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3개 교에서 처음 시작한 '혁신학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4년만에 448개 교로 늘었다. 이들 혁신학교에는 학생들이 대거 몰리면서 학교 주변 아파트 값이 오른 곳도 나타나고 있다. 학부모들이 직접 위장전입 실사에 나설 만큼 ‘혁신학교 신드롬’이란 말도 나온다. 하지만 입시를 무시할 수 없는 현실에서 ‘노는 학교’라는 이미지가 커 상급 학교로 갈수록 인기가 떨어진다거나, 일반학교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떨어진다는 등의 지적도 있다. 과밀학급 문제 역시 혁신학교가 풀어야할 숙제다. ‘교육혁명’, ‘미래 학교 모델’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혁신학교. CBS노컷뉴스는 혁신학교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혁신학교의 명과 암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주]▲글 싣는 순서
① ‘혁신학교’가 ‘콩나물 교실’이 된 까닭은?
② 꼴찌가 명문대 갈 수 있었던 이유는?③ ‘혁신학교’에 눈독 들이는 박근혜 정부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자료사진)
“하라는 것만 하고, 공부도 왜 해야 되는지 몰랐어요. 성적도 중학교 때는 별로 좋지 않았어요. 중하위권 정도…. 지금은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잘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자신감도 얻고,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된 거 같아요.”
“고3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이 학생. ‘입시 지옥’ 속에 정신과 육체가 모두 피폐해지기 쉬운 보통의 고3 수험생들을 생각하면 그의 말은 이해하기 힘든 언어다.
소극적이기만 했던 이 학생에게 고교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혹시 고액 족집게 과외를 했냐”는 물음엔 학원 문턱을 한 번도 넘어 본 적이 없단다.
“단지 학교 다니는 게 즐겁고, 재밌었다”는, 또다시 이해하기 힘든 대답만 돌아올 뿐.
올해 당당하게 이화여대 신입생이 된 오우리(19)양은 경기도교육청이 지난 2010년 ‘혁신학교’로 지정했던 용인 흥덕고 1회 졸업생이다.
◈ “대학 진학보다, 인생의 자신감 찾은 게 더 좋아”오 양이 입학했던 흥덕고는 비평준화지역인 용인의 신설학교였다.
대부분의 비평준화지역 신설학교들이 그렇듯 흥덕고 역시 중학교 졸업예정자들이 가기를 꺼리는 기피학교 중 하나였다.
실제로 당시 인근 수지고의 경우 중학교 내신 200점 만점에 합격 커트라인이 190점을 넘길 정도로 학생들이 몰린 반면, 흥덕고 학생들의 입학 평균 점수는 120점 정도로 입학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성적이 나빠 갈 만한 고등학교가 없거나 학교 부적응 학생 등 이른바 문제아들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학교는 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더불어 사는 협동과 공동체험의 장을 마련해 줬다. 교사들에게 학생들은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 아닌 더불어 삶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구성원들이었다.
교사들은 학생이 안하고 못한다고 비난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같이 해보자며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그 손길이 귀찮기만 했던 학생들도 점차 선생님은 물론 친구들도 존중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서로 가르쳐주고 배려하면서 자발적으로 공부하기에 나섰다.
천안 나사렛대 방송미디어학과에 들어간 오제현(19)군은 “모둠식 수업(공동 과제 수행)을 하면서 각자 잘 하는 것들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러다 보니 친구들끼리도 서로 존중하게 되고 ‘나도 잘하는 게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졸업 성적은 116명 중 112명이 대학 합격. 혹자는 ‘기적’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범희 흥덕고 교장은 대학 진학률로 학교를 평가하는 것 자체를 경계했다.
이 교장은 “대학 진학률이 몇 퍼센트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이 학교 생활을 통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업무량 많고, 개인약속 못 잡지만…”, 혁신학교 교사들의 행복한 고뇌이처럼 혁신학교는 자기주도학습능력, 문제 발견 및 해결능력, 관계형성능력 등을 기반으로 학생들의 종합적 소질에 따른 역량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선 교사들의 역할과 역량이 절대적이다.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가 없다면 이 모든 과정은 시작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학교에 대한 혁신학교 교사들의 애정은 깊다.
혁신학교에서 일하는 한 교사는 “수업을 대충 준비하지 않는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만든다. 끝내지 못하면 집으로 가져가 마무리한다”고 할 정도다.
경기도 광명의 혁신학교인 구름산초 배성호 교사는 “모든 교육과정을 교사들이 직접 협의하고 계획하기 때문에 책임감이 크다”며 “일주일에 두 번 하는 교육과정 협의 때는 회의가 퇴근시간 이후까지도 계속되는 경우가 많아 되도록 개인 약속을 잡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혁신학교가 많이 알려지면서 학교폭력·따돌림 등의 문제를 겪는 학생들을 혁신학교로 보내려는 분위기도 이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RELNEWS:right}
혁신 중학교 한 교사는 “인근 학교에선 ‘거기 가면 안 잘린다’며 문제 학생들을 혁신학교로 전학 보내기도 한다”며 “문제를 겪는 학생이 전학 오면 학교 분위기는 흐트러지기 쉽고, 그것을 다시 잡는 데만 몇 개월이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혁신학교 교사들은 과중한 업무에 지쳐가면서도 학교를 바꾸겠다는 강한 열의를 내보인다.
혁신 초등학교 한 교사는 “개인 시간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교사들에게 수업에 대한 최대한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만큼 내 수업에 대한 자부심이 크고, 보람을 느낀다”며 “일반학교에서 틀에 박힌 교육을 하면서 아이들이 지쳐가는 모습을 보는 것 보다는 좀 힘들더라도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수업을 할 수 있는 혁신학교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인근의 한 일반학교 교사는 “혁신학교들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의 피로가 쌓여 안쓰러울 때가 많다”며 “그래도 버티는 것은 교육의 희망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