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엔 아무것도 없다", "서울공화국 문제다"…어디까지 사실?
▶ 글 싣는 순서 ①지방소멸 위기,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다? 멈추지 않는 '인구 블랙홀'
②"지방엔 아무것도 없다", "서울공화국 문제다"…어디까지 사실?
(계속)
"나도 상경했지만 지방으로 가야 될 이유가 없다"
"지방소멸은 서울과 정치인들이 만들어 가고있다"
"지방에 진짜 아무것도 없으니 막상 가서 살려면 못산다"
지방소멸을 다룬 한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수도권 집중 문제를 두고 '서울공화국이 문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누리꾼들의 주장에 그치지 않고 실제 국가 정책 기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2차 공공기관 이전' 공약도 이같은 인식에서 나왔다. 자원과 기회 등이 서울과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현실이 지방소멸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공공 인프라부터 지방으로 이전해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과연 지방에는 '아무것도' 없고, 이 같은 지방소멸의 주 원인은 '서울공화국' 때문인걸까.
OECD "韓 지방소멸, 인구감소 때문"
OECD는 지난달 펴낸 '한국의 밀집성, 연결성 및 접근성 강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집중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의 지방소멸 원인으로 지목한 첫 번째 표면적 이유는 인구감소다.
보고서는 "한국의 인구는 2020년 정점을 찍었고 2070년까지 약 1500만 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주요 도시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부터, 읍·면과 마을 단위가 특히나 가장 빠르게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2040년에는 수도권 외 지역 인구가 2390만 명으로 감소함에 따라 수도권 인구 비중이 52.4%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한국의 지방소멸의 특징상 단순히 인구 감소로만은 설명될 수 없으며 구조적 설계가 수도권 '급속 편중'을 가져왔다는 시각도 있다.
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서 막강한 힘을 지닌 정부와 행정 기능이 서울에 위치해 있었고, 교육, 문화 등 핵심 기능을 서울 주변에 집중시키면서 수도권 집중 현상은 더욱 가속화됐다"면서 "이렇게 큰 구조가 만들어진 다음에는 경로의존성이 작동해, 행정 기능 일부가 지방으로 이전해도 수도권 집중 현상은 여전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수도권 인구 집중은 노동시장 경쟁을 가열하고 주거비, 교육비 등 각종 생활비의 증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는 다시 전국적인 인구 감소를 부추긴다"고 분석했다.
박승규 국립군산대 금융부동산경제학과 교수는 "지방소멸의 주 원인은 수도권 집중 때문이 아니"라며 "살기 어려우니 출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수도권에 생활 인프라가 남으니 수도권으로 이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엔 아무것도 없다"…어디까지 사실일까
그렇다면 '지방에 아무것도 없다'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우선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지역내총생산(GRDP) 통계를 보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이 창출한 GRDP는 총 1229조 원으로, 전국 총생산(2328조 원)의 52.8%를 차지했다. 전체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이 절반이 넘는 경제 규모를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경제력 집중이 고용시장 격차로도 이어졌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5년 4월 '신규 구직건수'에 따르면, 수도권에만 19만 건 이상으로(경기 10만7354건·서울 6만4488건·인천 2만 5908건) 전국 고용시장 총량에서 절반을 차지했다. 반면 부산(3만1661건), 경남(2만5529건) 등 대부분 지방 광역시는 각각 2만 건 이하에 그쳤다.
