에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가 완성됨으로써 회화의 파라곤이 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이 작업을 맡기 전까지도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화가가 아닌 조각가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 작업을 맡는 것을 주저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작업에 처음도전하여 결국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역작을 탄생시켰으니, 미켈란젤로를 천재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1564년, 89세의 노인이었던 미켈란젤로는 생애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또 하나의 파라곤을 남겼다. 그것도 조각이나 회화가 아닌, 건축이었다.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자가 바로 미켈란젤로였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 완공되던 그 해, 미켈란젤로는 세상을 떠났다. 세 가지의 파라곤을 남긴 후에야 비로소 이 땅에서의 사명을 다했다는 듯, 영면에 들어간 것이다.
파라곤을 추구하던 자기 자신과의 경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둔 미켈란젤로의 작품 세계를 통해 우리는 그의 좌우명을 알 수 있다. '나의 경쟁자는 오로지 미래의 나 자신뿐'이라는 것이다.그것이 바로 창조성의 원천이었으며, 그가 풍미했던 르네상스 시대가 최고의 정점을 향해 올라갈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지금 당신은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가? 옆에 있는 직장 동료나 경쟁회사를 경쟁자로 삼고 있는 사람은 결국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나 자신의 위대한 미래, 파라곤을 추구하는 조직, 그리고 회사의 미래와 경쟁할 때 미켈란젤로와 같은 창조적인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 당신이 인문학과 예술을 통해 진정으로 창조경영을 이루고자 한다면, 자신이 당면했던 과제에 몰입했던 미켈란젤로의 파라곤을 통해 창조의 모델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천재를 벤치마킹하는 것과 경쟁회사를 벤치마킹하는 것, 어느 쪽에 진짜 경쟁력이 있을지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