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세계유산 등재된 日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노동' 흔적을 찾아서
제7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때아닌 역사 논쟁이 한창이다. 1년 전 윤석열 대통령의 '공산 전체주의' 발언 이후 벌어진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 논란은 끝내 역풍을 맞고 중단됐다. 이번에는 일본 제국주의 강제동원의 상징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가 시발점이 됐다. 외교 참사 의혹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취임과 맞물려 역사 왜곡 논쟁으로 번졌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7일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당시 조선인 노동의 강제성을 설명할 수 있는 '포괄적인 전시'를 약속했다. 그 후 일주일 만인 지난 7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 지역을 찾았다.
세계유산 등재로 축제분위기인 니가타와 사도섬
도쿄에서 서북부 방향 신칸센으로 2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니가타시. 이곳에서 '사도기선' 크루즈 유람선으로 2시간 반가량(쾌속선 1시간가량)을 가면 사도섬 료츠향(兩津港)에 닿는다. 사도가네야마(佐渡金山)로 불리는 사도광산이 위치한 아이카와 지역은 이 료츠항에서 버스로 1시간을 더 가야 한다.
도쿄에서 아이카와 지역까지 이동하는 동안 세계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현수막과 포스터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관공서와 터미널은 물론 유람선까지 홍보물로 장식돼 있었다. 마치 축제 분위기 같았다.
일본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오봉(お盆)' 연휴(13~16일)를 앞둔 데다 12일이 대체휴일로 지정되면서 일본인 관광객들까지 몰려 사도행 배편은 혼잡했다. 주말을 며칠 앞두고 있었는데도 금요일 오후부터는 대부분 매진된 상태였다.
사도섬에서 '금·은'을 채굴한 곳은 총 3곳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홍보는 크게 사도광산,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아이카와 관광안내소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아이카와 시내 관광안내소에서는 세계유산 등재 기념 가이드 투어를 안내하고 있었는데 사도광산 인근에 위치한 츠루코 은산(鶴子銀山)과 니시미카와 사금산(西三川砂金山) 투어 코스를 내세우고 있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도광산 투어는 현장에서 자체적으로 투어를 모집하고 진행한다. 왜 사도광산이 아닌 다른 곳을 세계유산 투어로 안내하냐는 질문에 안내소 측은 "실제 사도섬의 금·은산 투어는 3가지다. 폐광된 지역을 둘러보는 츠루코 코스와 냇물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니시미카와 코스, 그리고 대대적으로 금광을 채굴했던 사도광산 내부를 탐방하는 코스로 구성돼 있다. 사도광산은 현지에서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다른 두 코스는 관광안내소에서 일시적으로 8월까지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츠루코 은산은 적은 매장량에 따른 수지 문제로 채굴이 중지되고 폐광된 상태다. 니시미카와 지역과 더불어 조선인의 노동이 있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가이드는 "가능성이 '0'은 아니지만 근무자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츠루코와 니시미카와보단 사도금산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사도광산이 사도금산과 동의어로 인식되는 것은 에도시대부터 최대 규모로 채광 작업이 진행된 광산이고 아이카와 지역이 거대한 금 제련 시설로 구축돼 대부분의 주민들이 사도금산 작업자로서 종사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강제동원된 조선인들도 이곳에서 채광 노역부로 배치됐을 가능성이 크다.
강제동원 조선인들의 애환이 묻어있는 사도광산
대다수의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노역한 곳. 사도광산은 아이카와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하는 무료버스가 있지만 배차간격이 길어서 놓쳤을 경우 근처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유료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배차 간격이 좀 있지만 무료버스와 유료버스가 번갈아 있는 편이라 체감으로는 크게 길지 않은 수준이다.
시내에서 사도광산까지는 버스로 약 10분 정도 걸렸다. 버스에서 하차하면 사도광산 갱도 입구가 보이는데 35도가 넘는 더위였지만 갱도 내 한기로 입구 주변은 서늘했다. 사도광산 내 일반인에게 상시 공개된 갱도는 두 곳으로 에도시대 채광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한 소다유(宗太夫)갱도와 메이지(明治) 시대 이후 사용된 도유(道遊)갱도가 있다.