박인권 교수는 "특히 대기업과 4차 산업 관련 등 '양질의' 일자리들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면서 "수도권 인구 비중이 50.7%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보다 더 높은 비중의 경제적 기회와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도 "단순-반복적인 노동을 대체하는 4차 산업 기술은 점점 더 일자리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며 "이것이 공간적으로 투영되면 청년 등 인재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고, 기업은 양질의 인재를 수급하지 못해 생산성 혁신을 이루지 못하는 '저숙련의 함정'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의료 인프라·R&D…'기회'도 수도권 편중
대표적인 공공 인프라인 '치료받을 기회'도 수도권에 집중돼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발표한 2023년 자료에 따르면 520개소 중 수도권 186곳(35.8%), 비수도권이 334곳(64.2%)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경기도(96곳), 서울(65곳), 경남(51곳), 전남(43곳) 등으로 집계됐다. 시설 자체는 수치상으로 비수도권이 많지만,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수도권보다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의료 자원 같은 경우 제일 중요한 게 인력인데, 인구 10만 명당 응급의학전문의수(2023년 기준)를 따져보면 서울은 11.2명인데 전남은 2.2명"이라며 "또 골든타임을 확보해야 하는 중증 응급 질환을 고려하면 확실히 비수도권이 수도권보다 의료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미래에 대한 투자'로 여겨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가 R&D 예산 지역별 집행 통계를 보면, 2023년 수도권이 전체 34.7%(약 10조 4025억 원), 비수도권이 65.3%(약 19조 5540억 원)을 사용했다. 2021년부터 3년 연속 비수도권 집행 비율이 약 65% 수준을 유지하며 수도권보다 2배가량 높다.
양적으로는 지방이 R&D 투자 혜택을 더 누리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분석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관계자는 "예산 중 약 10조 원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으로 배정되는데, 이 중 대부분(6조 원 가량)이 대전 소재 기관으로 향하고, 지역 사회 파급력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대전에서 창업해 20년간 운영하던 한 기업도 결국 판교로 이전했는데, 이유는 '인력 수급 부족'이었다"며 "정부의 예산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방증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도시와 지방을 단순 비교해 지방이 절대적으로 뒤쳐졌다고 평가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현승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시든 지방이든 과거보다 발전했다"며 "수도권은 더 빠르게 훨씬 좋아졌고, 사람들의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지방이 상대적으로 덜 만족스러울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기회 수도권 집중' 인식, 수도권 쏠림 현상 부추기기도
일부 전문가들은 기회가 수도권에 집중된 현실뿐만 아니라 이 같은 인식 자체가 수도권 쏠림 현상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인권 교수는 "사람들은 '다수지향 편향성'을 가지고 있기에 수도권에 기회가 많다는 통념이 강화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에 동조해 행동하게 된다"며 "결과적으로 수도권 집중을 더욱 강화하는 자기실현적 신화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2015년까지 수도권으로 유입되는 청년인구는 감소하다가 지방소멸 개념이 논의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며 "지나친 공포 조장은 지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지역 쇠퇴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승규 교수도 "지방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이 오히려 (지방소멸)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데 동의한다"면서 "수도권 일극화는 어떻게 보면 결과이고, 시간이 장기화되면 도시-지역간 격차는 완화될 것이므로 지금은 위기론보다는 인구 감소에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듯 하다"고 말했다.
서울에 기회 집중? 높은 생활비 등 부담…"신성장동력 발굴해야"
더 큰 문제는, '서울 공화국'의 전망 또한 밝지 않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된 김민석 후보자는 최근 "지금은 제2의 IMF와 같은 상황"이라며 "사실은 더 어려운 상황이다. 28년 전 IMF 때는 큰 경제적 추세는 상승이었는데, 지금은 경제적 추세 자체가 하강과 침체 상태"라고 진단했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가구당 평균 경상소득은 2021년 6826만 원에서 2024년 7696만 원으로 점차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부채는 평균 1억 1천만 원 이상을 유지하고 있어 부채 총액이 소득의 1.5배를 넘는 '고부채 구조'가 이어진다.
겉보기엔 '기회가 집중된 서울'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이들이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부채 부담 속에 놓여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 집중을 단순 비판하며 인프라를 재배치하기보단, 전국적인 경기 침체를 돌파할 신성장동력 확보가 보다 본질적인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박상희 한국지역개발학회 이사는 지방소멸 주 원인에 대해 "장기적인 경기불황 영향이 지방이 더 심각해서 나타난 문제"라고 설명했다. 임형백 성결대 국제개발협력학과 교수도 "근본적인 원인은 신성장동력의 발굴을 통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며 "4차 산업혁명, 질적 성장, 혁신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규상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서울 따라잡기'보다 서울이 제공하지 못하는 삶을 지방에서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이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기 때문에 최소한 떠날 생각이 없는 사람까지 지방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게 단기적인 목표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2025.06.24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