안내 관계자는 "두 갱도의 성격이 다르다"며 "마네킹을 사용해 고퀄리티로 사도광산의 채굴과정을 소개하는 소다유 갱도를 먼저 관람한 후 메이지시대 철로와 기계의 도움으로 실제 채광이 이뤄진 도유 갱도를 관람할 것"을 추천했다.
안내원의 추천에 따라 먼저 소다유 갱도를 탐방했다. 우선 계단이 상당히 많은데 좁은 갱도에서 계단을 오르내리자 곳곳에 에도시대 사람들이 채광·광석 운반을 하는 모습을 마네킹으로 실감나게 재연해 놓은 걸 볼 수 있었다.
곡괭이로 굴을 파고 손으로 흙을 퍼내며 물로 불순물을 흘려내린 끝에 금을 추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마네킹이 움직이면서 사람처럼 말을 해 순간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광산 내부의 좁은 홀에서 채광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노역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강점기보다 오래전인 에도시대의 모습이지만 최전선에서 금맥을 찾고 채광하는 위험한 업무에 배치됐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마네킹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됐다. 십여 곳의 마네킹 전시 끝에 채광한 광물을 제련해 금으로 만드는 과정이 설명된 곳을 지나면 소다유 갱도 전시는 막을 내린다.
이윽고 기다리던 도유 갱도의 차례다. 이 루트에 주목한 이유는 메이지 시대 이후 조성된 갱도로 근대화 기술이 적용된 갱도이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실제로 근무한 것으로 추정되는 환경을 엿볼 수 있고 실제 조선인에 대한 설명이 포함된 루트라고 안내를 받아서다.
도유 갱도는 내부에 철길이 설치돼 있고 이 길을 따라 운행한 광물 운반 열차와 더불어 노동자들이 사용한 각종 기계들이 전시돼 있다.
화룡점정은 사도광산의 상징이자 에도시대 수공업 채굴의 대표현장인 도유노와리토(道遊の割戸)다. 'V(브이)'자형 봉우리 가운데 거대한 갱도 입구가 있어 사도광산의 마스코트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는 채광에 사용한 기계들을 전시한 공간과 함께 도유갱도를 안내하는 전시실을 관람할 수 있는데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이 곳에 조선인에 대한 정보가 있다고 한다.
근대화된 채광방법부터 실제 채광된 광물에 대한 설명까지 전시실 벽면을 빼곡히 담아낸 글자를 모두 읽었지만 '조선'이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급함을 넘어 절박한 마음으로 마지막 연대 표기를 보면서 '조선(朝鮮)' 글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昭和十四年 / 労務動員計画で朝鮮人労働者の日本への募集始まる 。
['쇼와 14년(1939년) 노동동원계획으로 조선인 노동자의 일본 동원을 시작']
昭和 二十年 九月 / 敗戦により朝鮮人労働者が帰朝 。
['쇼와 20년(1945년) 9월 패전에 따라 조선인 노동자가 귀조(帰朝, 조선으로 돌아갔다)']
혹시 다른 곳에도 전시됐는데 지나쳤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안내 관계자에게 재차 확인했지만 '이것이 전부'라는 말이 돌아왔다. 조선인 관련 추가 설명은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고 안내할 뿐이었다.
도유갱도에서 조선인 관련 정보를 찾아 돌아다닌 사람은 비단 취재진만은 아니었다. 세계유산 등재 기사를 보고 호기심으로 방문한 한국인 커플도 조선인 관련 표기를 찾다가 우연히 기자와 마주쳤고 안내 관계자의 답변을 듣고선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관광객이 사도광산을 보려고 오지, 향토박물관까지 조선인 설명을 보러 갈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냐"며 "이런 상황은 유적 설명을 전시실에 둔 것이 아니라 외딴 오두막에 둔 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전시물을 보러 가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버스가 끊겨서 아쉽지만 내일 다시 가서 볼 것"이라고 했다.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설명이 있다는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접근성 논란이 있었다. 사도광산에서 약 2km 떨어진 위치에 있는 이 박물관을 가는 버스는 하루 8편이다. 오후 2시 50분에 출발하는 막차를 놓치면 택시를 타거나 걸어가야 한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 택시는 전세가 아니면 탑승 1시간 전에 콜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5분 거리의 운행을 위해 1시간 동안 달려와야 하는 사정 때문에 사실상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렌트카를 하고 여행을 하는 관광객의 경우는 예외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객의 경우 방문하려면 시간 계산을 잘 해야 한다. 이 모든 사항을 고려하고 박물관을 찾아갈 관광객은 한국인을 제외하면 과연 얼마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인적 드문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조선인 관련 설명은 충분했나?
언덕길을 30여 분 걸어 도착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시골 분교를 떠올리게 하는 아담한 단층건물과 복층건물 등 총 3개의 건물이 연결된 구조인 이곳에는 사도광산의 역사, 유물, 기록 등 여러가지 내용이 전시돼 있다.
A부터 E까지 크게 5가지의 주제로 나뉘어 있는데 일본 정부에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이후인 지난달 28일부터 공개한 조선인 관련 전시는 박물관 맨 끝 건물 2층에 위치한 D전시실에 조성돼 있었다. 하나의 전시실을 모두 사용하는 이 전시의 이름은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노동자들의 생활(朝鮮半島出身者を含む鉱山労働者の暮らし)'이다.
박물관으로부터 촬영 동의를 얻어 새로 전시되고 있는 조선인 관련 내용을 사진으로 전한다.
텍스트형 템플릿 광산에서 사용한 도시락 통
텍스트형 템플릿 한반도 출신들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출신지
텍스트형 템플릿 아이카와(相川)의 광산 노동자들의 생활
텍스트형 템플릿 한반도 출신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전쟁 중 가혹한 노동 환경
사도광업소 반도노무관리 2부(1943년). - 재일조선인사연구(在日朝鮮人史研究) 제12호(1983년)
반도인 노무자에 관한 조사보고. 사단법인 일본광산협회(1940년) -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웹사이트소장
특고월보(쇼와 15년 3월) - 내무성 경보국 보안과(가고시마현립도서관 소장)
텍스트형 템플릿 특고월보(쇼와 15년 3월)
특고월보(쇼와 17년 1월), 내무성 경보국 보안과(가고시마현립도서관 소장)
텍스트형 템플릿 특고월보(쇼와 17년 1월)
한일 정상 공동 기자 회견에서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총리대신의 모두발언 (2023년 5월 7일, 서울)
텍스트형 템플릿 한일 정상 공동 기자 회견에서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총리대신의 모두발언
사도광산에서 노역한 조선인들이 살았던 위치를 표시한 지도
조선인 자료 전시, 진정성 증명하려면 관광객이 많이 볼만한 곳에 설치해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조선인의 강제동원 현장이었던 사도광산이나 시내 관광 안내소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 사전에 조사를 하고 불편한 교통편 시간에 맞춰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사실상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방문객은 얼마나 있을까. 평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기자가 오전, 오후 2회 방문한 동안 이곳을 찾은 관람객은 단 2명, 1팀 뿐이었다. 입장료 300엔(약 2800원)의 벽이 높았던 것일까.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소식에 흥미가 생겼다는 사토씨는 사도섬의 모든 전시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세계유산 등재 시도를 한 끝에 결국 성공했기에 어떠한 노력이 있었는지와 얼마만큼 전시를 했는지 보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향토박물관은 위치가 좋은 편이 아니다. (사도섬은) 교통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관광객은 자료를 모두 보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이곳까지 올 것 같다"고 지적했다. 향토박물관 바로 옆에는 거대한 금 제련소가 있었다. 유적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은 종종 있었지만 이들의 발걸음이 향토박물관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사토씨는 조선인 노동자가 살았던 거주지 지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었다. "저도 조금 전 지도에 표기된 위치를 지나갔는데 집이 아닌 형무소가 된 곳도 있고 집터가 있기도 한다.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서 현장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도 아무런 표시도 없고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시간과 돈을 들여 전시 장소를 만들고 또 일반 대중이 그곳을 찾는 것은 기억해야 할 것을 새기고 잊지 않기 위해서다. 일본은 '조선인'을 특정하지 않은 채 '모든 노동자'를 위한 공간이라고 내세웠고, 우리 정부는 대외적으로 거짓말까지 하면서 이를 받아들였다. 이제 80년이 지난 일제 강제동원의 아픈 역사는 100년, 200년 뒤에도 계속 기억될 수 있을까.
2024.08.12 05:30